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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린 2권


투고 | V노블





1. 여파 (2)


호메이 고교의 교사는 교실동과 관리동으로 나뉜다. 교실동에는 1학년부터 3학년까지의 교실이 있고 관리동에는 교무실과 보건실 및 다양한 특수교실이 모여 있다. 그 관리동 1층 복도를 걷던 ‘린’은 또다시 등이 근질근질한 느낌에 뒤를 돌아봤다.

‘역시 아무도 없는데…….’

이 근지러움의 원인은 누군가의 시선이었다. 유감스럽게도 시선의 주인공은 한 번도 확인할 수 없었지만, 이건 분명 기분 탓이 아냐……, 라고 가즈히로는 확신하고 있었다. 여하튼 하루 동안 몇 번이나 같은 시선을 느낀 터였다.

어제 그 시선을 깨달았다. ‘린’이 대활약한 구기대회가 사흘 전임을 고려하면 타이밍 상 구기대회의 여파라고 생각하는 게 자연스러웠다. 즉, 이것도 유명세 중 하나…… 였다.

‘뭐, 됐어. 조만간 나타나겠지…….’

대부분의 일은 ‘뭐, 됐어’로 넘기는 가즈히로의 특수 기술이 발동했다. 원래는 생각하기 귀찮아졌을 때 시동이 걸리지만 알고 보면 그리 나쁜 방법은 아니었다. ‘괜한 고민은 시간 낭비’라고들 하니까.

다시 복도를 걷기 시작한 ‘린’은 그 복도의 막다른 곳에 있는 도서실의 미닫이문을 열었다. 입구 바로 옆 접수대에 앉은 성실한 얼굴의 여학생이 ‘린’이 들어감과 동시에 힐끗 시선을 던졌다. 도서위원이 분명한 그 학생은 바로 읽던 책으로 다시 눈을 돌렸다.

가슴팍의 스카프는 파란색…… 즉, 3학년이었다. 혹시 주의를 받지는 않을까, 지레 겁먹은 가즈히로는 마음을 단단히 먹고 조용히 문을 닫았다.

도서실 공간의 안쪽 절반에는 총 12개의 서고에 학술서 등의 장서가 종류별로 정리되어 있고, 나머지 앞쪽 절반에는 그룹 스터디 등을 위해 긴 테이블이 놓여 있었다.

도서실을 이용하는 학생들은 거의 정해져 있어서 전교생 수에 비해 도서실 이용률은 절대 높지 않았다. 하지만 시험 전…… ‘시험 준비 기간’이라고 불리는 기간에는 사정이 달랐다. 시험공부를 위해 도서실을 이용하는 학생이 일시적으로 늘기 때문이다.

헛기침조차 조심스러운 고요함 속에서 교과서나 참고서를 넘기며 시험공부에 매진하는 학생들, 그 속에 사키와 토코도 있었다.

‘린, 왜 이렇게 늦었어~!’

‘미안, 미안.’

두 사람이 있는 책상을 발견하고 달려간 ‘린’은 뺨을 부풀리는 토코의 모습에 머리를 긁적였다. 그리고는 사키와 토코의 맞은편에 앉아 재빨리 공책과 교과서를 펼쳤다.

중간고사까지 앞으로 일주일. 그 시험공부를 일부러 도서실에 모여 하는 데는 이유가 있었다. 그건 사키가 이번 중간고사에서 성적을 올리지 못하면 집안 방침에 따라 농구부를 그만둬야 할 뿐 아니라 가정교사까지 붙을 위기였기 때문이다.

그런데 사키는 예전부터 모르는 문제는 누군가에게 물어봐야 성적이 오르는 타입이라고 한다. 즉, 셋이 모여 시험공부를 하기에 가장 적합한 장소가 이 ‘도서실’이었다.

그런 이유도 한몫해 사키는 ‘린’이 왔을 때도 한눈팔지 않고 공부에 매진했다. 그런데 덤으로 따라온 토코와 ‘린’은 왠지 여유가 넘쳐 보였다.

‘그런데 있지…….’

‘응……?’

‘근육통은 이제 다 나았어?’

‘응…… 어제보다는 꽤 괜찮아졌어.’

어제까지는 자연스럽게 걸을 수조차 없었던 근육통도 오늘은 제법 잦아들었다. 아직 완전하지는 않지만 적어도 안짱다리로 걸을 필요는 없었다.

재미있었는데……, 라며 헤벌쭉 웃는 토코에게 툴툴대며 입을 삐죽이는 ‘린’. 사키는 그런 둘을 작은 소리로 나무랐다.

‘뭐야! 둘 다 조용히 좀 해!’
사키 나름 낮춘 목소리였지만 이 조용한 공간에서는 속삭이는 소리조차 주위에 울렸다. 접수 카운터의 도서위원은 세 사람의 테이블을 째려보며 민폐라는 듯 눈썹을 찡그렸다.

사키의 가느다란 눈이 ‘린’과 토코를 원망스럽다는 듯 쏘아봤다. 마치,

‘그것 봐, 째려보잖아! 조심 좀 해!’

라고 말하듯. ‘린’과 토코는 우리 때문이 아닌데……, 하고 생각하면서 눈을 마주쳤다.
그리고 얼마 동안은 공부도 순조롭게 진행됐다. 하지만 아직 한 시간도 채 지나지 않았는데 ‘린’은 입이 찢어져라 하품을 했다. 집중력이 바닥난 징조였다. 그 순간 가즈히로는 또다시 등에 시선을 느꼈다. 그 주인공을 찾기 위해 재빨리 뒤를 돌아봤다. 하지만 입구 주위에는 아무도 없었고, 도서위원이 앉아 독서를 하고 있을 뿐이었다.

‘왜 그래?’

‘아니, 누가 자꾸 쳐다보는 것 같아서…….’

‘누가?’

‘그게…… 모르겠어…….’

출입구의 미닫이문에는 창문이 달려 있었다. 누군가가 거기로 들여다본 게 아닐까 싶었지만, 물론 확증은 없었다.

‘너희 정말……! 수다 떨지 말랬지!’

이번에도 사키의 목소리는 낮춰도 컸다. 듣다 못 한 도서위원이 성큼성큼 걸어와 충고했다.

‘주위에 피해 주지 말고 조용히 해. 또 떠들면 내쫓을 거야.’

그렇게 차갑게 내뱉고는 다시 접수 카운터로 돌아갔다. 이용자들이 매너를 지키도록 지도하는 일도 도서위원의 임무 중 하나인 듯했다. 가즈히로는 도서위원도 고생이 많구나……, 하고 남 일처럼 생각했다.

사키는 또다시 불만스러운 눈으로 ‘린’과 토코를 노려봤다. 덤으로 오른손을 붕붕 돌리면서. 물론 아이언 클로를 내세운 협박이었다.

‘린’과 토코는 다시 시험공부에 몰두했다, 고는 하나 한 번 끊긴 집중력은 다시 돌아오지 않았다.

‘그런데 사키…….’

토코가 이번에는 사키에게 말을 걸었다. 어떻게든 공부를 이어가고 싶은 사키는 무시하려 했지만 그게 마음처럼 되지는 않았다.

‘그러고 나서 선배랑 무슨 얘기 했어?’

‘아, 안 했어! 뭐야 갑자기……!’

사키가 당황하며 부정했다. 예상이 적중한 그 반응에 토코가 신이 나 처진 눈을 가늘게 뜨자 ‘린’이 한 마디 보탰다.

‘어? 뭐야, 선배라니?’

‘있지~ 어제 3학년 구기대회 구경하고 있는데 축구부 선배가 사키한테 말을 걸지 뭐야~♪’

‘뭐, 뭐야! 쓸데없는 소리 하지 마!’

사키가 손을 크게 흔들며 막으려 했다. 여느 때와 달리 얼굴이 홍당무가 된 사키의 모습은 거의 필사적이었다.

평소 억지 여왕을 자처하는 사키가 새빨갛게 얼굴을 붉힌 모습은 그야말로 재미있는 광경이었다. 그런 사키를 보고 ‘린’도 거들었다.

‘정말?! 그 선배 이름이 뭔데? 무슨 얘기 했어?’

‘어~ 이름이 말이지…….’

토코가 이름을 말하려 한 순간 사키의 오른손이 시동을 걸었다. 사키의 아이언 클로가 ‘린’의 이마에 일격을 가했다.

‘왜, 왜 나야?!’

그런 의문이 들었지만 사정없이 시작된 기술 앞에 의미를 잃었다. 눈에서 불이 뿜어져 나오는 듯한 격통이 ‘린’을 덮쳤다. 오늘도 사키의 악력은 강렬했다.

그 영원히 계속될 것만 같았던 힘이 갑자기 팟, 하고 사라졌다. 조금 전까지 사키의 손가락이 파고들던 관자놀이가 얼얼했다. 그 부분을 양손으로 문지르다 등 뒤에 인기척
을 느끼고 돌아봤다. 거기에는 아까의 도서위원이 팔짱을 끼고 장승처럼 서 있었다.

그 선배의 표정은 아까와는 180도 다른 웃는 얼굴이었다. 다만 관자놀이 부근이 움찔움찔 떨리며 핏줄이 서 있었다.

“지금 당장 나가 줄래?”

셋은 네……, 하고 대답하는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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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실에서 쫓겨난 셋은 얌전히 귀갓길에 올랐다. 셋이 모여 공부하기에는 최적의 장소인 그곳을 쓸 수 없게 되었으니 매우 유감스러웠다. 하지만 쫓겨난 원인의 장본인은 무슨 이유에선지 뾰로통했다.

“아, 뭐야! 린이 시끄럽게 굴어서 쫓겨났잖아!”

‘나 때문에 그런 게 절대로 아니거든!’

역시 억지 여왕이란 이름은 그냥 붙은 게 아니라고 확신했다.

“그나저나 이제 어디서 공부하지……?”

“집에서 하면 되지~♪”

“집은 왠지 감시당하는 느낌이 들어서 싫단 말이야.”

 세 사람이 모여 조용히 공부할 수 있는 장소…… 를 그렇게 쉽게 찾을 리가 없다. 도서실을 대신할 장소 확보는 쉽지 않아 보였다.

“그러고 보니까 린, 너 요즘 누가 쳐다보는 것 같다고…… 그러지 않았어?”

“지금은 괜찮아.”

“그래? 그럼 다행이지만…….”

“조심해. 만약 상대가 이상한 남자애면 그냥 해치워 버려.”

‘말이 되는 소리를 하셔…….’

교문을 나와 약 3백 미터 정도 가면 신호등이 있는 작은 사거리가 나온다. 사키와 토코는 여기서 ‘린’과 헤어지게 된다.

“린, 잘 가!”

“내일 봐~♪”

그렇게 말한 둘은 ‘린’의 귀갓길과는 정반대 방향으로 걸어갔다. ‘린’도 집에 가려고 발길을 돌려 걷기 시작했을 때 뒤에서 ‘린’을 불러 세우는 여자 목소리가 들렸다.

“지금 들어가세요?”

활기 넘치는, 그렇지만 품위 있는 목소리였다. 낯선 목소리에 놀란 가즈히로는 허둥대며 돌아봤다.

‘린’을 향해 한 여학생이 환한 얼굴로 달려왔다. 연지색 세일러복에 ‘녹색’ 스카프. 즉, 이 아이는 1학년이다. 덧붙이자면 ‘노란색’은 2학년, ‘파란색’ 스카프는 3학년이다.
그 여학생은 ‘린’의 앞에 딱 멈췄다. ‘린’보다 조금 작은 키가 트윈테일과 잘 어울려 중학생처럼 앳된 느낌이 들었다. 머리를 묶은 핑크색 리본이며 가방에 달린 큰 리본 액세서리는 그런 인상에 박차를 가하고 있었다.

귀여운 얼굴에도 천진난만함이 가득 남은 채였다. 하지만 어딘가 고집이 세 보이는 고양이 같은 눈동자가 인상적이었다.

“지금 돌아가세요?”

눈앞의 1학년이 같은 대사를 되풀이했다. 물론 가즈히로에게는 이 아이의 기억이 없었다. 필사적으로 ‘린의 기억’을 더듬어도 역시 이 아이에 대한 기억은 찾을 수 없었다.

“혹시…… 사람을 잘못 본 거 아냐?”

‘린’은 조심스레 되물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 소녀의 얼굴은 낯설었다. 가즈히로는 제가 착각했나 봐요…… 라고 얼굴을 붉히며 되돌아가는 소녀의 모습을 상상했지만, 소녀의 대답은 그런 상상을 가볍게 뛰어넘었다.

“아니요! 잘못 본 거 아닌데요?! 전, 린 언니님을 기다리고 있었어요.”

‘어, 언니님?!’

들어선 안 될 말을 듣고 만 듯한 감각이었다. 멍한 표정의 ‘린’에게 그 여학생은 당연하다는 듯 자기소개를 했다.

“인사가 늦었네요! 저는 1학년 B반의 ‘무라노 사야카’라고 해요.”

그렇게 말한 사야카는 꾸벅 인사를 했다. 교육을 잘 받은 바른 인사법이었다.

“실은 저…… 그저께 구기대회에서 린 언니님의…… 이름처럼 늠름한(*린凛, 늠름하다, 씩씩하다는 뜻을 포함하고 있다) 승리 포즈를 보고 첫눈에…….”

거기서 말이 끊겼다. 사야카는 얼굴을 붉히며 반짝이는 눈으로 ‘린’을 쳐다보고 있었다. 마치 기다리던 연예인을 눈앞에 한 사생팬 같았다.

“그래서 저, 린 언니님과 더 가까워지고 싶어서 여기서 지나가시길 기다렸어요.”

가즈히로는 그랬구만…… 라며 마음속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어제 아침 신발장에 들어 있던 러브레터의 주인공도 사야카가 분명했다. 눈앞의 소녀가 누름꽃이라는 번거로운 방법을 쓰다니, 조금 위화감이 남았지만 신발장에 러브레터를 넣어두는 행동은 조금도 어려워 보이지 않았다. 그런 생각을 하던 가즈히로의 머릿속에 의문이 하나 떠올랐다.

“그, 그런데…….”

“네, 말씀하세요.”

“우리 집에 가는 길, 잘 아나 봐?”

사야카와는 오늘이 첫 대면이었다. 당연히 이렇게 집에 가는 길에서 기다리는 일은 불가능했다. 하지만 사야카는 그런 상식을 너무 쉽게 깨 버렸다.

“네! 저…… 언니님에 대해 이것저것 ​조​사​했​거​든​요​…​…​.​”​

“뭐? 조사를…… 했다고?”

“네. 실례라는 건 알지만 언니님에 대해 너무 알고 싶어서 멀리서 계속 지켜봤어요.”

가즈히로는 그랬구만…… 하고 납득했다. 즉, 요즘 계속 느껴지던 시선의 주인공은 사야카였던 것이다.

“죄송해요, 언니님이 너무 보고 싶어서 저도 모르게…….”

그렇게 말하며 사야카는 고양이처럼 큰 눈망울을 글썽였다. 가즈히로는 감시당하는 느낌에 썩 유쾌하지만은 않았지만, 이렇게 사과하는데 화내는 건 어른스럽지 못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가즈히로의 마음을 간파했는지 사야카는 어느새 방긋 웃고 있었다.

“저어…… 같이 가도 돼요?”

마치 떼를 쓰듯 천진난만한 사야카의 눈동자. 딱 잘라 거절할 수도 없어 ‘린’은 순순히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벼, 별로 상관은 없지만.”

“정말요?!”

사야카가 눈을 반짝반짝 빛내며 온몸으로 기쁨을 표현했다. 현기증이 날 정도로 변화무쌍한 표정이 꼭 어린아이 같았다. ‘린’은 억지웃음을 지으며 사야카와 나란히 걷기 시작했다.

사야카의 입장에서는 동경하는 린 언니님과 함께하는 하굣길이었다. 염원이 이뤄졌다고도 할 수 있는 사야카는 연신 ‘린’에게 말을 건넸다.

“언니님은 혈액형이 어떻게 되세요?”

“아…… O형.”

가즈히로는 욱신거리는 두통을 참으며 ‘린의 기억’에 의지해 대답했다. 우연히도 가즈히로와 ‘린’은 같은 혈액형이었다.

“그렇구나! 전 A형이에요. 궁합이 딱 맞네요!”

“그, 그러니……?”

‘O형과 A형은 궁합이 좋다’니, 가즈히로는 처음 듣는 소리였다. 애당초 점에 전혀 관심이 없는 가즈히로에게는 조금도 중요치 않은 이야기였지만.

“그럼, 언니님은 몇 월생이세요?”

“음~ 생일이…….”

“언니님?”

“어, 왜?”

“왜 그렇게 생각하면서 대답하세요?”

고개를 갸웃거리는 사야카에게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대충 대답했다가는 허점이 드러날 테니 그때그때 ‘린의 기억’을 더듬으며 대답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다보니 당연한 얘기지만 바로 대답하는 건 불가능했다. 대답이 궁해진 가즈히로는 일단 화제를 돌려 얼버무리기로 했다.

“그, 그런데 그 ‘언니님’이라는 호칭은…… 빼 주면 안 될까?”

“어머나, 왜요?”

“아니, 그게… 왠지 좀 간지러워서, 응?”

“어머나, 의외로 부끄럼을 많이 타시나 봐요.”

사야카는 흐뭇한 구경거리라도 발견한 듯 우아하게 웃었다.

“그럼 조금 버릇없어 보일지도 모르지만 다음부터는 ‘언니’라고 부를게요.”

‘그게 그거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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