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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이라이의 철직(綴織)


7화. 판 위에 드리우는 그림자 - 아레스의 품삯


호텔에 돌아온 것은 늦은 저녁 즈음.

더 이상 뒤를 밟혀서는 곤란하다는 이유로 신라와 하바네는 아키하바라 거리를 돌면서 온갖 괴상한─소위 오타쿠 문화라고 불리는 종류의─가게를 들락거리다가 평소 차량으로 이동하는 쪽과는 다른 길로 해서 호텔 후문에 도착했다.

「♪~」

신라의 손에 들린 괴상한 물건들을 보면서 역시 속은 건가, 하는 생각이 드는 하바네였지만,

「아, 아, 심부름 마치고 이제 겨우 도착했슴다.」

자신의 앞을 걸어가는 이 남자의 정체를 안 시점에서 거기에 대해서 뭐라고 할 마음은 없었다. 낮의 원자력발전소 지하에서의 그 행동, 그리고 결정적으로 원자로에서의 협박행위. 신라라는 녀석은 과대망상주의도, 천재적인 전략가도 아니었다. 매일 자신이 입버릇처럼 말하는 대로 뭔가 이론적인 이유에서부터가 아닌 동물적인 감각에서부터 결론을 얻고 그에 이론을 끼워 맞춰 움직이는 녀석이다.

때문에 이 녀석은 타인을 죽이는 경우까지도 상정하고 움직인다.

「다녀왔어.」

​「​고​생​하​셨​습​니​다​.​」​

「우왓?! 뭐야, 이 짐무더기는!」

...하지만 다른 사람들은 어떨까.

「수고하셨어요. 하바네로 씨.」

「어어. 다시는 겪고 싶지 않은 상황이었다...」

안도 유에가 데려오는 사람들은 전부 현 정부의 방침에 반대하면서 다들 무언가 보통 이상의 내력을 가지고 있다. 선대로부터 라케시스의 유용에 관한 비리를 캐던 자칭 탐정이라는 사카키 신라. 이 녀석만 해도 탐정이라는 말로 정의하기에는 기묘할 정도로 잘 싸우는데다 자기 입으로 “그런 환경에서 살아왔다”고 말했다. 그리고...

「이야기를 들어보니 슬슬 저쪽에서 우리에게 의심을 돌리기 시작한 것 같군요. 두 번째 걸렸을 때에는 피할 수 없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설마 바로 첫 번째에서부터 꼬리를 잡혔었다니. 어쨌든 그런 이유로 다시 이동하게 되었습니다만.」

타카하시 카즈키. 이 사람의 경우 과거 위키릭스로 불릴 정도의 해커집단에 속해 있었다는 것은 분명하고, 잠시 이야기를 내비친 바에 따르면 모든 것은 투명하게 공개되어야 한다는 입장을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오늘 원자로를 이용한 협박...신라의 계획에 협조해주었다고 했지.’

라케시스를 이용한 정부의 계획을 막는다는 것은, 확실히 옳은 일이다. 사람들에게 스스로가 원하는 운명을 결정할 권리를 돌려주는 것. 일부 개인의 목적을 위하여 사람들의 운명을 비트는 것은 하바네의 가치관에서도 용납할 수는 없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것을 지키는 상대를 무자비하게 죽이고 승리를 쟁취하는 것은 원하지 않는다. 정의를 관철하기 위하여 악을 행하는 것은 올바르지 않다. 자신의 생각 또한 이상론이라면 이상론이겠지만, 적어도 자신에게 반대한다고 하여 배제하려 드는 것이 세상을 좋은 방향으로 이끄는 것이라고는 믿지 않았다.

「뭐, 리얼 중2병이니 뭐가 터질 줄은 알았지만 화려하게 저질렀네. 하바네로 씨는 PTSD에 시달리는 거 아니죠?」

「...슬슬 그렇게 될 참이야. 난 잘란다.」

「농담할 기운이 남은 걸로 보아서 괜찮겠네요.」

유에 녀석도 보다시피 신경이 멀쩡한 건 아니지만 적어도 내가 아는 범위에서 이 녀석은 특별한 경력이 없는 평범한 학생일 것이다. 하지만 지금 두 사람의 이야기에 무덤덤한 것도 그렇고 저번에 아버지가 죽었을 때도 그렇고 이 녀석도 어딘지 ‘죽음과 가까운’ 녀석이라는 느낌이 조금씩 들기 시작하고 있었다. 그리고...

「...? 무슨 일 있으신가요?」

「아니. 그냥 좀 자두고 싶어서.」

...이 초등학생 아가씨는 이런 죽고 죽이는 일에 대해서 알기는커녕 들어서 이해할 리도 없겠지. 넘어가자.

「...? 그러고 보니 카즈키가 안보이네?」

​「​아​.​.​.​마​유​언​니​는​ 오늘 낮에 있었던 일 때문에 카즈키랑 한바탕 저질러버렸어요. 뭐 일단 슬슬 돌아오라고 문자는 넣어뒀으니 알아서 오겠지.」

다행히도 그나마 정상적인 관념을 가진 사람이 있긴 있었던 모양이다. 그럼 최소한 타카하시 마유미는 그저 자기 오빠에게 이끌려 동참했을 뿐인 일반인으로 보아도 되는 건가...하고 하바네는 침대 위에 벌러덩 드러누웠다.

「좀 있다가 출발준비 할 거니까 너무 곯아떨어지진 마...그러고 보니까 하바네로 씨. 그쪽 명의로 편지가 한 통 왔던데요.」

「앙?」

하바네는 피로에 쩔은 표정으로 유에를 바라봤다. 편지라니 요금청구서 같은 게 오려면 한참 멀었고, 지인들은 할 말이 있으면 패드로 문자가 오거나 할 텐데. 아니 메일을 날리면 날렸지 지금 시대에 손으로 쓴 편지라니...

「그래서 그 편지는 어디?」

「아마도 누워있는 침대 머리맡에? 종이가 꽤 두툼하던데요.」

손을 뻗어보니 확실히 편지로 보이는 종이봉투가 있었다. 누가 뜯어본 흔적도 없는 것 같고. 집어 들어 지이익─하고 윗부분을 뜯어내서 종이를 끄집어내니, 종이 안에서 뭔가가 툭 하고 떨어졌다.

​「​.​.​.​U​S​B​.​.​.​?​」​

편지를 확인해보니, 그냥 아무것도 없다. 발신인의 주소도 없이 그냥 이 호텔의 주소와 내 이름만이 이 편지에 적혀있는 전부. 게다가 우체국으로부터의 확인도장도, 우표도 일체 보이지 않는다. 배달부를 가장하고 편지를 전달했다는 것이 뻔히 보이는 방식이라는 점에서 이 편지의 특이성을 강조하고, 그런 자기가 하고 싶은 말은 USB에 다 담겨있다 이 말인가.

「...쩝.」

침대에서 일어나서, 호텔 방의 ​컴​퓨​터​─​V​I​P​룸​이​라​ 그런지 데스크탑도 방구석에 컴퓨터 책상과 함께 놓여있었다─를 켜고 USB를 꽂는다.

안에 들어있는 .exe 확장자의 숫자이름으로 된 파일을 눌러서 열었다.

동영상 프로그램이 뜬 직후, 치지지직 하는 듯 화면이 울렁이더니 이윽고 흰 화면에 글자가 떠오른다. 아마도 손으로 쓴 자필 형식의 글을 캠코더로 찍어 올린 듯했다.

『이것을 보고 있는 그쪽이 낮에 소장실에 남긴 메시지를 봤다면 yes, 아니라면 no를 선택하라. 하지만 가능하면 yes로 답하게 되길 간절히 바란다.』

동영상의 재생시간으로 보이는 20초 정도가 지나고 동영상이 꺼지자, 이번에는 박스가 하나 뜨고 yes 버튼과 no 버튼이 나타났다. 뭐야 이건. 낮에 발전소장실...?

‘진실에 도달한 것으로 보이는 자들에게 전한다.’

​「​아​.​.​.​그​건​가​.​」​

낮의 발전소에서 들어갔던 방에 있던 비디오. 그 방 발전소장실이었나. 그리고 이 편지를 보낸 사람은 그 비디오를 남긴 사람과 자신이 동일인물이라고 말하고 있다.

yes를 누르자, 이번에는 이미지 뷰어가 실행되며 어떤 사진으로 보이는 것이 나타났다. 어딘지는 모르겠지만 약간 어두컴컴한 자료실 같은 곳으로 보이는 장소에서, 산산이 부서진 어떤 기계의 사진. 이건...아무리 봐도 우리가 찾던 그것인 것 같은데...!

「...? 어이 하바네로. 그건 뭐야?」

「...동조자의 선물 같은데.」

「뭔 선물?」

신라가 다가와서 모니터를 보고는, 말을 잃은 채 화면을 계속 들여다보았다. 뒤이어 다른 사람들도 조용히 컴퓨터 주위에 몰려들어 화면을 보았다. 그리고...

「...허, 이건 또 어떻게 된 일이죠. 어떻게 저런...」

카즈키가 혀를 찼다.

「뭐죠. 이건. 대충 보아하니 자기가 백업디스크 하나를 부쉈다고 알리는 것 같은데. 그럼 저건 어디의...?」

이야기를 하다 말고 유에가 침묵했다. 그런 건 카즈키와 신라가 말을 잃은 시점에서 이미 분명해진 것이니까. 이 사진을 보낸 인물이 당시에 나에게 준다던 선물은...

「총리 관저 자료보관실...」

절대로 들어가지 못할 거라고 생각했던 장소의 문제가, 바로 해결되었다. 선물이란 건 바로 이 문제의 해결인가. 하지만...

「뭐야. 이 녀석. 우리가 뭘 하려는 건지 다 알고 있다는 것처럼.」

「대체 어디의 누구인지 모르겠군요. 게다가 추적을 따돌리기 위해서 디지털 매체를 이용하되 아날로그적 방법으로 전달하는 방식을 택했습니다. 단순히 정부의 추적만이 아니라, 우리에게도 자신의 위치를 숨기고 있어요. 그럼에도 이쪽이 원하는 행위를 대신 해주었다고 광고하는 것은...」

보안부 해킹 중에 마주쳤을 때도 정부에게 알리지 않았다. 이쪽이 노리는 것이 무엇인지 확인한 이후에도 이쪽과 접촉하거나 신고하거나 하지도 않고 오히려 여기서 곤란해 하는 문제를 나서서 해결해주었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자신이 누군지는 드러내지 않는다.

이건...

「우릴 이용하겠다는 뜻인가.」

아마 똑같이 현재의 상황에 대하여 인지하고 있고, 이에 대하여 부정적으로 보는 사람일 것이다. 하지만 그 누군가가 원하는 결말이 그들과 같은 결말이라고 생각하기에는 어렵다.

‘내가 다른 사람들과 달리 라케시스 자체를 부정하듯이...’

...어쩌면 현재의 내각을 전복시키고 새로운 지배자가 되려는 속셈일지도 모른다.

「...어떻게 하지.」

「어쩌고 자시고 이 녀석이 누군지 알아낼 방법은 있냐. CCTV를 조사한다면 배달부의 얼굴은 확인할 수 있겠지만, 이 녀석이 배달부랑 동일인물이라는 보장은 없어.」

「그렇다고 이대로 시작하는 것도 위험하지 않을까 하는데요. 다 끝나고 나서 뒤통수라도 맞으면...」

하바네는 생각에 잠겼다. 이 녀석이 무슨 수로 총리 관저에 숨어들어서 저 저장매체들을 파손시킨 것인지 생각해보면, 일단 총리 관저에 들어가는 것이 가능하다는 건 정부와 전혀 무관하지 않다는 것이 된다. 또한 만약에 저장매체의 파손이 발각되면 현재의 윗대가리들은 라케시스를 이용하여 범인을 찾아내려 할 것이고, 그렇게 되면 정체를 숨길 방법이 없을 것이다.

그럼 이 사진이 가짜...? 라고 하기에도 뭔가 석연찮다. 단순히 완성되지 않은 계획 하에 자신들을 움직인다고 해서 좋을 것이 없다. 백업 데이터가 있다면 플래너의 데이터가 날아가도 하루아침에 복구가 가능할 것이고, 하루 안에 혼란이 종식되고 사회가 정상화되면 다양한 방법의 보안과 권력 뒤에 숨은 자들을 노릴 방법이 없어진다.

그렇다는 것은 그는 이 사태를 일정 시간 숨길 수단을 지니고 있으며, 자신들에게 기회는 지금뿐이니 빨리 움직이라고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다만...

「아무래도 저쪽은 이쪽에서 라케시스를 가지고 있다는 건 모르는 것 같은데.」

「음. 하지만 라케시스를 통해서 저 녀석을 추적하는 건 많이 위험하지 않나? 아무래도 이 몸의 감각으로는 이번에 한 번 더 벌이면 우리 신상정보가 100% 전부 까발려질 것 같은데.」

신라의 말에 유에가 끼어들어 대답했다.

「아니, 그런 건 의미 없어요. 어차피 파일을 정지시키고 전면전에 들어가게 되면 라케시스를 적극적으로 사용하게 될 거니까. 그 때 동시에 누군가가 이 녀석을 찾아내서 감시 또는 처리를 해야겠죠.」

「...그럼 이제 결정이 난 건가?」

인터폰이 울리는 걸 보니, 카즈키도 슬슬 돌아온 모양이고, 정황상 이쪽도 이제 움직일 수밖에 없게 되었다. 하바네는 현재의 상황에 대하여, 컴퓨터 책상의 의자에서 일어나며 푸념했다.

「...이건 뭐 자긴 다 글렀구만.」

...

부르릉...

‘그런데 이렇게 바로 결정해도 괜찮은 건가...’

달리는 차량 안에서 하바네는 생각에 잠겼다. 원래의 일정은 낮의 발전소에서 꼬리가 잡힌 만큼 최대한 먼 ‘작전장소’에 숨어서 총리 관저의 공략을 계획하는 것이었고, 그 때문에 신라와 하바네가 돌아왔을 때 모두 짐을 꾸려놓은 ​상​태​였​다​. ​

하지만 방금의 편지의 영향으로 모든 일정이 긴박하게 변했다.

확실히 우리의 계획에 있어서 이것은 득이 되는 사실이 맞고, 아마 이대로면 이틀 안에 이 서약서의 인물들과의 결착을 짓게 되겠지. 플래너의 붕괴까지 일으키고 나면 정부에서 사태를 수습하는 일 따위 불가능할 지경에 이를 ​것​이​다​. ​

하지만 이 모든 사정이 너무 잘 들어맞고 있다. 이건 우리에게 생각할 시간을 빼앗으려는 것 같지 않나...? 마치 단기간에 모든 걸 끝내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처럼. 그렇다면 뒤에서 하바네를 비롯한 이들의 등을 떠밀고 있는 자는 누구인가.

「그래서 현재 새로 짠 계획은 역시 그거냐.」

「빨리 끝낼 수 있다면 끝내는 게 좋잖냐. 그리고 이미 여기저기 덜미가 잡혀서 칼을 뽑아들 수밖에 없는 상황이고.」

삐리리리리리...

계속 걸려오는 전화를 받으면서 신라가 말했다.

원래 계획되어 있었던 남은 백업의 파괴를 당겨서 의뢰하는 것과 동시에, 이쪽은 바로 플래너에 대한 해킹을 실시하면서 가장 인근의 저장매체를 직접 소지하고 있는 재벌계 인사를 찾아 공략한다.

「상대는 어디까지 우리의 움직임을 읽었으려나.」

「...글쎄. 그렇게 생각하면 나도 소라하처럼 내려줬으면 싶지만...어차피 안 되겠지.」

에휴, 하고 카즈키가 한숨을 내쉰다. 역시 이 사람만은 일반인이다. 더불어 소라하의 경우에는 스즈모리 가의 비호가 있어서 추궁에서 안전하기도 하고, 라케시스를 지니고 있는 우리 쪽에 정재계의 신예인사가 있다는 점이 보험이 되기도 한다는 이유로 그녀는 호텔에서 연락책과 지원을 맡아주기로 했다...라고 말해도 사실상 초등학생을 끌어들이기엔 아무래도 양심이 찔리는 일이라 그런 거겠지. 아무리 다들 복수나 정의감에 미쳐있다고 해도 어린아이에게까지 이 업보를 남겨주고 싶지는 않을 것이다.

띠리리링―

「음...?」

하바네의 전화가 울려왔다. 소라하 쪽에서 건 전화.

「여보세요.」

​『​에​.​.​.​여​보​세​요​.​ 하바네로 씨. 작전 출발하신 직후에 죄송하지만 이쪽에서 출발 후에 이것저것 알아봐달라고 집안 분들에게 ​의​뢰​했​는​데​요​.​.​.​』​

전화를 통하여 듣는 소라하의 말투는, 하바네에게는 왠지 좀 불안하게 느껴진다. 이전에도 어디선가 들은 것 같은 목소리. 하지만 정확히 어디서 들었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냥 하바네 자신의 착각이라고 해 두는 게 좋을까.

「...? 그런데 뭔가 문제라도 생긴 거야?」

『아마도 그쪽에서도 발전소 제어가 터진 거랑 총리실이 파손된 것 때문에 다들 경계상태인 것 같아요. 어딘지는 모르겠지만 아마 다들 기밀회의를 위해서 오늘 저녁 안으로 어디론가 이동할 것 같다고...』

역시 그런가.

발전소를 터뜨린 건 역시 외부적으로도 눈에 너무 띄는 짓이었다. 애초에 이쪽을 용의자로 생각하여 덤벼든 시점에서 우리 쪽의 계획이야 이미 들켰다고 봐도 좋은 것이었지만, 발전소 때문에 많은 이들의 안전에 위협이 생긴 것은 저쪽에 있어서는 우리의 존재를 공표해도 마이너스, 숨겨도 마이너스인 것이다.

어쨌든 저들이 어디론가 이동하게 된다면, 플래너에 대한 백업은 어떻게 되는 거지...?

우우웅...

「보내준 쪽 다 임무는 완료한 것 같은데. 이쪽만 깨끗하게 처리하면 만사 OK일 것 같다.」

「...그게 그렇게 될 것 같지 않은데.」

「...? 뭔 소리야?」

하바네가 소라하에게 들은 전언을 그대로 전하자, 사람들의 안색이 굳었다.

「곤란하게 되었군요. 하지만 그 경우라면 이쪽에서 이용할 방법이 아직 있습니다.」

카즈키가 운전대를 잡은 채로 말을 꺼냈다.

「일단 여기서부터는 라케시스를 사용하도록 하죠. 사태에 있어서 1%의 오차도 있어서는 안 되고, 이미 저쪽에서 이쪽에 겨누고 있다는 사실이 확정되었으니 이쪽도 휘둘릴 수는 없으니까요.」

해커 운전수는 꾹꾹, 하고 단말기를 눌러서 뭔가를 입력하고는, 그대로 말을 이었다.

「...다행히 아직 출발하지 않았군요. 일단 여기는 다행이라고 해두겠습니다. 문제는 놈들이 우리가 생각하던 것보다 훨씬 악질이라는 겁니다. 우리는 플래너가 파괴되면 녀석들이 사회적인 혼란을 방지하기 위해서 플래너를 복구하는 쪽으로 움직일 거라는 전제 하에 계획을 ​잡​았​습​니​다​만​.​.​.​아​무​래​도​ 그들은 자신들의 안위를 위해서 사회를 버릴 수도 있는 자들인 것 같군요.」

「......」

그렇다는 건, 역시 이 녀석들은 플래너가 파괴되면 플래너의 복구보다는 사회의 안정화가 이루어지기 전까지 어딘가로 숨어들어 라케시스만으로 외부를 제어할 생각이다.

하지만 그것은 외부에 라케시스가 존재하지 않을 경우가 전제. 그렇다면...

「이쪽으로 이미 예의 특수부대가 파견된 것 같습니다. 이대로 가면 교전이 ​벌​어​집​니​다​만​.​.​.​」​

끼이익, 하고 차량을 세운 뒤에, 카즈키는 동생에게 말했다.

「여기까지 끌어들여서 미안. 마유미도 아마 표적이 되었겠지만, 그래도 좀 더 살 수 있는 방향을 선택하는 게 좋을 것 같다.」

「...? 무슨 말이야. 남아있는 쪽이 더 위험하니까 나오라고 했잖아.」

「하지만 전장에 데려간다고 말한 것도 아니지.」

말을 마친 오빠 쪽이 동생에게 주머니에서 쪽지를 꺼내 넘겨주었다.

「신라를 통해서 알게 된 용병업체의 사무실이야. 일단 고용경비는 다 지급된 상태이고, 호위에 대한 건도 이야기 해뒀으니 아무런 문제는 없을 거고, 신뢰 여부는 그들의 대장이 내 전우라고 할 수 있는 상대니까 믿어도 좋을 거야.」

「...이제 와서 여기서 내리라고?」

「여기서부터는 업을 진 자들끼리의 싸움이다. 마유 누님이 손을 떼도 아무도 원망할 사람 없다고.」

「무관계자라면 저 하바네로도 단순히 유에가 끌고 온 무관계자잖아. 덤으로 이제 와서 그런 곳에 맡긴다고 해서 내가 안전해진다는 보장을 할 수 있겠어? 그리고―」

신라의 말에 그녀는 눈을 치켜뜨며 대꾸했다.

「내가 있을 곳은 내가 정한다. 이건 극단 배우시절부터 내가 정했던 룰이야.」

「너무 억지부리지...」

카즈키가 카즈키에게 소리치는 순간,

​드​르​륵​―​피​익​.​.​.​피​이​익​.​.​.​!​

총알이 차량 윗면을 스쳐지나갔다. 이건...

「소라하가 말한 대로, 라케시스가 알리는 대로 외부의 라케시스 소지자는 전부 제거하겠다는 식으로 나왔군. 그래서 이제 어떡할 건데.」

부르릉...

「....하아. 어쩔 수 없군. 본의는 아니지만 용병부대와 조우하기 전에는 마유미도 대동할 수밖에. 그럼 일단 신라 군, 부탁합니다. 인근에 지원 가능한 병력이 있을 경우에 신속하게 처리를 부탁하고, 이쪽은 서둘러서 아직 남아있는 목표를 찾아서 포획, 다른 목표들이 있는 위치를 알아냅시다.」

카즈키의 말은 이 상황에서는 말하자면 정론이라고 할 수 있었다. 플래너의 파괴를 통한 사회적 혼란을 일으켜서 놈들의 움직임을 유도하려는 계획은 이미 물 건너갔다고 할 수 있을 것이고, 녀석들이 숨어들기 전에 찾아서 불게 만드는 것이 “행동으로” 할 수 있는 가장 빠른 방법이었다.

하지만,

「굳이 그럴 필요 없잖아.」

하바네는 라케시스를 켜서 <​S​o​o​t​h​s​a​y​i​n​g​ ​G​u​i​d​e>​에​ 접속한 뒤에 질문을 적었다.

『현재 서약서에 서명한 자들의 은신처로 계획된 장소는?』

우웅, 하고 업데이트가 일어난 후의 문구를 보면서 그는 말했다.

「애시당초 놈들이 우리보다 라케시스에 대하여 더 잘 숙지하고 있고, 우리의 움직임을 읽어내고 있다면, 우리가 행동을 바꾸는 것도 보이겠지. 한 명 잡아서 족친다고 해도 꼬리를 자르고 다시 숨어들면 그만이다.」

「...과연. 그래서 우리도 똑같이 그걸로 쥐몰이라도 하겠다는 거냐.」

「아니, 놈들에게 있어서 알면서도 걸려들 수밖에 없는 미끼가 있어.」

하바네는 이번에는 <​S​o​o​t​h​s​a​y​i​n​g​ ​G​u​i​d​e>​에​ 두 가지 질문을 입력했다.

『현재 서명자들의 이동루트/현재 나에 대하여 조회된 가장 최근의 정보』

우우웅...

「하바네로 씨의 그 말은, 우리가 미끼가 되어야 한다는 건가요.」

「아니, 직접 미끼가 될 필요는 없어.」

하바네는 생각했다. 그들은 멤버들이 생각하던 것보다 훨씬 더 겁쟁이에 무책임한 자들이다. 결국 그들이 가장 우선하는 것이 라케시스 소지자들에 대한 배제라고 한다면, 오히려 이야기가 훨씬 쉬워진다. 서약자들의 신변의 안전을 보호하는 수단은 지금 추적중인 특수부대, 그리고 그들 자신들이 소지한 라케시스. 그 때문에 그 수단 중 하나인 특수부대를 동원해서 이쪽을 뒤쫓고 있다. 하지만 녀석들이 간과하는 점은, 저 특수부대원들이 라케시스를 소지한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사냥개의 눈을 흐리는 것으로 충분히 주인에게 이빨을 들이밀게 할 수 있겠지.」

...

피잉...

「쯧...」

차량이 시야에서 멀어지기 시작하는 것을 확인하며 라케시스 관련 보안부 특수부대, 《네메시스》 3번 부대 팀장이 혀를 찼다.

「면목 없습니다.」

「아냐. 저쪽은 라케시스 소지가 의심되는, 그것도 발전소를 폭파시킬 정도의 위험분자들이다. 저런 사격으로 멈출 수 있을 정도면, 과거의 무정부상태는 일어나지도 않았겠지.」

철컥 

「솔직히 고백하자면, 이번 사건을 겪기 전에는 ‘단순히 어플리 하나가 유출되는 것으로 그렇게 심각한 문제가 있을 수 있을까, 그냥 예측 프로그램일 뿐이잖아’라고 생각했었습니다.」

「그래서 지금은?」

팀장의 질문에, 남자는 대답했다.

「저런 건 사회에 있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됩니다. 보안이고 뭐고 모든 사회적인 방벽이 모래성 같이 무너지고 있어요. 저런 게 돌아다니면 서로가 서로를 잡아먹는 아귀지옥이 될 겁니다.」

「하지만 라케시스의 사용을 부분허용하는 미국은 아직도 연방제가 유지되고 있지.」

「......」

「라케시스는 저번에 폭발한 핵발전소와 핵무기의 관계와도 같다. 쓰기에 따라서는 사회가 나아갈 올바른 방향을 제시하여, 재난을 미연에 방지해주기도 하지. 예를 들면 7년 전에 있었던 태풍에서 예외적으로 플래너가 아닌 라케시스가 직접 사용된 적이 있었다. 그리고 그 태풍의 영향으로 쓰나미가 도시 전체를 덮쳤음에도 사망자는 단 세 명으로 그쳤지.」

「그런 것도 가능했던 겁니까...」

삐―하고 단말기에서 신호가 울린다. 팀장은 단말기의 화면을 확인하고 말했다.

「대장님으로부터의 전언이다. 놈들은 각료들의 비밀회담장소를 습격할 예정인 듯하다. 라케시스의 독점을 위해서 보관인들을 전부 죽여 버릴 속셈이겠지. 그리고 그 이후에 라케시스의 힘으로 자신들은 탈출하고, 뒤에서 이 나라를 좌지우지하려고 들 것이다」

멍청한 놈들, 하고 팀장은 비웃었다. 어쩔 수 없겠지만, 지금 자신들이 뒤쫓고 있는 자들은 스스로가 라케시스를 지니고 있다는 것에 도취되어있는 것이 분명하다. 때문에 자신들의 뒤를 쫓는 자들이 그 이상의 노련함을 지니고 있다는 것을 망각하고 있다.

지금의 그는, 그렇게 생각했다.

「하지만 지금 회담장을 습격하는 것이 자신들의 목숨을 죄는 길이 될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할 거다. 2번 부대 및 약속장소에 미리 대기 중인 경호부대와 연락해서 포위망을 구축한다. 더불어 대장님에게 보고하여 1번 부대의 잔류인원도 합류를 요청해라.」

그리고 운이 좋다면, 그들이 소지한 라케시스를 압수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물론 자신은 테러리스트가 될 생각 따위 없지만, 라케시스의 소지를 명목으로 자신도 그 원탁에 끼어들 수 있을 것이라는 야망이 스멀스멀 올라오기 시작했다.

‘그래...그 새파랗게 어린 벼락부자 녀석처럼...’

쓸데없이 공원에 극장이나 건설하고, 남들이 거들떠도 안보는 해외건설을 통한 자선사업 따위를 벌이는 괴상한 놈이었지만, 무슨 수를 썼는지 라케시스 제한법을 피하여 라케시스를 소지한 것 때문에 원탁의 내정자들 또한 그를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일개 처형부대 팀장인 그로서는 그렇게 새파랗게 젊은―그리고 양아치나 다름없는 행실을 보이는―녀석을 자신들이 떠받들어야 한다는 점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네놈을 짓밟을 수는 없지마는, 적어도 언제까지나 네놈들의 개로 있는 건 사양이다.’

...

남자는 귀에 꽂은 이어폰으로부터 흘러나오는 3번 대장의 소리를 들으며 피식 웃었다.

「...어이, 쿠자키(九崎). 꿍꿍이가 말에 풀풀 묻어나오지 않나.」

어차피 저 편에 들릴 리는 없겠지만. 달리는 차량에 있는 남자의 앞에는, 시중에서도 종종 볼 수 있는 자석형의 체스판이 놓여있다. 그러나 체스판에 있는 말의 형태는 기존의 체스와는 너무나 다른 형태를 취하고 있었다. 흑의 진영에는 처음부터 폰이 존재하지 않고, 있는 것은 룩 2개, 나이트 1개, 비숍 1개, 여왕 1개. 그리고 진영 한가운데에 있어야 할 흑의 킹이 존재하지 ​않​는​다​. ​

하지만, 검은 왕은 확실히 체스판 위에 존재하고 있다. 그것도 적진의 ​위​치​에​. ​

백의 진영 한가운데, 흰 여왕이 놓여있어야 할 자리에 놓인 검은 왕.

하지만, 이건 서로에게 체크메이트나 다름없는 상황이 아닌가...?

그래도 체스는 계속되고 있다. 현재 검은 룩에 의하여 흰색 폰 3점이 잡히고, 룩 하나도 잡힌 상태. 비숍과 나이트는 정신없이 날뛰고, 판은 말 그대로 아수라장이다.

그리고 그 중에서도 가장 혼돈의 장인 두 킹의 대치상태.

「그래서 언제쯤 네놈들은 눈치를 챌 수 있을까. 당신들이 두려워하는 최대의 적은, 이미 네놈들 곁에 있다는 것을. 저들이 다가오기 전에 눈치챈다면 나와 네놈들의 공멸로 이 판은 끝나겠지만―」

툭, 하고 또 하나의 폰이 검은 색의 룩에 의해 떨어져나갔다.

「깨닫지 못한다면, 네놈들의 완전한 죽음이다.」

어느 쪽이든, 내 목표는 달성되겠지만 하고 남자는 조용히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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