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가(出嫁)
국향이는 장량과 작별하고 자기의 방으로 돌아왔다.
무슨 언쟁을 하든가 싸우든가 한 바는 아니었지만, 몸이 나른한 것이 맥이 하나도 없었다. 장량이와 마주 잡았던 손이 아직껏 뜨끈뜨끈 장량이의 압력이 그냥 남아 있는 듯싶었다.
돌이켜 생각건대, 장량이는 나를 뒤따라 만여 리의 어려운 길을 이 고구려까지 왔다 한다.
만여 리― 말로는 쉽다, 그러나 자기도 겪어 본 바 결코 녹록한 길이 아니다. 자기는 장차 을지 승상을 찾거니 하는 예정이나 있었거니와, 저 장량이는 보도 듣도 못한 국향 공주를 뒤따라, 거절당할는지도 모르는 임을 사모하여 만여 리라는 어려운 길을 왔는가?
장량이는 수차 진나라 사직, 진나라 혈통을 운운하였지만, 사람의 애국심이라든가 애족심이라는 것이, 이러한 고난을 극복하고도 강행할 만한 용기가 생기는 것인가?
한패공의 명신 장량이는 황석공의 병서를 얻고자, 황석공의 구박을 받으면서도 그냥 따라서 종내 목적했던 병서를 입수했거니와 진나라 말신(末臣) 장량이는 무슨 약속을 기대하고 만여 리 멀고먼 길을 동이의 나라 고구려까지 뒤따라 왔는가?
이 지극한 정성이 국향이의 마음에 폭폭 들어박혔다. 자기로서는 잠깐 손을 마주 잡아 준 뿐에 지나지 못하지만, 장량이의 이 정성에 무슨 다른 보응이 없지 못할 것이다.
더우기 장량이는 누차 진나라 혈통을 운운하였다. 진나라 제실의 지친 들이 모두 남편맞이에 급급하여, 큰 공주는 수제의 후궁으로 작은 공주는 동이의 씨받이로 시집가기에 급급하거늘, 장량이는 진나라 혈통을 그냥 운운하니 그런 정성이 어디 있으랴?
자기는 이미 고구려 승상 을지문덕에게 마음을 허락한 바니, 두 마음을 품은 자는 부정(不貞)이라 하여 꺼리는 바이지만 그래도 장량이에게 무슨 보응이 없지 못할 것이다. 장량은 꾸준히 국향 자기를 ‘내 아내’‘내 처’라 공언한다 하니, 보도 못한 아내를 사모하는 정이 능히 만리길 어렵게 알지 않고 여기까지 뒤따라 오게 한 것인가? 그렇다면 그 정성을 무엇으로 보응하나?
고국 진나라 처지로 볼지라도 나는 진나라 황녀요, 저는 한 서민이거나 말직의 미미한 존재요, 고구려의 처지로 볼지라도 나는 승상 부인이요, 저는 한 외국 망명인에 지나지 못하는― 저와 나와의 사이에는 감히 접근치 못할만한 간격이 있다.
석다산 석굴이라는 데는 듣는 바에 의지하면 거기서 몇 해 수련을 하면 인간의 색욕이며 물욕 등 온갖 잡욕에서 초월하여 아주 그런 욕망에서 절연된다 한다. 장량이 지금 석다산으로 갔으니 장차 어떤 정도의 수련을 할지 모르지만, 제발 그의 철천의 욕망만은 달성시켜 주고 싶다.
국향이에게는 장량이에 대한 동정심이 가속도로 늘어갔다.
국향이에게는 어서 시집갈 날을 기다리는 것만이 지금의 유일한 일이었다.
그해 가을에 들어서 부왕의 탈상, 길복 등의 절차를 치르고서 국향이는 드디어 좋은 날 받아서 을지 문에 들기로 되었다.
화려한 고구려 색시의 옷을 입히고서 승상 부인은 국향이에게 향하여,
“공주! 어디 돌아서 보세요!”
“이번은 또 이편으로―…….”
이렇듯 좌우 편으로 공주의 몸집을 살피고서,
“영감님께는 너무 젊은 색신데…….”
혼잣말같이 이렇게 중얼거렸다.
“남자들은 젊은 색시라야 좋아한답디다 뭐―.”
길복 갈아입는 자태를 곁에서 손돕던 한 노파가 이렇게 말했다.
“좋기야 하겠지만 몸이 당하나?”
“공주께서는 승상을 아껴서 모십시오.”
그 뒤에는 국향이에게는 음담이라고 밖에는 해석할 수 없는 한두 마디의 이야기가 있고서 깔깔 웃어 대고는 승상 부인은 국향이에게,
“내 진정 말이지, 공주는 승상을 아끼십시오. 우리 고구려의 지보 기둥이외다. 아무리 무얼 한 대두 꼭 아껴 주십시오. 그리고 공주! 좋은 아기를 낳아 주십시오. 공주에게서 아기만 낳게 되면 내 죄는 탕감을 받습니다.”
“인물이 저렇게 예쁜데 좋은 아기 못 낳겠어요?”
“아니, 내 말은 예쁜 아기 낳아 달라는 게 아니고, 튼튼하고 훌륭한 아기를 낳아서 나라에 긴히 쓰여 달라는 말이외다.”
“승상님도 천하 일색을 취하시니 원 푸셨군!”
“난 그래 박색이요?”
부인이 항의하였다.
“부인께서야 그저 큰집 맏며느리감이시지…….”
“그래 나도 젊었을 적엔, 뒤따라 다니는 사람도 많았다우. 호호호호!”
“젊었을 적에 한두 번 오입도 못한 연놈이 어디 있을까?”
“난 그래도 오입은 못했어―.”
“멍텅구리지…… 아하하하!”
“호호호호! 멍텅구리 될까?”
이 귀부인들이 기탄없이 지껄이는 농담에, 국향이는 옷매무시만 만지면서 고즈너기 서 있었다.
자기도 바야흐로 이 고구려 부인이 되려고 그 준비에 한창이다. 이제 며칠 남지 않았다. 며칠만 지나면 자기도 버젓이,
‘고구려 아낙!’
‘부여의 아낙!’
소리를 지를 수 있다.
이 장래에 대한 희망이 나날이 커 가고 무거워 가는 것이었다.
그러나 때때로 국향이의 마음 한편 구석에 문득 일어서 국향이를 괴롭게 하는 생각은,
‘진나라 혈통은 공주뿐이외다,’
하던 장량이라는 젊은 진아의 일이었다.
장량이는 좋은 세월 기다리라고 석다산으로 보냈으니 석다산 가서 가만 박혀 있기나 한지?
자기를 사모하여 만여 리 멀고 고생스러운 길을 왔다 하는 것이 좀체의 일이 아니었다.
‘젊은 연놈치고 젊었을 때는 한두 번 오입 안한 자 없다.’
고 외치던 부인도 있지만, 자기도 그 지성에 무슨 보답이 있어야 하지 않을까?
국향이의 마음이 문득 장량이에게 향하여 움직이는 것은 스스로도 그 연유를 알 수가 없었다.
자기는 기위 승상께 마음을 허락했고 몸도 허락할 결의도 있고, 이는 또한 부왕과 고구려 국왕의 칙허까지 있는 정정당당한 일이다.
하늘과 땅에 부끄러울 데가 없는 정당한 인륜상의 결합에 대하여, 국향이로도 사소의 불만도 없는 바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장량이나는 웬 딴 그림자가 마음 구석에 뛰쳐드는가? 만약 장량이라는 인생에게 대하여 마음이건 몸이건 허락한다 하면, 이는 천륜과 인륜에 벗어나는 일로서, 국향이의 아직껏 받은 교양에 배치되는 바이다.
그러나 국향이 자신이 내밀어 주어 장량이에게 잡혔던 손에, 이상하고도 자릿자릿한 촉감과 압력이 그냥 남아서 국향이의 마음을 흔드는 것은 웬 까닭인가?
‘진실의 혈통은 오직 공주께 남아 있을 뿐이외다.’
‘진나라 천만 유민의 희망을 끊지 맙소서.’
정열에 들떠서 울부짖던 장량이의 부르짖음이 국향이의 마음을 움직였나?
고구려 팔백 년이라는 유구한 역사와 전통에 비기건대, 진실 오 세 삼십삼년간이라는 역사는 진실로 초라하고 짧은 것이나, 그러나 요순의 자손의 전통을 계승하고 한민족의 역사를 계승하는 원줄기의 꼭지가, 이 열일곱 살나는 소녀 국향이의 몸에 걸려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 정신은 진나라 제실과는 아주 관련이 없는 장량이라는 소년에게 계승되어, 역시 고구려땅 석다산 석굴 안에서 인간도를 닦고 있는 것이다.
이 내 몸을 고구려 승상 을지문덕에게 바쳐서 진나라 망민의 소망을 아주 끊어 놓을 것이냐? 장량이라는 젊은이를 청하여 진실의 명백을 어떻게든 살려 볼 일을 도모할 것이냐?
자기의 자유로 선택할 수 있는 이 갈림길에서 국향이는 어느 길을 택할지 망설이었다.
한쪽 길은 바로 성사만 되는 날이면 대국의 여제(女帝)가 되는 길이었다.
그리고 또 한쪽의 길은 동방의 웅국인 대고구려국 승상의 내실…―승상의 후계자〔子孫 〕의 생친(生親)이 틀림없이 될 것이었다.
제실의 공주로 태어나서 아직 세상 경력을 모르는 국향이는 여기서 스스로 헤매었다.
한편 쪽은 부명(父命)이요 천명이었다, 그리고 다른 쪽은 의리의 명령이요, 본능의 명령이었다.
국향이는 종내 천명을 좇기로 하였다. 천명은 겸하여 황명이요, 부명이었다.
부여의 풍습에 의지하여 친부모가 없는 관계상 대리의 어머니라도 세우지 않을 수가 없었다. 임금님이 승상을 위하여 국향이의 의붓아버지 되어 주기를 승낙하였다. 그래서 습의(習儀)도 할 겸 해서 국향이는 대궐에 들어가있다가 을지 가문으로 시집오기로 하였다.
부여의 풍습은 사내가 장가왔다가 아내 된 자 아이를 낳아서 좀 자란 뒤에야 남편의 집으로 가지, 그 전까지는 그냥 친정에 있는 법이다. 그러나 국향이는 그렇게 할 수가 없어서 곧 승상 댁에 들기로 하였다.
대궐에서는 왕후가 손수 국향이이의 손을 잡고 고구려 풍습을 가르쳐 주었다. 국향이는 무엇보다도 우선 좋은 아들을 낳을 것을 목표로 성심 다하여 고구려 풍습을 익혔다.
이리하여 길복 바꾸어 입은 반 달 뒤에 국향이는 기러기 붙안은 을지 승상을 맞게 되었다.
두고두고 사모하던 승상의 품에 안겨서, 훌륭한 자식 들기를 축원하면서 함께 잘 때, 국향이는 흥분되어 밤을 잘 자지를 못하였다.
한 열흘 그냥 대궐을 친정삼아 있다가 승상 댁으로 들었다.
승상 댁에서 국향이를 반갑게 맞아 준 이는 승상 부인이었다.
장차 한 남편을 섬겨야 할 두 아낙이었다.
“공주, 제발 승상을 아껴 주시오. 그리고 나라에 유익하고 을지 가문을 빛나게 할 좋은 아드님을 낳아 주시오.”
이러는 동안 국향이는 장량이라는 젊은이의 일을 아주 잊었다. 그리고 어서 을지 무엇이라는 튼튼하고 영특한 아이를 얻으려는 일념만이 젊은 아낙으로서 국향이의 마음속에 불타고 있었다.
남녀의 길에는 승상이고 졸부이고 다름이 없는 모양으로, 그렇게 점잖던 승상도 국향이와 단둘이 될 적에는 단지 한 개의 사내에 지나지 못하였다.
“공주! 나를 위하여 튼튼한 아들을 낳아 주시오.”
“승상님! 공주 공주 부르시면 남남 같아서 싫어요. 마누라, 하고 한번 불러 주세요.”
“마누라라? 요런 젊은 색시를 사십 늙은이가 마누라라고 부르기는 너무 아깝단 말이지!”
“그럼 제가 승상님을 영감님, 영감님 하고 부르리까?”
“공주가 나를 여보, 하고 한 번 불러 보구려!”
“여보!”
“왜 그러세요?”
“자!”
승상이 팔을 편다. 그리고는 거기 말려 들어가서 힘있게 붙안기며, 공주는 아아! 세상에 이런 낙도 있는가 하고 생각하였다.
어서 튼튼하고 훌륭한 아이를 낳아서 을지 가문에 바쳐서, 아내로서의 의무를 다해야겠다는 일념으로 승상을 모시는 국향이의 마음은 늘 긴장 하였다.
산과 바위를 섬기는 부여 종족의 풍습을 좇아서, 후원에 큰 바위에 제단 하나를 뭇고, 국향이는 늘 그 제단에 좋은 아들 점지해 주시기를 빌었다.
여인이 한 달에 한 번씩 겪는 생리적 이상이 안 보여야 된다 한다. 국향이가 승상께 시집온 첫 달에 그 과정을 또한 겪고 국향이는 내심 실망하였다.
그런데 둘쨋달은 건넜다. 삼사 일간은 몹시 긴장된 마음으로, 아침 깨면 자리를 검사하고 힘든 일을 피하고 하여서 오륙 일이 지나도 여전히 기미가 보이지 않을 때, 국향이는 내심 만세를 불렀다.
“승상님, 저는 보일 것이 보이지 않아요.”
“보일 것이?”
“네…….”
“보일 것이란?”
“한 달에 한 번씩 있는 것이 매달 초승께 있었는데 이 달은 벌써 중순이 아니에요? 그런데 보이질 않아요.”
승상의 얼굴은 비로소 기쁜 듯 빛났다.
“경사인가 보구료!”
“그런가 봐요.”
“고구려 아낙이지! 남편 맞았으면 으례히 있어야지!”
“승상님 저두 이제는 고구려 아낙이랄 수 있을까요?”
“고구려 승상 을지문덕의 아내가 고구려 아낙이 아니면 누가 고구려 아낙이란 말이요?”
고구려 아낙! 고구려 아낙! 국향이가 평생 두고 남에게 외쳐 보고 싶던 이 명사였다. 이것을 나도 이제부터는 큰 소리로 외칠 자격이 생겼구나!
그것이 분명 임신한 것을 증명하기 위하여 입덧까지 났다. 입에 무엇이든 닿기만 하면 구역이 나고 군침이 질질 흐르고 모든 냄새에 예민하게 되고―이리하여 국향이가 분명 아이를 배었다는 것이 증명되고, 한 동안 승상 부인도 국향이를 자주 찾아서 위로해 주었다.
“내 죄를 공주가 속죄해 주시는구료!”
뱃속의 어린애가 펄떡펄떡 움직일 때에, 국향이는 겉으로 고요히 쓸어 보며, 이 애가 승상 댁 가문을 계승할 자이며, 겸해 진나라 제실의 유일한 혈사인가? 귀하고도 기특하였다.
입덧의 고약한 시기를 지나서는 몸이 무겁고 배가 차차 불렀다.
커 가는 배를 어루만지며 장차 온 동방을 뒤흔들 큰 인물이 생겨납소서 한없이 축원하였다. 국향이가 시집올 때, 양어머니가 되어 준 이 나라 왕후도 국향이를 찾아 주었다.
“요 속의 놈(년이 될지 모르지만)이 장차 나면 무슨 엉뚱한 짓을 하려는가?”
하며 왕후는 유쾌하게 웃었다.
그 해도 지나고 이듬해 초가을 잡히면서 국향공주는 몸을 풀었다.
사내애였다. 그런데 그 갓난애의 머리에 뿔이 있었다.
먼저 갓난애의 사타구니를 만져 보고 거기 불알과 자지가 달린 것을 알고 만족하여 물러앉았던 승상 부인도, 머리에 뿔을 보고는 약간 섬사 해서 미소도 사라지고 말았다.
그러나 어린애의 아버지 되는 승상은 그것을 보고,
“요놈, 두각(頭角)이 났구나!”
하며 기쁜 듯이 씩 웃었다.
그러나 승상 자신은 내심 꺼림칙하기는 하였던 모양으로 언제 조용한 기회에 아내 국향이에게 은근히,
“진나라에는 뿔 나는 아이도 있소?”
하고 물어 보았다.
“망측두 하시어! 진나라라고 뿔 난 애가 있겠어요?”
“그럼 이 뿔은 뉘 혈통일까?”
그 뿔은 출생 때의 무슨 고장이었던 모양으로, 그 뒤 때때로 국향이가 쓸어주고 어루만져 주니까 차차 사라지고 말았다.
여하간 국향이는 마음으로 흡족하였다. 여자는 남편을 맞아서 아이를 낳아야 그 본분이 다하여진다. 자기는 지금 사람으로서의 본분을 다하였다. 천하에 내어놓고 자랑할 수 있는 지아비의 아이를, 그것도 옥 같은 아들을 낳았다.
아이가 뒤채고 일어나 기고 하며, 정당하게 자라는 동안,국향이는 그저 그 아이가 귀엽고 사랑스러웠다. 그것이 을지 승상의 아이, 더우기 기다리고 기다리던 을지 가문의 뒤를 이를 아인가 하면 마음 송구하도록 기뻤다.
비교적 젖도 풍부하였다. 아이가 품에 안겨서 일심불란히 젖을 빨고 있는 모양을 국향이는 감격된 기분으로 굽어보고 하였다.
그러나 국향이의 마음에 때때로 문득문득 생각나는 것은 장량이라 하는 진나라 젊은이의 일이었다. 무슨 죄를 지은 듯 스스로 죄송스런 기분에 눌리고 하였다.
‘진실의 명맥은 오직 공주님께 달렸읍니다. 그 점을 잊지 말아 주십쇼.’
감격된 목소리로 이렇게 호소하던 장량이,
‘기다릴 줄 아는 사람은 현명한 사람이라고 옛날 성현이 가르쳤으니, 석다산 석굴에 가서 기다리라.’
고 하였더니, 적적한 얼굴로 석다산으로 향하여 발길을 돌이키던 장량이, 만여 리 길을 오직 공주를 사모하여 뒤따라 온, 정열의 젊은이 장량이!
―진실(陳室)의 명맥!
자기는 지금 을지 가문의 뒤를 이을 아이를 낳아 드렸다. 그러나 진실의 명맥을 이을 자, 오직 자기뿐이어늘, 자기가 몸을 을지 가문에게 바쳐 놓으면, 진나라 몇 천만 생명의 명맥을 보전해 줄 진실의 명맥을 이을 자가 세상에는 존재하지 않는다. 오 제 삼십삼 년에 진실의 혈통은 자기 탓에 끊어지는구나! 이것이 국향이에게는 괴로운 문제였다.
아이의 이름을 ‘바위’라 지었다.
이 아이가 설 때에, 바위에 정성들이고 섰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바위처럼 튼튼하고 장수하라는 어버이의 뜻을 포함한 것이었다.
아이는 백일이 지나고 돐이 어느덧 지났다.
‘또 한 놈 생겨야 할 텐데…….’
마치 국향이는 아이 낳는 기계인 것처럼, 승상은 아내와 대하면 이 사정이었다. 국향이도 될 수만 있으면 한 달에 하나씩이라도 낳아 드리고 싶었다.
이 꽤 긴 기간 동안 국향이는 세사의 온갖 다른 문제는 잊고, 오직 어린애의 무사히 자라는 데만 정신을 기울였다. 다른 모든 일은 국향이에게는 무의미한 일이었다.
어린애의 돌이 방금 지난 어떤 날, 국향이의 처소에 승상이 들어왔다.
그리고 이런 말 저런 말 하는 동안에 문득 이런 이야기가 나기 시작했다.
“공주의 남편― 소위 부마로라는 장량이― 생각 나오?”
“네…….”
대답은 하였지만 국향이는 왜 그런지 가슴이 철썩 하였다.
승상에게서 무슨 뒷말이 나오기를 기다렸다.
“그 녀석이 정신이 멀쩡하오?”
“제가 알겠어요? 왜― 무슨 일이 생겼어요?”
“생긴 게 아니라 , 일전 석다선인한테서 사람이 왔는데, 그 장량이 녀석이 혼이 빠진 것 같대…….”
“혼이 빠지다니?”
“남 알아듣지 못할 진나라 말로써 혼자 중얼중얼하며, 정신나간 사람처럼 군다거든…….”
정신이 바뀌었다? 만약 장량이로서 정신이 바뀌었다 하면, 너무도 골똘하게 생각하는 무엇이 있기 때문이 아닐까?
만약 장량이로서 정신이 바뀌도록 골똘하게 생각하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필시 내 몸이든가, 진나라 혈맥을 위해서일 것이다.
고구려 칠팔백 년의 사직에 비기건대, 오 제 삼십삼 년의 짧은 진나라 사직이었지만, 그래도 한 민족의 전통을 이을 천자의 줄기다. 그 명예 있는 사직의 줄기가 오직 이 내 몸에 걸려 있다. 그 사직을 두호하고자 정신이상이 생긴 젊은이도 있다.
이렇게 생각한 때에, 국향이는 그 장량이를 그냥 버려 두지 못할 의무감을 느끼었다.
“승상님! 그 장량이라나 하는 사람을 의관 보내서 한 번 진맥해 보면 어떨까요?”
승상은 무겁게 국향이를 굽어보았다.
“공주는 아내로 생각하는 사람이라, 남의 일 같지 않우?”
국향이는 말을 계속하지 못했다. 휙 눈을 들어 승상을 우러렀다. 눈에는 원망하는 기색이 다분히 들어 있었다.
“승상님!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제가― 제가…….”
푹 머리를 숙였다. 여러 가지 복잡한 감정으로서의 설움이 국향이에게서 복받쳐 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