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화
찰싹!
그때 찌릿하고 먹먹한 압박이 내 뺨을 강타했다. 그 고통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정태범. 니가 그러고도 인간이야?!”
난 얼얼한 뺨을 매만지며 휘둥그레진 눈으로 그녀를 바라봤다. 순간 깊은 잠에서 깨어난 듯 정신이 말똥해졌다.
“아, 아니야……. 가연아…… 이건……”
‘왜 이러는 거지? 내가 왜…… 그런 짓을……’
“정태범, 실망이야. 네가 깨어났을 때 조금이라도 희망을 본 내가 잘못 생각했어.”
“가연아. 아니라니까…… 이건 마치……”
“마치 뭐?”
무슨 말을 꺼내야할지 모르겠다. 그보다 아까부터 머리가 깨질 듯이 아파서 눈앞의 사물이 흐느적거렸다.
“너…… 방금 웃고 있었어.”
“……뭐…….”
그 말을 끝으로 가연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관리구역을 나가버렸다. 난 기운 빠진 다리를 지탱하기 위해 먼지가 눌러 붙은 의자를 끌어와 앉았다.
“내가…… 웃고 있었다고…?”
영원히 오지 않을 것 같았던 3시간이 금방 지나갔다. 가연은 그 뒤로 보존실 구석에 쭈그리고 앉아, 나를 경멸의 눈으로 흘겨봤다.
난 지금도 내가 하려던 짓이 믿어지지 않았다. 궁지에 몰리면 인간의 타락한 면이 무의식중에 나온다고들 하던데, 설마 내 자신이 그만큼 위기감을 느낀 걸까?
그때 센서에 반응해 타임리미트 소리가 들려왔다.
[생명유지시스템 종료까지 앞으로 10초.]
벽면 뚜껑이 기계적인 소리를 내며 돌출됐다. 14번 인큐베이터가 열리며 뿌연 수증기가 밖으로 배출됐다.
[생명유지시스템이 종료되었습니다. 개폐 프로시저로 자동 이행합니다. 유압체크. 액체산소배출.]
나와 가연이 동시에 인큐베이터가 개폐 되는 곳으로 걸어갔다. 조만간 외부 보호벽이 열리고 안에서 인큐베이터의 원통형 캡슐이 모습을 드러냈다.
수증기가 뿜어져 나와 한동안 시야가 가려졌지만, 이내 맑아져 원통 안을 볼 수 있게 되었다. 다행히 덩굴이 휘감고 있지 않아, 자력으로도 유리커버를 열고나올 수 있으리라. 이걸로 3명 째. 과연 어떤 사람이 잠들어 있었을까? 생각해보면 사람이 많을수록 이로운 점도 있다.
현재 나와 가연은 인큐베이터에서 잠들기 전의 기억이 없다. 충격으로 인해 기억이 잠시 혼란상태에 빠져있는 걸로 추정되지만, 이 많은 사람들 모두가 기억장애를 앓고 있을 순 없다. 분명 누군가는 상황을 명료하게 설명해 줄 수 있으리라.
난 원통형 인큐베이터를 지켜보며 안에서 사람의 기척을 기다렸다. 그러나 개폐 프로시저가 진행된 지 1분가량이 지났음에도 안에서 인기척은 느껴지지 않았다.
부끄럼을 타는 걸까? 그런데 이 불길한 예감은 뭘까?
“이상한데? 왜 나오지 않지?”
나도 가연이도 원통 안을 들여다볼 생각도 못하고 서로 눈치만 살폈다.
“태범이 니가 한 번 확인해봐.”
“뭐? 자, 잠깐… 그러다가 여자면 어떻게 하게?”
“그럼 남자면 어쩌고? 지금은 그런 걸 따질 때가 아니잖아.”
여전히 말투는 차가웠다. 난 할 수 없이 머리를 긁적이며 천천히 인큐베이터 앞으로 다가갔다.
조작 버튼을 누르자 뉘여 있던 인큐베이터가 자동적으로 전개돼, 사람이 나오기 편하도록 비스듬히 기울어졌다. 유리커버로 다가가 눈을 가늘게 뜨고 내부를 확인했다.
“엇!”
일순 인큐베이터 안의 뿌연 수증기 사이로 확 뜨여진 눈알과 시선이 마주쳤다.
후들거리는 다리를 뒤로 뺐다. 땀이 흘러내렸고 손발의 감각이 없어진 것 같은 기분에 사로잡혔다.
“태범아. 무슨 일이야? 사람은?”
“어, 어떻게 이런 일이…….”
“에? 왜 그러는 건데? 응? 꺄아아──!”
오늘로서 두 번째 듣는 여성 특유의 비명 소리가 보존실에 하울링을 자아냈다. 수증기가 사라진 인큐베이터 안은 믿을 수 없는 광경이 펼쳐져있었다.
뼈마디 사이사이에 달라붙은 가죽. 피부가 쪼그라들어 마치 미라 같은 시체가 인큐베이터 안에 들어있던 것이다. 눈은 확 떠진 채 정면을 향해있고, 입과 코는 산소주입장치가 연결된 채였다. 머리카락이 긴 것으로 보아 여자 같은데 형체를 알아보기가 힘들어 나이 때를 가늠하기는 어려웠다.
“이게 어떻게 된 거야! 왜 사람이 죽어있냐고!”
경악을 금치 못한 난 입술을 깨물고 유리커버를 자력으로 열어젖혔다.
“태범아 뭐하는 거야?!”
“확인해 봐야 되잖아. 이건 영양분 주입이 이뤄지지 않았다는 거야. 피부가 부패되지 않고 남았다는 건 액체산소의 주입은 제대로 작동됐다는 뜻이고. 어딘가 시스템에 문제가 있는 거야.”
쭈글쭈글한 시체를 가까이에서 바라봤다. 속이 매스꺼웠지만 원인을 파악하는 게 시급했다.
난 시체 등 뒤로 나있는 몇 가닥의 바늘을 보았다. 필시 이곳으로 영양분이 주입될 거다. 바늘에는 크게 문제가 없어보였다.
영양분 주입의 문제? 혹은…….
재빨리 보존실을 달려 관리구역으로 뛰어 들어갔다. 가연이 내 뒤를 따라왔다.
“뭐 하는 거야?”
“장치가 고장 난 게 아니라면 영양분을 주입하는 탱크에 원인이 있다는 거야. 인큐베이터는 공급 탱크에서 영양분을 지원받고 있어. 그런데 이상하잖아. 저 시체가 미라가 될 정도라면 상당히 오래 전부터 영양분 공급이 끊겼다는 건데, 나하고 너는 무사해.”
빠르게 추측을 토해내고 아까 누르려다 주저한 수동 잠금장치 스위치를 망설임 없이 눌렀다.
그러자 30개의 인큐베이터의 현황이 실시간 2D 모니터에 표시됐다. 나와 가연은 그 표를 보자마자 경악하고 말았다.
30개의 인큐베이터 중 나와 가연의 인큐베이터를 제외하고 초록불이 들어온 건 총 3개. 나머지 25개는 붉은 경보등이 점멸했고, 전부 영양분 공급이 중단된 상태였다.
“그런 거였나…… 설마 이런 일이…….”
“태범아. 뭐가 어떻게 된 거야?”
설명을 위해 30개의 인큐베이터가 표시된 도표를 큰 모니터로 끌어왔다. 그리고 각각의 인큐베이터와 연동된 영양분 저장 탱크를 설정해 자세하게 보여줬다.
“이곳에는 총 6개의 영양분 저장 탱크가 있어. 한 탱크 당 다섯 명을 관리하도록 설계된 시스템인거 같아. 그런데 그중에 나와 네가 속해있던 제2영양분 공급 탱크를 제외하고 모든 영양분 탱크에 전력이 들어가 있지 않아.”
내 말에 가연의 동공이 유리 색처럼 변해갔다. 이내 주저앉으며 고개를 떨궜다.
“저장탱크가 위치한 곳은 이 보존실 건물 지상 같은데, 전력공급을 지원하는 5개의 인공 자가발전소에 불이 들어오지 않아.”
이럴 리가 없다. 어쩌다 한 개의 자가발전소가 마비될 순 있다. 그러나 이런 최첨단 보존실의 생명유지권한을 쥐고 있는 나머지 발전소들까지 한꺼번에 고장 나긴 힘들다. 이건 누군가의 인위적인 음모라고 밖에 볼 수 없다. 아니면 어떤 특수한 사유가 있던 걸까? 아무튼 나와 가연이는 운이 좋았다.
내가 잠들어 있던 인큐베이터가 다른 영양분 탱크와 연결되어 있었다면, 난 지금쯤 저 미라처럼 비참하게 죽어있었을 거다.
그렇게 생각하니 견디기 힘든 두려움이 피어올랐다. 책상에 머리를 박고 기괴한 신음소리가 터져 나왔다.
“나, 나머지 사람들은……?”
“뭐?”
고개를 휙 돌려 낮게 읊조린 가연이를 바라봤다. 가연이는 암묵적으로 나를 응시하고 있었다.
“저 초록불이 들어와 있는 나머지 사람들은?”
아직 살아있는 사람들이 있다. 3명. 천운을 타고 영양분 공급이 정상적으로 이뤄지고 있다. 저들만큼은 살려야 한다.
“현재. 3명은 각각 1시간 뒤, 1시간 20분 뒤, 2시간 45분 뒤에 개폐가 이뤄질 거야.”
다행히 남은 타임리미트까지 오래 걸리지는 않았다. 하지만 그전에 5개의 인큐베이터가 자동적으로 개폐될 거다. 그 5개의 인큐베이터 안은 처참한 지옥이 펼쳐져 있으리라.
난 억울하기 짝이 없는 이 상황에 분노마저 느껴지지 않았다.
이대로 여기서 죽을 순 없다. 반드시 살아서 밖으로 나가야 한다. 조만간 이 어처구니없는 상황에 오기를 부리듯 이를 악물었다.
“가연아. 앞으로 3시간 뒤에 여기서 나간다.”
“뭐? 그게 무슨 말이야?”
“어차피 저 3명을 제외하고는 전부 죽어버렸어. 이제는 우리 5명만이 헤쳐 나가야 돼. 식량은 상당하지만, 그리 오래 버틸 정도는 아니야. 어차피 우리는 이곳을 나가야하고, 다섯 명이 전부 모일 타이밍이 가장 적절할 거라고 생각해.”
“저, 정말 저 사람들이 전부 죽은 거야?”
난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1시간이 지나는 동안 나는 개폐가 이뤄진 3개의 인큐베이터 안을 확인했다. 역시 예상했던 대로 인큐베이터 안에는 처음 발견한 미라 같은 시체가 놓여있었다. 가연은 진정이 덜 됐는지 계속해서 관리구역 안에 앉아있었다.
난 죽은 그들을 향해 묵념밖에 할 수 없었다.
슬슬 생존자의 타임리미트가 다가왔다. 난 가연에게 작은 희망이라도 주기 위해 첫 생존자 개폐 프로시저가 행해질 걸 말했다. 가연은 곧 자리를 털고 일어나 강하게 눈을 떴다. 그 눈동자 속에는 반드시 살려내겠다는 의지가 들어있었다.
[생명유지시스템 종료까지 앞으로 5초.]
카운트다운에 들어간 인큐베이터가 전개되며 뿌연 수증기가 흘러나왔다. 이내 유리커버 안에서 사람의 형체가 보였다. 이번엔 미라가 아니다. 피부도 매끈거리고 생기도 있어 보이는 게 엄연히 살아있는 인간이었다.
나와 가연이의 안도하며 긴장했던 다리에 힘이 풀려버렸다.
개폐가 완료되고 유리커버가 삐거덕 거렸다. 아직 근육에 힘이 없어서 유리커버를 여는 게 버거울 거다.
“태범아 도와줘.”
난 바로 유리커버를 열어젖혔다. 순간 얼굴이 화끈 달아오르고 말았다. 하필 이번 생존자는 여자였던 것이다.
“으아…….”
새된 음성을 내지르며 뒤로 슬그머니 빠졌다. 나를 의식한 가연이 유리커버 안의 소녀를 부축하기 시작했다. 소녀는 기운이 없는지 눈을 가늘게 뜨며 사방을 살폈다.
“가서 옷 좀 가져와줘. 여자탈의실에 가면 있을 거야.”
난 헛기침을 연발하며 잰걸음으로 여자탈의실로 향했다. 여자탈의실에 들어온 건 처음이었다. 난 아무 사물함이나 열어 옷을 꺼내들었다.
옷을 들고 대기소 문 앞에서 얼굴을 빼꼼 내밀자 가연이 소녀를 부드럽게 끌어안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음…… 가연이 보다는 어려 보이는데…… 초등학생은 아닌 거 같고…… 중학생인가? 그러고 보니…… 지금까지 미라가 된 사람들도 신장이 그리 크지 않았어. 그럼 이곳 인큐베이터에 들어간 사람들은 전부 학생들이란 말이야?’
자잘한 생각은 접어두고 고개를 돌린 채 옷을 가져갔다. 가연이 소녀의 옷을 입히는 동안 난 고개를 돌리고 필사적으로 딴청을 부렸다. 방금 그 여자애. 생각보다 귀여운 얼굴이었다. 가연에 비해 좀 더 가녀린 느낌이랄까? 아무튼 이대로 남자가 없는 것도 문제다. 약심장인 여자들만 데리고 4구역을 통과하기는 무리가 있다. 남은 두 인큐베이터에 제발 건장한 남자가 들어있길 바란다.
“다 됐어. 이제 눈 돌려도 돼.”
가연이 그렇게 신호를 보냈다. 난 고개를 돌렸다. 환자복을 입은 여자애는 지금 상황을 전혀 인지하지 못했는지 초롱초롱한 눈으로 나를 보고 있었다. 가연보다 상대적으로 짧은 머릿결. 호기심 어린 온순한 표정이 돋보였다.
난 지체 없이 걸어가 먼저 말을 건넸다.
“이름이 뭔지 물어도 될까? 난 정태범. 청운고등학교 1학년이야.”
“처, 청운고등학교?”
여자가 처음 입을 열었다.
“저도 청운고등학교 1학년이에요. 이름은 유나호.”
“유나호. 좋은 이름이네. 그런데 같은 학교 출신이었어? 미안, 난 중학생인줄 알았지 뭐야?”
“그런 소리 자주 들어요. 다른 학생들 보다 키가 작아서……. 그런데 여기는 어디죠? 제가 왜 저런 통 안에서 자고 있었죠?”
물어볼 줄은 알았지만, 뭐라고 대답해야 충격이 덜할까? 난 곰곰이 생각에 잠겼다가 각오하고 입을 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