문의: altgirlsguy@naver.com
분량이 좀 더 있습니다만, 원활한 전투신 구성을 위해 짧게 끊었습니다.
정곡을 찔렸는지, 아유다는 눈을 크게 뜬 채로 숨을 삼켰다. 성격이 털털한 만큼 그녀는 사실을 숨기는 데 있어선 하수였다. 한센은 대답을 기다리지 않고 말을 이었다.
“아멜리아 선배가 아니면 넌 계속 수도에 있었을 거야. 올 때 기념품 좀 사오라고 하면서 아무렇지도 않게 일하러 갔겠지. 네 심정도 이해 안 가는 건 아니지만, 냉정하게 말해서 돈 때문에 여기 있는 거잖아. 안 그래?”
그러면서 한센은 엠프리스의 메인 카메라로 주변을 둘러보았다. 기체의 눈이 되는 듀얼 아이 센서에 잡히는 것은 오직 바다와 하늘뿐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센은 무언가를 찾고 있는 듯 열심히 카메라를 움직이고 있었다.
잠시 뒤, 수색에 전념하던 한센의 시선이 허공의 어느 한 점에 고정되었다. 엠프리스가 서 있는 방향을 바꾸며 아유다에게 제의하듯 이렇게 말했다.
“그러니까 포기하고 같이 돌아가자. 선배한테는 내가 잘 말해둘게. 데이트는 못 해줘도 동급의 보상은 해줄 테니까…….”
「그건 내 입장에서 곤란한걸.」
말하던 도중, 아유다가 나직이 거절의 뜻을 밝혔다. 그 말투에 든 이질감에 한센은 불편한 기분으로 침을 삼켰다. 다시 마주하게 된 그녀의 눈동자에 굳은 결의 같은 게 담겨 있어서, 변수가 있을까 싶어 조용히 마음을 긴장시켰다.
화상에 비친 아유다가 꺼내든 건 작은 머리띠. 평소 옆머리에 끼우고 있는 머리핀과 한 세트를 이루고 있었다. 손가락으로 잠깐 앞머리를 정돈하더니, 능숙한 손길로 부드럽게 머리칼을 쓸어 넘겼다. 그리고 화룡점정을 찍듯 천천히 머리띠를 썼다. 다시 한센을 바라봤을 때 아유다의 이마는 완전히 드러나 있었다.
머리띠를 본 시점에서 한센은 이를 악물었다. 아유다는 본격적으로 일을 벌이기 전, 저렇게 앞머리를 완전히 넘기는 버릇이 있었다. 최소한 포기할 의향은 없다는 것을 보여주는 표현이리라. 아유다는 말을 이었다.
「알바비가 아까워서 그런 건 아냐. 나도 별개로 그 신형기의 성능이 궁금했어. 물론 이런 식으로 확인하게 될 줄은 전혀 몰랐지만.」
“……슬슬 은폐장을 풀 때도 되지 않았어?”
낮게 경계심이 깔린 목소리로 한센이 말했다. 엷은 미소와 함께 아유다는 순순히 그의 요구에 따랐다. 엠프리스의 시선이 멈춘 곳에 무형의 파동이 일었다가, 어느 순간부터 종이 찢어지듯 갈라져 한 마도병기의 모습을 노출시켰다.
한센은 힘겨운 표정으로 작게 내뱉었다.
“아르엘 엘리트기…….”
수도 경비대의 도장으로 페인트 되고, 분류번호 1번을 배정받은 ISM-07 ‘아르엘’의 강화형. 대장급 인사만 탈 수 있는 기체로, 아멜리아 선배의 것임엔 의심의 여지가 없었다. 초장거리 비행에 필요한 외장형 부스터와 애프터버너를 장착한 것으로 볼 때 그것으로 베네치아까지 온 것 같았다. 오전에 출발해서 아까 도착한 것도 설명이 되었다.
「아멜리아 언니가 데려와준 건 맞아.」
아유다는 화상 모드를 계속 켜두고 있었다.
「혼자 일하면 지루하지 않느냐면서 부탁을 하나 들어달라고 했어. 수단 안 가려도 좋으니까, 네가 시험 비행하는 때에 맞춰서 ‘모의전’을 좀 해달라고.」
처음부터 그렇게 말하면 시간 낭비할 필요 없었잖아-눈을 가늘게 뜬 채, 한센은 아유다의 이변을 계속 주시했다. 앞머리를 깐 뒤로 그녀의 언동은 좀 더 당당하게 바뀌어 있었다.
「아멜리아 언니는 지금쯤 베네치아 기지에서 이 상황을 지켜보고 있겠지. 우리들의 통신까지 듣고 있을지도 몰라. 그렇다면 난 최선을 다해서 너와 싸워…… 아니, 모의전을 할 수밖에 없어. 알바비를 받는 동시에 내 호기심도 충족시켜야 되니까.」
“……이거 비전투형인 건 알고 있지?”
바보 같은 짓 하지 말라는 뜻이었지만, 무시한 건지 못 알아들은 건지 아유다는 묵묵부답이었다. 가슴 쪽의 벨트 파우치를 연 그녀는 은박지에 싸인 무언가를 손가락으로 잡아 꺼냈다.
초콜릿이었다.
「참고로, 싸우기 전에 이걸 꼭 먹어두라던데. 이유는 모르겠지만.」
“어이, 잠깐만. 안 돼! 네가 그걸 먹으면…….”
한센이 목소리를 높이며 동요하자 아유다는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머뭇거리더니, 이내 대수롭지 않게 넘겨버렸다. 초콜릿이 그녀의 입에 가까워질수록 한센의 안색이 점점 창백해져갔다.
의외로 소녀같이, 아유다는 초콜릿을 씹었다.
“실력 테스트 치곤 너무 과격하지 않나요?”
메르겔은 불쾌해진 기분을 감추지 않았다. 일이 꼬여버린 것은 차치하고, 예고도 없이 개입해온 학교 선배의 태도가 무례하게 느껴졌다. 그의 시선은 대형 스크린 속, 두 마도병기가 서로 엉겨 붙어 있는 광경에 못 박혀 있었다.
반면 이 일의 주동자는 태평했다. 아니, 나름 진지한 태도를 고수하고 있었다. 엠프리스와 아르엘의 격투를 한 순간도 놓치지 않겠다는 듯 메르겔을 바라보지도, 그의 말에 대답하지도 않았다. 그것이 후배의 심기를 건드리고 있다는 사실을 자각하지 못하는 듯했다.
“자칫하면 어느 한 쪽이 다칠 수 있어요. 법적으로 문제가 될 수도 있고요. 이런 식으로 밀어붙여봤자 선배가 얻을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습니다.”
평소와 다른 공격적인 말투에 메르겔의 선배, 아멜리아는 흘끗 그를 쳐다보았다. 흥미를 보인 것도 잠시, 다시 사무적인 분위기로 돌아와 부드럽게 운을 뗐다.
“모범적인 건 여전하구나, 메르겔 라인하르트.”
“칭찬은 됐으니 오늘 갑자기 찾아오신 이유부터 설명해주시죠, 선배.”
적의 반 의구심 반으로 된 눈빛이 아멜리아를 꿰뚫을 기세로 달려든다. 사람에 따라선 하급자의 도전으로 보일 여지도 있었다. 관제실 한편에서 기기를 만지던 아네모네가 불안이 담긴 시선을 이쪽으로 흘끗흘끗 보내기 시작했다. 아멜리아와 메르겔 사이에 사단이 일어나진 않을까 노심초사하는 것 같았다.
다만 아멜리아는 불쾌해하지도, 화를 내지도 않았다. 오히려 별 일 아니라는 듯 가볍게,
"확인할 게 있어서 왔다는 설명으로는 부족한가?"
라고 반문했을 뿐이었다.
선배가 위압감을 줄 생각이 없음은 메르겔도 알고 있었다. 그래서 절제하는 모습을 가장하고 있었지만 화가 난 기색이 아직도 여실했다. 이래서는 말장난밖에 안 된다고 판단한 그는 재차 엠프리스에게 달라붙으려는 아르엘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말했다.
"저로선 저걸 모의전으로 인정할 수 없습니다. 아르엘의 움직임 하나하나에 명백한 살의가 담겨 있어요. 제가 아는 아유다는 친구에게 저런 짓을 시도할 생각도 안 할 겁니다. 대체 아유다에게 뭘 불어넣으신 거죠?"
"파격적인 제안, 자극적인 말, 그리고 호기심을 실천으로 옮겨줄 기폭제."
자기가 활용한 수단을 나열하는 아멜리아의 말투는 무서울 정도로 또박또박했다. 사실을 말하는데 거리낄 게 있냐는 태도였다. 메르겔은 밀려드는 어처구니없음을 뒤로 미뤄둔 채 그녀가 한 말을 곱씹기 시작했다. 답은 얼마 안 가 나왔다.
"아유다에게 먹여선 안 되는 걸 먹이셨군요."
"카페인에 예민한 체질을 좋은 쪽으로 이용한 것뿐이야."
처음으로 아멜리아는 미소를 지었다.
"이렇게 해서라도 한센의 적응력을 시험해볼 필요가 있어. 두 사람에겐 미안하지만, 데이터를 얻을 방법은 이것밖에 없었다. 베네치아 기지를 주선해준 건 신형기의 성능 테스트를 위한 사전 준비 단계였지."
테스트 항목에 '전투'가 기본으로 들어가 있음은 굳이 말하지 않아도 되었다. 결과적으로 다 된 판을 망치는 모양새가 됐지만 증명될 것이 증명된다면 그 걱정조차도 사소했다. 문득, 메르겔의 반응이 궁금해져 아멜리아는 옆으로 아주 살짝 고개를 돌려보았다.
"……이것도 그 사람의 명령인 겁니까."
뒤쪽에 어정쩡하게 서 있는 메이드를 바라보며 메르겔은 운을 뗐다. 평서문과 질문의 경계에 서 있는 말투였다.
"그렇게 생각하는 편이 좋지 않겠나? 윗사람의 명령에 따르는 건 아랫사람의 역할이니까. 다만 군데군데 있는 틈을 어떻게 메우느냐에 따라서 명령을 수행하는 방법도 달라지겠지."
제1황녀의 명령은 어떤 형식으로든 공신력을 갖는다. 그리고 아멜리아는 주군의 의문을 풀어주기 위해 이곳에 왔을 뿐이다. 물론 개인적인 욕심이 없다고는 못할 것이다. 이 일에 그녀 나름의 의도가 섞여 있다는 사실은 부정하기 어려웠다. 상황이 종료되고, 기지로 돌아올 때 한센은 어떤 반응을 보일까. 분명 화를 내겠지만 그 이상의 감정을 보여줄 수도 있었다.
솔직히 말하자면, 그것을 바랐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전하께서 눈여겨보시는 녀석이다. 실력의 한도를 명확히 하지 않으면 곤란해. 듣자 하니 그분께서 '엠프리스'라는 칭호를 신형기에 하사하셨더군. 은혜를 받은 이상 최소한 이름값 정도는 해야 되지 않겠나?"
처음으로 아멜리아와 메르겔의 시선이 마주쳤다. 모의전을 중계하는 스크린은 이제 두 사람을 비추는 배경이 되어 있었다. 만족스러운 대답이 아니었는지, 메르겔은 의심의 눈초리를 거두지 못한 채 작게 숨을 내쉬었다.
"선배가 그 사람의 명령을 자의적으로 해석하고 있다고 봐야겠군요."
"좋을 대로 생각해. 해석은 자유야."
"그렇다면 저는 이 일의 어디까지가 진실인지 알고 싶습니다. 그 사람의 의지는 얼마나 되며, 선배의 의지는 얼마나 들어가 있는 거죠?"
"글쎄. 과연 어디까지일까."
아멜리아는 눈웃음을 지었지만, 조명이 어두운 탓에 메르겔에겐 잘 보이지 않았다.
분량이 좀 더 있습니다만, 원활한 전투신 구성을 위해 짧게 끊었습니다.
03. 루벤크렌체(Luvenkrantze) - 3
정곡을 찔렸는지, 아유다는 눈을 크게 뜬 채로 숨을 삼켰다. 성격이 털털한 만큼 그녀는 사실을 숨기는 데 있어선 하수였다. 한센은 대답을 기다리지 않고 말을 이었다.
“아멜리아 선배가 아니면 넌 계속 수도에 있었을 거야. 올 때 기념품 좀 사오라고 하면서 아무렇지도 않게 일하러 갔겠지. 네 심정도 이해 안 가는 건 아니지만, 냉정하게 말해서 돈 때문에 여기 있는 거잖아. 안 그래?”
그러면서 한센은 엠프리스의 메인 카메라로 주변을 둘러보았다. 기체의 눈이 되는 듀얼 아이 센서에 잡히는 것은 오직 바다와 하늘뿐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센은 무언가를 찾고 있는 듯 열심히 카메라를 움직이고 있었다.
잠시 뒤, 수색에 전념하던 한센의 시선이 허공의 어느 한 점에 고정되었다. 엠프리스가 서 있는 방향을 바꾸며 아유다에게 제의하듯 이렇게 말했다.
“그러니까 포기하고 같이 돌아가자. 선배한테는 내가 잘 말해둘게. 데이트는 못 해줘도 동급의 보상은 해줄 테니까…….”
「그건 내 입장에서 곤란한걸.」
말하던 도중, 아유다가 나직이 거절의 뜻을 밝혔다. 그 말투에 든 이질감에 한센은 불편한 기분으로 침을 삼켰다. 다시 마주하게 된 그녀의 눈동자에 굳은 결의 같은 게 담겨 있어서, 변수가 있을까 싶어 조용히 마음을 긴장시켰다.
화상에 비친 아유다가 꺼내든 건 작은 머리띠. 평소 옆머리에 끼우고 있는 머리핀과 한 세트를 이루고 있었다. 손가락으로 잠깐 앞머리를 정돈하더니, 능숙한 손길로 부드럽게 머리칼을 쓸어 넘겼다. 그리고 화룡점정을 찍듯 천천히 머리띠를 썼다. 다시 한센을 바라봤을 때 아유다의 이마는 완전히 드러나 있었다.
머리띠를 본 시점에서 한센은 이를 악물었다. 아유다는 본격적으로 일을 벌이기 전, 저렇게 앞머리를 완전히 넘기는 버릇이 있었다. 최소한 포기할 의향은 없다는 것을 보여주는 표현이리라. 아유다는 말을 이었다.
「알바비가 아까워서 그런 건 아냐. 나도 별개로 그 신형기의 성능이 궁금했어. 물론 이런 식으로 확인하게 될 줄은 전혀 몰랐지만.」
“……슬슬 은폐장을 풀 때도 되지 않았어?”
낮게 경계심이 깔린 목소리로 한센이 말했다. 엷은 미소와 함께 아유다는 순순히 그의 요구에 따랐다. 엠프리스의 시선이 멈춘 곳에 무형의 파동이 일었다가, 어느 순간부터 종이 찢어지듯 갈라져 한 마도병기의 모습을 노출시켰다.
한센은 힘겨운 표정으로 작게 내뱉었다.
“아르엘 엘리트기…….”
수도 경비대의 도장으로 페인트 되고, 분류번호 1번을 배정받은 ISM-07 ‘아르엘’의 강화형. 대장급 인사만 탈 수 있는 기체로, 아멜리아 선배의 것임엔 의심의 여지가 없었다. 초장거리 비행에 필요한 외장형 부스터와 애프터버너를 장착한 것으로 볼 때 그것으로 베네치아까지 온 것 같았다. 오전에 출발해서 아까 도착한 것도 설명이 되었다.
「아멜리아 언니가 데려와준 건 맞아.」
아유다는 화상 모드를 계속 켜두고 있었다.
「혼자 일하면 지루하지 않느냐면서 부탁을 하나 들어달라고 했어. 수단 안 가려도 좋으니까, 네가 시험 비행하는 때에 맞춰서 ‘모의전’을 좀 해달라고.」
처음부터 그렇게 말하면 시간 낭비할 필요 없었잖아-눈을 가늘게 뜬 채, 한센은 아유다의 이변을 계속 주시했다. 앞머리를 깐 뒤로 그녀의 언동은 좀 더 당당하게 바뀌어 있었다.
「아멜리아 언니는 지금쯤 베네치아 기지에서 이 상황을 지켜보고 있겠지. 우리들의 통신까지 듣고 있을지도 몰라. 그렇다면 난 최선을 다해서 너와 싸워…… 아니, 모의전을 할 수밖에 없어. 알바비를 받는 동시에 내 호기심도 충족시켜야 되니까.」
“……이거 비전투형인 건 알고 있지?”
바보 같은 짓 하지 말라는 뜻이었지만, 무시한 건지 못 알아들은 건지 아유다는 묵묵부답이었다. 가슴 쪽의 벨트 파우치를 연 그녀는 은박지에 싸인 무언가를 손가락으로 잡아 꺼냈다.
초콜릿이었다.
「참고로, 싸우기 전에 이걸 꼭 먹어두라던데. 이유는 모르겠지만.」
“어이, 잠깐만. 안 돼! 네가 그걸 먹으면…….”
한센이 목소리를 높이며 동요하자 아유다는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머뭇거리더니, 이내 대수롭지 않게 넘겨버렸다. 초콜릿이 그녀의 입에 가까워질수록 한센의 안색이 점점 창백해져갔다.
의외로 소녀같이, 아유다는 초콜릿을 씹었다.
“실력 테스트 치곤 너무 과격하지 않나요?”
메르겔은 불쾌해진 기분을 감추지 않았다. 일이 꼬여버린 것은 차치하고, 예고도 없이 개입해온 학교 선배의 태도가 무례하게 느껴졌다. 그의 시선은 대형 스크린 속, 두 마도병기가 서로 엉겨 붙어 있는 광경에 못 박혀 있었다.
반면 이 일의 주동자는 태평했다. 아니, 나름 진지한 태도를 고수하고 있었다. 엠프리스와 아르엘의 격투를 한 순간도 놓치지 않겠다는 듯 메르겔을 바라보지도, 그의 말에 대답하지도 않았다. 그것이 후배의 심기를 건드리고 있다는 사실을 자각하지 못하는 듯했다.
“자칫하면 어느 한 쪽이 다칠 수 있어요. 법적으로 문제가 될 수도 있고요. 이런 식으로 밀어붙여봤자 선배가 얻을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습니다.”
평소와 다른 공격적인 말투에 메르겔의 선배, 아멜리아는 흘끗 그를 쳐다보았다. 흥미를 보인 것도 잠시, 다시 사무적인 분위기로 돌아와 부드럽게 운을 뗐다.
“모범적인 건 여전하구나, 메르겔 라인하르트.”
“칭찬은 됐으니 오늘 갑자기 찾아오신 이유부터 설명해주시죠, 선배.”
적의 반 의구심 반으로 된 눈빛이 아멜리아를 꿰뚫을 기세로 달려든다. 사람에 따라선 하급자의 도전으로 보일 여지도 있었다. 관제실 한편에서 기기를 만지던 아네모네가 불안이 담긴 시선을 이쪽으로 흘끗흘끗 보내기 시작했다. 아멜리아와 메르겔 사이에 사단이 일어나진 않을까 노심초사하는 것 같았다.
다만 아멜리아는 불쾌해하지도, 화를 내지도 않았다. 오히려 별 일 아니라는 듯 가볍게,
"확인할 게 있어서 왔다는 설명으로는 부족한가?"
라고 반문했을 뿐이었다.
선배가 위압감을 줄 생각이 없음은 메르겔도 알고 있었다. 그래서 절제하는 모습을 가장하고 있었지만 화가 난 기색이 아직도 여실했다. 이래서는 말장난밖에 안 된다고 판단한 그는 재차 엠프리스에게 달라붙으려는 아르엘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말했다.
"저로선 저걸 모의전으로 인정할 수 없습니다. 아르엘의 움직임 하나하나에 명백한 살의가 담겨 있어요. 제가 아는 아유다는 친구에게 저런 짓을 시도할 생각도 안 할 겁니다. 대체 아유다에게 뭘 불어넣으신 거죠?"
"파격적인 제안, 자극적인 말, 그리고 호기심을 실천으로 옮겨줄 기폭제."
자기가 활용한 수단을 나열하는 아멜리아의 말투는 무서울 정도로 또박또박했다. 사실을 말하는데 거리낄 게 있냐는 태도였다. 메르겔은 밀려드는 어처구니없음을 뒤로 미뤄둔 채 그녀가 한 말을 곱씹기 시작했다. 답은 얼마 안 가 나왔다.
"아유다에게 먹여선 안 되는 걸 먹이셨군요."
"카페인에 예민한 체질을 좋은 쪽으로 이용한 것뿐이야."
처음으로 아멜리아는 미소를 지었다.
"이렇게 해서라도 한센의 적응력을 시험해볼 필요가 있어. 두 사람에겐 미안하지만, 데이터를 얻을 방법은 이것밖에 없었다. 베네치아 기지를 주선해준 건 신형기의 성능 테스트를 위한 사전 준비 단계였지."
테스트 항목에 '전투'가 기본으로 들어가 있음은 굳이 말하지 않아도 되었다. 결과적으로 다 된 판을 망치는 모양새가 됐지만 증명될 것이 증명된다면 그 걱정조차도 사소했다. 문득, 메르겔의 반응이 궁금해져 아멜리아는 옆으로 아주 살짝 고개를 돌려보았다.
"……이것도 그 사람의 명령인 겁니까."
뒤쪽에 어정쩡하게 서 있는 메이드를 바라보며 메르겔은 운을 뗐다. 평서문과 질문의 경계에 서 있는 말투였다.
"그렇게 생각하는 편이 좋지 않겠나? 윗사람의 명령에 따르는 건 아랫사람의 역할이니까. 다만 군데군데 있는 틈을 어떻게 메우느냐에 따라서 명령을 수행하는 방법도 달라지겠지."
제1황녀의 명령은 어떤 형식으로든 공신력을 갖는다. 그리고 아멜리아는 주군의 의문을 풀어주기 위해 이곳에 왔을 뿐이다. 물론 개인적인 욕심이 없다고는 못할 것이다. 이 일에 그녀 나름의 의도가 섞여 있다는 사실은 부정하기 어려웠다. 상황이 종료되고, 기지로 돌아올 때 한센은 어떤 반응을 보일까. 분명 화를 내겠지만 그 이상의 감정을 보여줄 수도 있었다.
솔직히 말하자면, 그것을 바랐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전하께서 눈여겨보시는 녀석이다. 실력의 한도를 명확히 하지 않으면 곤란해. 듣자 하니 그분께서 '엠프리스'라는 칭호를 신형기에 하사하셨더군. 은혜를 받은 이상 최소한 이름값 정도는 해야 되지 않겠나?"
처음으로 아멜리아와 메르겔의 시선이 마주쳤다. 모의전을 중계하는 스크린은 이제 두 사람을 비추는 배경이 되어 있었다. 만족스러운 대답이 아니었는지, 메르겔은 의심의 눈초리를 거두지 못한 채 작게 숨을 내쉬었다.
"선배가 그 사람의 명령을 자의적으로 해석하고 있다고 봐야겠군요."
"좋을 대로 생각해. 해석은 자유야."
"그렇다면 저는 이 일의 어디까지가 진실인지 알고 싶습니다. 그 사람의 의지는 얼마나 되며, 선배의 의지는 얼마나 들어가 있는 거죠?"
"글쎄. 과연 어디까지일까."
아멜리아는 눈웃음을 지었지만, 조명이 어두운 탓에 메르겔에겐 잘 보이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