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및 문화 콘텐츠 사이트 삼천세계

나는 린 2권


투고 | V노블



1. 여파 (4)


학교가 가까워질수록 통학로에는 다른 학생들의 모습이 눈에 띄기 시작했다. 사정을 모르는 그 아이들은 팔짱을 끼고 걷는 ‘린’과 사야카를 무슨 동물원의 원숭이라도 보는 듯한 눈으로 힐끔힐끔 쳐다봤다.

‘윽, 뒤통수 따가워 죽겠네…….’

호기심 어린 시선은 어제와 다르지 않았지만 명백하게 시선의 질이 달랐다. 아침부터 여자애들이 팔짱을 끼고 등교하고 있으니 무리도 아니었다. 하지만 같이 걷는 사야카는 그런 시선 따위 전혀 아랑곳하지 않았다.

그런 ‘린’과 사야카 후방 약 20미터 지점에 수상한 움직임으로 앞을 살피는 두 여학생이 있었다. 등굣길에 ‘린’을 발견한 사키와 토코였다.

“저거, 린 아냐? 사키, 보여?”
“저 포니테일…… 틀림없어. 옆의 트윈테일은…… 저건 설마……?”

둘은 ‘린’과 거리를 유지하며 수군수군 밀담을 나누고 있었다.
‘린’ 옆에 꼭 붙어 걷는 여학생을 잡아먹을 듯 주시하면서.
토코는 시력이 별로 좋지 않지만, 시력에 자신이 있는 사키는 완벽하게 표적을 포착한 상태였다. 1학년임을 나타내는 녹색 스카프와 트윈테일. 그 두 특징이 ‘사키의 기억’을 되살아나게 했다.

“무라노…… 사야카다.”
“뭐?! 정말? 그 무라노 사야카야?”

사키의 시력은 ‘2.0’이다. 잘못 봤을 리는 없었다.

“하긴 그렇게 활약했으니 쟤한테 찍히는 것도 당연하지 뭐. 이거 구기대회 여파 한 번 끝내주네.”
“어, 어쩌지? 린이 굉장히 난처해 보이는데…….”
“…….”

토코의 물음에 사키는 아무 말 없이 생각에 잠겨 있었다.
햇살이 옅게 비치던 구름 낀 하늘은 어느 샌가 금방이라도 비가 쏟아질 듯 잿빛으로 물들어 있었다. 어두워진 하늘을 올려다 본 ‘린’의 뺨에 물방울이 톡, 하고 떨어졌다.

‘비……!’

한 방울…… 또 한 방울 내리기 시작한 비가 점점 기세를 더해 갔다. 사야카는 가방에서 접는 우산을 꺼내기 위해 끼고 있던 팔짱을 풀었다. 그 순간 이 숨 막히는 상황에서 자연스럽게 탈출할 방법이 떠올랐다.

“미안! 난, 우산이 없어서 먼저 갈게!”

그렇게 말한 ‘린’은 바람처럼 뛰기 시작했다. 등 뒤에서

“아앗! 저 우산 있는데 같이…… 읏!”

라고 외치는 사야카의 목소리가 들렸지만 안 들리는 척하며 돌진했다. 억지스럽긴 했지만 훌륭한 탈출극이었다.
우왕좌왕 우산을 꺼내드는 학생들 사이를 요리조리 달리던 ‘린’은 조금씩 세지는 빗줄기를 얼굴에 느끼며 간신히 학교에 도착했다.

‘아이고…… 살았네…….’

숨을 고르며 학생용 현관 창문으로 비 내리는 교정을 살폈다. 다행히도 사야카가 쫓아오는 기색은 없었다.
몸이 다 젖었지만 쏟아지기 시작할 때라 물에 빠진 생쥐 꼴은 면했다.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실내화로 갈아 신고 교실로 향하려던 순간 ‘린’은 단단하고 커다란 무언가에 부딪혀 나동그라졌다.

“미, 미안. 괜찮아……?”

‘린’과 키는 비슷하지만, 체격이 탄탄한 오무라였다. 구기대회에서는 ‘린’과 함께 포수로 대활약한 반 친구였다.
오무라는 미안해하며 어깨를 움츠렸다. 부딪힌 쪽은 ‘린’인데 말이다. 그것만으로도 오무라의 착한 성품이 전해졌다.

“나야말로 미안!”

그렇게 말한 ‘린’은 오무라를 마주보고 멋쩍게 웃었다. 그 순간 오무라는 새빨개진 얼굴로 부자연스럽게 시선을 돌렸다.

‘……?’

황급히 가방을 뒤지기 시작한 오무라는 안에서 파란 수건을 꺼내 ‘린’에게 내밀었다.

“이, 이거…… 써.”

‘린’은 갑자기 무슨 소리인가 싶어 의아한 얼굴로 오무라를 바라보았다. 하지만 오무라는 뭔가를 오해한 듯했다.

“거, 걱정 마. 한 번도 안 쓴 새 거야.”

그런 문제가 아니라……, 라고 말하려던 ‘린’의 손에 수건을 쥐어 준 오무라는 쏜살같이 자리를 떠 버렸다.
오무라의 알 수 없는 행동에 고개를 갸웃대며 복도를 걷고 있자니 갑자기 누군가가 ‘린’의 등을 세게 내리쳤다. ‘린’의 뒤를 쫓아 뛰어온 사키와 토코였다.

“안녕, 린.”
“안녕~♪”
“으악! 놀래라!”

방심하고 있다가 불시의 습격을 받은 ‘린’은 정말 펄쩍 뛰며 놀랐다.

“뭘 그렇게 놀라?”
“어? 아니, 그냥…….”
“뭐, 됐고 그보다…….”
“……?”
“왜 무라노 사야카랑 팔짱끼고 있었어?”
“봐, 봤어……?”
“처음부터 끝까지, 전부.”

아마 지인들에게는 안 들켰겠지…… 했지만, 세상 일이 다 가즈히로 마음대로 돌아가지는 않았다. 하지만 그 목격자가 사키와 토코인 이상 별다른 방도가 없었다. 어깨를 축 늘어뜨리고 있던 ‘린’은 잠깐만……, 하고 뭔가가 마음에 걸렸다.
사키는 어떻게 그 아이의 이름을 아는 거지―?
그런 가즈히로의 머릿속에 떠오른 질문에 대답하듯 토코가 입을 열었다.

“무라노 사야카, 우리랑 같은 중학교 출신이야~”
“아, 그래서 아는구나.”

복도에 서서 이야기를 나누는 세 사람의 뒤로 등교한 학생들이 연이어 지나갔다. 끊이지 않는 인파가 지금이 한참 등교할 시간임을 대변하고 있었다.

“걔, 나도 그렇게 쫓아다닌 적 있어. 중학교 때 일주일 정도.”
“사키도 농구할 때만은 멋있었거든♪”
“‘만’은 빼줄래?”

사키의 지적에 토코는 혀를 빼꼼 내밀며 어깨를 움츠렸다. 토코는 그런 여자아이 특유의 제스처가 참 잘 어울렸다.

“그래서, 나중엔 어떻게 됐어?”
“뭐, 나중엔 질려서 다른 애로 갈아탔지만…….”

그렇게 말하며 사키는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그 표정만으로도 당시의 상황은 충분히 상상할 수 있었다.

‘세상에…… 그럼 오늘 받았던 그런 따가운 시선을 일주일 정도는 참아야 하는 건가…….’

그러면 안 되지만 그때의 사키를 상상하자 웃음이 터지려 했다.

“왜 웃어?”

사키의 가느다란 눈이 더욱 매서워졌다. 웃을 생각은 없었는데 아무래도 얼굴에 나타났나 보다.

“워~ 워~ 어쨌든…… 무라노 사야카는 그런 애야!”

어딘가 평화로운 토코의 애니메이션 목소리가 조금이나마 분위기를 누그러트렸다. 그 때문인지 당장이라도 아이언 클로를 날리려고 꿈틀대던 사키의 오른손이 잠잠해졌다. 그와 동시에 사키가 주위를 살피더니 ‘린’에게 귓속말을 했다.

“그런데 너, 캐미솔은?”
“캐미솔?”

낯선 단어에 가즈히로의 머릿속에 물음표가 난무했다. 사키와 토코는 얼굴을 마주보며 어이가 없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

“브라, 다 비친다.”

‘린’은 반사적으로 자신의 몸을 내려다봤다. 하얀 서머 세일러복으로 감싸인 가슴의 몽우리 부분이 정말 비치고 있었다. 오늘 별 생각 없이 골랐던 흰 물방울무늬 브래지어가 희미하게.

‘……읏!’

아침에 거울로 전신을 확인했을 때는 비치지 않았는데. 하지만 비에 젖은 하얀 서머 세일러는 상상 이상으로 미덥지 못했다.

“하복이니까 캐미솔 정도는 입어야지!”
“응응! 우리 하복, 젖으면 다 비치니까.”

물론, 사키도 토코도 하복이었다. ‘린’과 마찬가지로 비에 젖었지만 전혀 비치지 않았다. 세일러복 밑에 캐미솔을 입고 있기 때문이었다.

“그 수건으로 빨리 가려.”

그렇게 말하며 사키는 ‘린’이 들고 있는 파란 수건을 가리켰다. ‘린’은 숄처럼 어깨에 수건을 걸쳤다. 넉넉한 사이즈의 수건 덕에 다행히 가슴이 가려졌다.
가즈히로는 휴우 한숨을 쉬며 안도했다. 누가 본다고 닳지는 않지만 같은 남자로서 다른 남자들도 성적인 시선으로 쳐다보리라는 걸 충분히 알고 있는 만큼 안도의 한숨은 더욱 깊었다.

“그 수건…… 네 거야?”
“아니, 아까 오무라가 줬어…….”

어쩐지 이 수건을 줄 때 오무라의 태도가 이상하더라니……, 라 회상하자 퍼즐 조각이 들어맞듯 하나의 결론에 도달했다.
오무라는 ‘린’의 브래지어가 비친다는 사실을 알고는 서둘러 가릴 수건을 주고 도망치듯 가 버린 것이었다.

“그랬구나~♪ 역시 오무라는 신사네~♪”
“그러게! 외모는 좀 아쉽다만.”

사키가 너무 태연하게 잔인한 소리를 했다. 하지만 둘 사이에서 오무라의 호감도가 올라가긴 한 모양이었다.

“맞다!”

토코가 갑자기 소리를 질렀다. 안 그래도 큰 애니메이션 목소리에 복도를 지나가던 몇몇 학생이 놀란 얼굴로 토코 쪽을 돌아봤다.

“아까 말한 무라노 사야카 말인데! 린, 너도 난처하지?”
“응, 그야…….”
“뭐야, 그 뜨뜻미지근한 대답은? 설마 너도 마음이 있는 건 아니겠지……?”

사키가 날카롭게 딴죽을 걸었다. 마음이 있는 건 아니냐고 물으면 ‘있다’고 대답할 수밖에 없었다. 뭐니 뭐니 해도 알맹이는 건전한 남고생이었다. 하지만 지금 이 상황에서는 쓸데없는 소리를 하지 않는 게 제일이었다.

“서, 설마…….”
“그럼, 정말 좋은 방법이 있는데♪”

토코의 처진 눈이 장난스럽게 웃고 있었다. 두말할 것 없이 뭔가 꿍꿍이가 있는 눈이었다. 안 좋은 예감이 가즈히로의 머릿속을 스쳐지나갔다.

“좋은 방법이 뭔데?”

사키가 당연한 질문을 했다. 그때 복도에 예비종이 울려 퍼졌다. 주위를 둘러보자 복도에는 이미 셋 외에는 아무도 없었다.

“꺄아~ 홈룸 시작하겠어!”

어느새 그런 시간이 되어 있었나 보다. 얼빠진 소리를 지른 사키를 선두로 세 사람은 허둥지둥 복도를 뛰어갔다.

  1. 선행 연재 게시물 마다 한 명씩 감상 혹은 응원 댓글을 달아주시는 분을 추첨하며, 
  2. 「나는 린 2권」 단행본 1권을 선물로 드립니다. (출간 후 우편 발송)
  3. 해당 연재분 게시일로부터 일주일 이내의 댓글 중에서 선정하며, 댓글로 공지합니다. 
  4. 당첨자에게는 '삼천세계' 가입 정보를 통해 연락드리며, 3일 내 메일 회신이 없을 시 해당 게시물 덧글의 추첨 후 추가 참여자 중 재추첨합니다.
  5. 중복 선정(이벤트 전체에서 동일인 두 번 이상 당첨)은 하지 않습니다. 
  6. 무성의한 ​댓​글​(​광​고​,​도​배​,​악​플​ 등)은 추첨에서 제외합니다.

댓글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