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2 ROOKIES - 3
점심 이후 낸시 중위의 중대장실에 모인 인원들은 각자 명단을 받았다.
“일단 중대본부에 8명, 60㎜ 박격포반에 11명이 배치되고 남은 인원을 33명씩 각소대로 배치하지. 3개 분대와 소대본부 인원으로 아주 알맞은 숫자야. 위에서 이런 거 생각해서 병력을 배치해 줬다고 생각될 정도로 말이야. 물론 아직 완편은 아니지만 말이지.”
낸시 중위가 차를 마시며 말했다. 각 소대장은 자신의 명단을 살펴보았다.
“적절하게 섞어 놓으셨군요.”
유리아 중사가 말하자 낸시 중위는 살짝 웃어 보였다.
“일단은 기존에 있던 병사들, 이번에 전입한 병사들, 새로 군인이 된 신병들을 최대한 나눠서 배치했습니다. 기초훈련은 끝났으니 앞으로는 분대별, 소대별 훈련에 돌입해야지요. 전술훈련 위주로 나가면 되겠네요. 각 소대장도 지휘능력실습도 필요할 테니까요.”
유리아 중사의 말에 낸시 중위가 대답했다. 로나 소위와 레니 소위는 명단만 보고는 그런 것을 다 파악하기가 힘들었기에 낸시 중위와 유리아 중사의 틈에 끼어들기가 힘들었다.
“그럼 각 소대별로 오후에는 휴식을 취하고 소대장들은 각자 병사들과 잘 지내 보고. 아, 그리고 내일부터는 소대별로 훈련할 테니 각 소대장은 내일 08시 50분 까지 훈련계획 세워서 나에게 보고하도록.”
그렇게 이야기를 끝낸 낸시 중위는 남은 차를 마저 마셨고, 소대장들은 경례를 한 뒤 집무실 밖으로 나왔다. 각자 소대원들을 집합시킨 소대장들은 자기소개와 앞으로의 훈련내용, 자신의 지휘방침에 대해 소개하는 시간을 가졌다.
그렇게 오후 일과를 종료하고 로나 소위와 레니 소위는 각자의 방으로 돌아왔다.
“어때? 소대원들은?”
로나 소위가 묻자 레니 소위는 침대에 누우며 말했다.
“모르겠어. 사실 이 정도 병사가 내 밑에 있다는 게 실감이 안 나.”
“나도. 친해지는 것도 일이겠어. 나이가 비슷한 병사도 있고 완전 어린 병사도 있고 하니까 말이지.”
“친해진다니? 뭔 소리야?”
“응? 당연히 앞으로 같이 계속 지내고 어쩌면 전투를 함께 치를 인원인데 친해져야지.”
로나 소위의 대답에 레니 소위는 로나 소위를 바라보면서 표정을 굳혔다.
“너무 친해지면 명령을 듣지 않는다.”
“넌 너무 딱딱해. 병사들과 친해서 나쁠 것은 없지. 뭐 클레어 하사가 지난번 전투에 참가했던 인원이고, 병사들하고 친해서 좀 수월할 것 같긴 해.”
“클레어는 또 누구야?”
“우리 소대선임하사.”
로나 소위는 그렇게 말하고 자신의 가방에서 무언가를 꺼내기 시작했다. 서류철이었는데 양이 꽤 되었다.
“뭐야 그 서류들은.”
“소대원들 기초서류. 보고 알아둬야지.”
그런 로나 소위를 보고 레니 소위는 이상한 것을 보는 표정으로 바라보며 그대로 다시 침대에 바로 누워 버렸다.
다음날부터 각 소대끼리 훈련에 들어갔다. 유리아 중사는 기초훈련을 하면서 분대공방과 소대공방을 중점적으로 가르칠 계획이었고 레니 소위는 소대공방에 치중하겠다는 계획서를 제출하였다. 로나 소위의 경우는 각 분대별로 지속적인 모의 전투훈련을 하겠다고 보고했다. 낸시 중위는 그렇게 일주일간 교육을 하고 다음 주 금요일 소대별로 모의전투를 치르기로 결정했다.
일주일간의 교육이 끝나고 훈련장 뒤편의 숲에서 소대별 모의전투가 벌어졌다. 각 소대는 서로를 적군으로 상정하고 낸시 중위가 표시한 지점에서 출발하게 되어 있었다. 각 소대장은 다른 소대의 위치를 모르는 상태다. 사용할 탄환은 공포탄이고, 통제관은 낸시 중위와 옆 중대에서 파견 나온 중위들이 맡기로 했다.
“그럼 잘 부탁드립니다.”
“걱정 마십시오.”
파견 나온 중위들을 각 소대에 배속한 뒤 낸시 중위는 자신의 권총을 들어서 공중에 대고 발사해 신호를 보냈다.
“일단 이동한다! 내가 선두에 선다.”
“소대장님. 첨병을 내보내야 하지 않습니까.”
레니 소위에게 선임하사인 미네 하사가 말했다.
“제가 선두에 섭니다. 그게 제 지휘입니다.”
레니 소위의 대꾸에 미네 하사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자신의 위치로 돌아갔다. 그렇게 레니 소위 소대는 길을 따라 10여 분을 이동해 나갔다. 날씨가 좋았지만, 숲이다 보니 조금은 어둑어둑해서 음침한 기운을 내뿜고 있었다. 그런 레니 소위에게 미네 하사가 다가와 말을 걸었다.
“소대장님. 이 앞에는 적이 매복할 만한 지형이 많습니다. 먼저 첨병을 보내야 하지 않겠습니까.”
“아뇨. 적도 우릴 찾느라고 이동을 하고 있을 겁니다. 그리고 소대가 매복하기에는 좋은 지형이 아니에요.”
그렇게 말한 레니 소위는 그대로 앞으로 걸어 나갔다. 미네 하사가 매복이 있을 만한 장소라고 말했던 곳은 양 옆으로 낮은 언덕을 끼고 있는 숲에 난 길로, 언덕과 언덕 사이였다. 미네 하사는 혹시나 하는 마음에 각 분대에게 주변을 잘 살필 것을 명령했다. 그렇게 레니 소위가 언덕 사이를 거의 다 통과할 때쯤 뒤쪽에서 갑작스러운 총성이 들렸다.
“누가 발포한 거야?!”
“전부 은엄폐! 사격 위치로 대응사격!”
레니 소위가 뒤를 바라보며 소리쳤고 미네 하사도 소리쳤다. 언덕 위쪽에서 병사들이 사격을 하고 있었다. 어깨에 두른 띠가 녹색인 것으로 보아 적군이었다. 레니 소위 소대원들은 나무 등으로 몸을 숨긴 채 대응사격을 하였고, 백색 완장을 차고 있는 통제 중위는 이리저리 다니면서 몇몇 병력을 손으로 짚으며 사망선고를 내렸다. 잠시 동안 사격을 하던 적군 병력들은 일어나 도주를 시작했고 레니 소위는 언덕을 무작정 뛰어올라갔다.
“전부 따라와! 적 첨병을 추적한다.”
“소대장님! 잠시만요!”
미네 하사가 말리려고 했지만, 레니 소위가 무작정 뛰어올라가자 소대원들은 별수 없이 그런 레니 소위를 따라 언덕을 뛰어올라갔다. 그렇게 언덕을 넘어섰을 때, 레니 소위와 소대원들을 맞이한 것은 사방에서 들려오는 총성이었다.
“은엄폐!”
레니 소위가 소리치며 바닥에 엎드렸고 소대원들도 허겁지겁 엎드려 대응사격을 시작했다. 그 모습을 보던 통제 장교는 또다시 몇 명의 병사들에게 사망선고를 내렸다.
“소대장님. 앞쪽에 적병이 숨어 있는 것 같습니다. 우회해서 공격해야 합니다.”
“아니! 이 상황에서 병력을 나누는 것은 위험합니다! 적의 사격이 조금 주춤할 때를 대비해 바로 치고 갑니다.”
레니 소위가 그렇게 말하며 자신의 소총을 사격하자 미네 하사도 결국 별수 없이 엎드려서 이동하였다. 그렇게 서로 사격을 주고받던 중 갑자기 앞에서의 총성이 조금 잦아들었다. 지금이 기회라고 생각한 레니 소위는 몸을 살짝 일으켜서 소리를 치려 했다. 그러나 그 순간 뒤쪽에서 누군가가 레니 소위보다 먼저 소리를 질렀다.
“뒤에서 적 병력 출현!”
“뭐?!”
레니 소위가 깜짝 놀라서 뒤를 바라보았다. 그쪽에서 녹색 띠를 두른 인원들이 레니 소위 소대로 달려오고 있었다. 그것을 기점으로 앞쪽의 병력들도 레니 소위의 소대로 달려왔다.
“중지! 2소대 전멸.”
통제 중위가 호루라기를 불고 소리쳤고 그와 동시에 적 소대도 달려오는 것을 멈추었다.
“어떻게…….”
“자네는 매복에 걸린 거야.”
낸시 중위가 앞쪽에서 걸어왔다. 낸시 중위의 팔뚝에도 백색 완장이 채워져 있었다.
“유리아 중사의 1소대 승리.”
낸시 중위가 선언했고 1소대 인원들이 환호성을 질렀다. 레니 소위는 아직도 뭐가 뭔지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그런 모습을 바라보았고, 그런 레니 소위에게 낸시 중위가 걸어왔다.
“아직 뭐가 뭔지 모르겠다는 표정이군.”
“중대장님.”
그 뒤에 1소대는 다시 집결해 재배치에 들어갔고 남은 3소대와의 전투를 위해 자리를 이동했다. 2소대 대원들은 그늘에서 휴식하기로 하였고 레니 소위는 낸시 중위와 사후강평에 들어갔다.
“일단 소대의 선두에 첨병을 내놓지 않은 것부터가 자네의 실수였어. 그 바람에 소대 행렬 중간이 적의 매복에 의해서 공격받았고. 거기서 은엄폐해서 바로 대응 사격한 것은 좋은 선택이었지만 도주하는 매복을 바로 따라간 것은 문제였어. 적의 매복이 있다면 그 근처에 적의 주력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으로 좀 더 신중하게 움직여야지.”
낸시 중위가 그렇게 말을 꺼내자 레니 소위의 표정이 굳어 갔다. 낸시 중위는 그런 레니 소위의 표정을 보고는 살짝 말을 멈추었다가 계속 이어갔다.
“언덕을 넘어서 적 주력의 매복에 걸렸을 때도 순차적으로 언덕으로 후퇴한다거나 해서 다시 병력을 확인한 뒤 우회한다거나 하는 조치를 하는 게 맞았을 거야. 물론 적의 사격이 강했기 때문에 그 상황에서 대응 사격한 것도 나쁜 조치는 아니었어. 다만 그렇게 했으면 어땠을까의 문제인 거지.”
낸시 중위의 말이 옳았기에 레니 소위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다음부터는 좀 더 신중해지는 것이 좋아. 물론 자네처럼 빠른 판단이 나쁘다는 것은 아니야. 전쟁터는 워낙에 상황이 급변하기 때문에 빠르게 판단하고 빠르게 실행하는 것도 중요하지. 뭐가 되었던 나쁘지는 않았어. 상대가 좋지 않았던 거야. 유리아 중사는 나보다도 베테랑이니까.”
그렇게 말한 낸시 중위는 레니 소위의 어깨를 두들겼다. 그리고 잠시 뒤에 낸시 중위에게 상황이 종료되었다는 무전이 날아왔고 그렇게 그날의 훈련은 종료되었다.
야전에서 사후강평을 끝마친 인원들은 막사로 복귀했다. 낸시 중위는 집무실로 들어와 장구류를 벗고 휴대용 가솔린 버너위에 주전자를 올렸다. 잠시 뒤에 주전자의 물이 끓어오르자 주전자를 들어 올려 이미 차를 넣어 둔 차 포트에 물을 부었다. 그러는 순간 누군가가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들어온 인물은 각 소대장이었다. 낸시 중위는 소대장들에게 자리를 권하고 찻잔에 차를 따라 주었다.
“오늘 훈련은 할 만했나?”
“그렇습니다. 중대장님.”
낸시 중위의 물음에 로나 소위가 바로 대답했다. 레니 소위는 별다른 말이 없었다.
“경험이란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다들 알았을 거야. 그것을 아는 것만으로도 좋은 교훈이 되었겠지.”
낸시 중위가 그렇게 말하고 찻잔을 입으로 가져갔고 유리아 중사도 차를 입으로 가져갔다.
“맛있는 차네요.”
“맛있다니 다행이네요. 집에서 보내 준 차니 좋은 듯하긴 한데 무슨 차인지는 모르겠지만요. 그냥 향이 좋아서 마시고 있습니다.”
낸시 중위와 유리아 중사가 그렇게 말하자 로나 소위와 레니 소위도 차를 입으로 가져갔다. 그렇게 한동안 말이 없던 레니 소위가 입을 열었다.
“경험이 중요하다고는 하셨습니다만 저는 아직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레니 소위의 말에 낸시 중위가 레니 소위를 바라보고는 말했다.
“뭐 나로서도 경험이라고는 지난번 한 번의 전투가 다였기 때문에 뭐라고 말하기는 힘든 것이 사실이지. 그렇기 때문에 지속적인 훈련이 중요하다고 생각해. 유리아 중사의 야전경험도 그러하고.”
그렇게 말한 낸시 중위는 차를 한 모금 마시고 다시 입을 열었다.
“그리고 경험이 없다면 경험 있는 자에게서 그 경험을 배워야 하고. 앞으로도 유리아 중사에게 많이 배우는 게 좋을 거야.”
“저는 샤른 왕국 육군 장교입니다!”
레니 소위가 소리쳤다. 자존심이 강한 레니 소위로서는 하사관인 유리아 중사에게 졌다는 사실도 꽤나 큰 충격이었지만, 중대장인 낸시 중위가 그런 식으로 이야기하자 결국 그 화를 억누르지 못하고 분출해 버렸다. 그런 레니 소위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낸시 중위는 아무 말 없이 그냥 차를 마셨다. 결국 레니 소위는 일어나서 아무 말 없이 낸시 중위에게 경례하고는 그대로 나가 버렸고, 그 모습을 본 로나 소위도 얼른 일어나 그만 나가보겠다고 말하며 경례를 올렸다. 그렇게 두 명의 소위가 나가 버리자 낸시 중위는 찻잔을 내려놓고 빈 찻잔에 새로 차를 따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