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
“그러니까, 제곱단위에서 세제곱단위로 올라가는 적분의 경우에는...”
툭-
“하아...”
또 뒤에서 지우개가 날아왔다. 이번 건 교과서 위에 떨어졌고... 내가 맞은것만 세도 이걸로 네개째. 본능적으로, 탄식이 나온다. 이 단순한 수단으로 사람을 이렇게까지 만들 수 있는 것인가. 처음 이 방법을 알아낸 인간의 손톱을 모조리 뽑아버리고 싶다. 슬슬 속에서 무언가 끓어오르지만 어쩔 수 없다. 뒤를 돌아보지 않고, 조용히 책상위에 떨어진 자그마한 육면체형 지우개 조각을 책상 옆으로 쓸어냈다.
“마, 이쪽으로 쓸지 말라고.”
옆 자리에서 엎드려있던 녀석이 짜증내면서 말해왔다. 사실에는 없는 일로 따지기에 뭐라고 반응하기에도 곤란하다. 분명히 지우개는 왼쪽으로 쓸어냈는데, 어째서 오른쪽에 있는 이녀석이 짜증을 낸다는 말인가.
“...미안.”
하지만, 생각은 생각일 뿐이다. 결국, 내가 하는 말은 저거 하나로 정해져 있다. 항상, 언제라도 말이다.
툭-
이번에는 머리에 꽂혔다. 슬쩍 손을 들어서, 뒷머리 오른쪽에 꽂힌 지우개를 살짝 털어냈다.
“개새끼야, 이쪽에 털지 말라고.”
옆자리 놈이 엎드린 자세에서 팔을 세워서 주먹을 들어보이며 말했다. 꽂힌 지우개를 쓸어내린 것 뿐인데 어째서 내가 욕까지 먹어야 하는 것인가, 의구심은 들었다.
“......”
고개를 끄덕여, 알아들었다는 말을 대신했다. 진즉에 알아듣고는 있었다. 저 녀석이 말하는 ‘이쪽’이라는 공간이 항상 터무니없을 정도로 그 크기가 왔다갔다하는 크기를 갖는 것일 뿐이다. 그에게 절대적으로 유리한 방향으로 크기가 항상 변하는 공간 말이다.
툭-
이번에는 감촉이 달랐다. 작은 지우개가 아니라 무언가 앞뒤로 긴 것이 가볍게 부딪히고 떨어졌다. 살짝 뒤를 돌아서 부딪힌 물체의 정체를 확인하려다, 뒷자리에 앉아있는 두명과 눈이 맞았다. 한명은 공부하는 척, 텅 빈 눈빛으로 칠판을 바라보지만, 입가에는 날 놀리는 듯한, 지금 상황이 너무나도 즐거운 듯한, 즐기는 듯한 미소가 대놓고 드러나있다. 그에 비해, 또 다른 한명은 오히려 꼽냐는 듯 날 노려본다.
“......”
어차피 눈이 마주쳐버린 것은 저질러진 물이기에 지금은 그 시선을 가만히 받아 넘기면서 바닥을 확인했다. 금새 종이비행기 하나가 떨어져 있는 걸 발견할 수 있었다. 국어 교과서를 접어서 만든 것인지, 교과서에서 봤던 시문과 삽화가 보였다. 그리고,
“...!”
내가 그 페이지에 했을 필기가 보였다. 바로, 종이를 주워서 펴보자, 무엇인지 모를 기하학적 문양, 통칭 낙서라고 불리우는 물건과 함께 나에 대한 욕설이 담겨 있다. 필기가 보이지 않을 수준으로 욕설로 된 글들이 난무하고 있다. 일단, 연필로 된 낙서와 욕설만 지워두려고 지우개로 지우고 있는데,
찌익-
잘 지워지지 않아서 지우개에 조금 더 힘을 가하자마자, 페이지가 낙서된 볼펜의 선대로 찢겨졌다. 처음부터 강하게 눌려쓴 볼펜 덕분에 종이 상태가 좋지 않았던 듯 하다. 일단, 두조각으로 찢겨진 페이지를, 공책 노트 제일 뒷 페이지에 끼워뒀다. 테이프가 없으니, 오늘 밤에 국어책까지 전부 챙겨가서 수선해야한다. 이번에는 필요한 부분은 따로 복사라도 해두던지 해야 할 것 같다.
♩♪♬♩♪
어느샌가 수업이 마치는 종소리가 들려온다. 분명 아까 페이지를 주울 때 슬쩍 시선이 지나갔을때는 5분정도 남아있었는데, 시간이 꽤나 빨리 흐른 기분이다. 이 다음 교시가... 국어였던가. 그러고보니, 아직 이 페이지 수업이 끝나지 않았을텐데.
어찌됬건 간에, 일단 이번 쉬는 시간부터 어떻게 해야지. 교과서나 필통이 걱정되긴 하지만, 일단 몸도 피하는 것이 벅차다. 바지 주머니에 억지로 3색 볼펜 한자루, 900원짜리 샤프 한자루, 누군가가 껍데기를 뜯어놓아서 어느샌가 내용물만 남은 허리부분이 두쪽난 지우개를 밀어넣었다.
“그럼, 오늘 수업은 여기까지. 인사는 됬고, 다음시간 준비나 해라.”
선생이 하는 말이 끝나자마자, 자리에서 일어나서 교실 앞문으로 향했고, 그대로 문을 열고 달렸다. 어디로 갈지는 생각하지도 않았다. 일단 도망칠 뿐이다.
==========================================
‘그 아이’가 교실 앞문으로 나가더니, 문을 닫으면서 어디론가 달려나갔다. 자기는 안보인다고 생각했겠지만, 교문에는 창문이 있다는 걸 잊어버리면 안된다.
“뭐냐, 저 녀석.”
앞에서 수업하던 교과서를 접고, 노트북을 막 종료한 선생님이 그가 나간 교문을 바라보며 그렇게 말하자,
“쌤, 신경쓰지마세요. 원래 저런 새끼니까.”
‘그 애’의 옆자리에 앉아있던 남학생이(아마, 이름은 서준호였을 것이다.) 그렇게 빈정거렸다.
잠자고 있던 애들을 제외한 나머지 아이들 사이에서 동의하는 말들이 낮게 들려온다. 내 친구들도 예외는 아니다. 평소에는 멋진 연예인들이나, 재밌는 연애 만화, 소설에 대해 엉터리로나마 평가하던 입에서, 매도하는 말들이 속속들이 나온다.
“...잖아. 너도, 그렇게 생각하지?”
내 앞자리의 포니테일 여학생이 나에게 그렇게 물었다. 사실, 질문에 대한 답은 정해져 있다.
“당연하지. ‘그 애’는 그런 애잖아.”
분명, 다르게 생각하지 않은 아이가 있을지도 모른다. 누군가에게, 분위기에 휩쓸려서 얼떨결에 손을 들거나, 손을 들도록 조종당한 이가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들 모두가 겉모습으로는 ‘그 아이’를 매도한다. 그건, 당연하지만 나 역시도 예외가 아니다.
드르륵-
선생님이 앞문을 닫고 나간 뒤 5초나 되었을까.
“아나, 씨발. 그 개같은 새끼가.”
“좀 참아라, 용태. 몇놈이 찾으러 갔잖아. 그리고, 어차피 그 새끼, 종치면 오게 되있어. 쌤 오기 직전까지만 좆나게 패면 되잖아. 게다가, 어차피 교과서도 그래놨으니, 그 씨발놈 어차피 국어선생한테 존나 까일걸? 그 씨발할 꼰대새끼 쓸데없이 책 조사는 철저하잖아.”
교문쪽 분단 뒷자리의 두 남학생이 그런 얘기를 하고 있다. 설명을 덧붙이자면, 둘이 각각 우리 반의 일진이라고 불리우는 이들이다. 잘 보면, 어느샌가 평소라면 반에서 날뛰고 있을 남학생 날라리 3명 정도가 어디론가 사라졌다. ‘그 애’가 나가고, 거의 비슷하게 뒷문으로 빠져나간 듯 싶다.
“씨발새끼, 존나 운동신경은 없는 놈이 도망치는 속도는 또 좋네.”
그러면서 일어선 둘은, 두자리 앞으로 걸어가더니
쿠당탕-
“!”
‘그 애’의 책상을 발로 차 넘어뜨렸다. 앞쪽으로 넘어진 탓에 서랍안에 들어가 있었을 필통과 교과서, 공책이 모조리 바닥에 떨어졌다. 바닥에 널부러진 책들을 짓밟으려고 다가가는 그때였다.
“아, 씨발 썅놈들아! 시끄럽다고! 여자한테 수면 중요한 거 모르냐? 어지간히 좀 해!”
내 두칸 뒤의 오른쪽 자리에서 엎드려있던 다혜가 갑자기 일어나더니 한 말이다. 뒤에서 으으으... 거리는 소리가 수업 중에 계속 들려왔는데, 아무래도 그녀였던 듯 하다. 그러고보니, 다혜 오늘 상태가 안좋았었다.
“시끄럽다, 썅년아. 남자들 일에 방해넣지 말고 계속 쳐 자.”
일진 남학생, 이름이... 설용태였을 것이다. 그 애는 피식 웃더니, 그렇게 말했다. 그는 자기가 친한 아이라면 꽤나 잘 대해주는 성격이니까, 방금 다혜(일단 내 친구지만, 여자 일진으로써 상당히 높은 아이다.)의 욕설도 그냥 넘어간 거겠지. 실제로 용태가 방금한 욕설은, 진짜 짜증나서 한 욕이라기보다는 거의 애칭 부르듯 한 것이니 말이다. 그리고, 용태가 우리 반에서 진심으로 욕설하는 대상은 그에게 무언가 잘못하지 않은 이상은 몇명 없다. 그 중 하나가, ‘그 애’다.
“아, 씹라. 책상 발로 까서 넘어뜨리면서 자라고 하고 있네 미친놈이. 그리고 종간나야, 내가 그거 씨발 전혀 안 멋있다고 말 존나게 했잖아. 어우... 겨우 잠들었는데!”
오늘 아침부터 아랫배를 부여잡고 있던 다혜다. 짜증내는 것도 당연하겠지. 그리고, 그건 용태도 대충이지만 알고 있을 것이다. 일단 둘이 사귄 것도 있었던 것 같으니 말이다.
“어이고야, 그랬었냐? 미안하네, 근데 이 씨발새끼가 도망쳐서 말이야. 그래서...”
“용태, 그 새끼 잡았다!”
갑자기 앞문이 벌컥 열리더니, 안보이던 세 명의 날라리 중 하나가 들어왔다.
“잘했다, 돈후. 금마 어딨는데? 안내해라. 마, 강상민. 니도 따라오고.”
“그래, 그 새끼... 5분이나 개겼네? 남은 5분은 줄창 패야겠다.”
손을 꺾으면서 온몸을 풀면서 교실문을 나서는 두명의 뒤에 대고, 다혜가 소리쳤다.
“다 좋은데, 우리 애들 눈 베릴 일은 없도록 해라? 내 기분 지금 개 좆같아서, 여차하면 다 갈아 엎어버린다.”
“걱정마라, 내가 한두번 했냐. 왜? 나중에 니 앞에다가 그 새끼 상판이라도 들이밀어 주랴?”
그 말을 하면서, 뒤를 돌아본 그에게 다혜는 가볍게 가운데 손가락을 들어서 대답했고, 용태는 한번 더 피식 웃고는 교문을 닫고 나갔다.
그 후 약 5분 뒤, 종이 치기가 무섭게 용태를 포함한 5명이 돌아왔다. 얼굴이 살짝 상기되었고, 숨이 살짝 거친 걸 보면... 그들과 같이 돌아오지 않은 ‘그 애’가 어떨지가 연상되어 소름이 돋았다.
결국, 마이의 단추 대부분이 터져나간 ‘그 애’는 종이 친 뒤 2분, 다르게 말하면 해당시간에 수업할 선생인 국어 선생님이 오기 직전에 돌아왔다. 돌아와서 쓰러져있는 자기 자리를 정리하던 도중에 국어 선생님이 들어왔고, 앞뒤 사정을 모르는 국어 선생님은 ‘수업 종이 치고 2분이 지났는데, 일어서 있는 학생은 수업들을 자격이 없다’ 라고 하면서 ‘그 애’를 10분간 밖에다 세웠다. 하지만, 그의 교과서에서 자기가 오늘 수업을 시작한 페이지가 찢겨나가있다는 걸 안 선생님은 더욱 화를 내면서, 결국 수업시간 50분 전체동안 복도에 세워두었다.
“......”
나도, 내 친구들도, 그 벌을 받았어야 할 아이들도 모두 입을 다물고, 그 아이가 받는 벌과 수업을 번갈아가며 아주 살짝, 미묘한 얼굴로 바라보았다. 그저, 아무것도 하지 않고 바라보았다.
그렇지만, 가장 무서운 건, 분명 안경을 쓰고 항상 단정하게 다니던 ‘그 애’가 안경도 없고, 마이의 단추 7개(양 팔에 작은 것 2개씩, 배쪽에 잠그기 위한 3개)가 모조리 뜯겨져 나간데다가 머리는 어디서 굴렀는지 머리칼 전체가 회색빛으로 보일 정도로 먼지를 뒤집어썼는데도, 조금의 의심도 뭣도 없이 복도에다 세웠다는 것이다. 블루 블랙으로 염색을 한 학생들도 단번에 염색인 것을 알아보는 선생님이다. 그걸 모를 리가 없다. 그런데, 그에 대해서 아무 말도 없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 걸까.
‘그 애’는 결국, 아무 말도 하지 않고 50분을 계속 밖에 서있었다. 귓가에 앵앵대는 듯한 수업을 받으며 줄곧 생각했다. 대체, 뭘 생각하고 있던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