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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방선대록

東方先代録


원작 |

역자 | DanteSparda

그 47「신제」


 그 뒤──사나에는 집에 돌아가, 언제나 그랬듯이 먼저 목욕을 한 뒤, 가족끼리 둘러 모여 정답게 저녁밥을 먹고, 방으로 돌아왔다.
 매일매일, 당연한 것처럼 보내왔던 일상. 진절머리가 일 정도로 반복해온 습관. 그러나, 그를 거스를 수 없는 자신에게 놀라고 있었다.
 오늘 하루 만에 그렇게나 충격적인 만남과 경험을 겪고, 고뇌를 되풀이한 끝에 인생의 갈림길 앞에 서 있다는 확고한 자각도 생겼지만, 지금 난 내일 수업에 대비하여 예습 따위나 하는 중이다. 오늘 조퇴한 탓에 배우지 못한 것을 따라잡으려 하고 있다.


 어리석단 생각이 머릿속을 맴돌았다.
 펜을 쥔 손에, 힘이 가득 담긴다.
 시계를 보니, 이미 심야가 되기 직전.


 창밖으로 시선을 돌리니, 어느새 비가 내리기 시작하는 중이었다.
 이것이 얼마 안 가 폭풍우가 될 것임을 사나에는 알고 있었다.
 오늘이라는 이름의 『선택의 날』은, 이젠 두 번 다시 오지 않는다.
 이 폭풍우가 지나가면, 내일 아침쯤에는 일기예보에서 말한 대로 쾌청한 날씨가 되어 있겠지. 즉, 어제까지와 똑같은 일상이 반복되는 것이다.


 ──항상 변하기를 바래온 일상.
 ──하지만, 평화롭고 안정된 나날.


 자신이 내딛은 다리가, 확실하게 땅을 밟을 수 있다는 안심감, 사나에는 이제야 그것이 어떤 것인지 이해할 수 있었다.
 한 걸음 나아갈 때마다 대지가 무너져 내릴지도 모르는, 정체를 알 수 없는 불안함은 없다.
 자신이 나아가야 할 길을, 정성스레 다듬고 표지판까지 붙여준 이 세계의 상냥함을 여태껏 알지 못했다.
 오늘 밤, 자신은 그렇게 상냥한 세계와 영원히 작별하게 될 선택을 한다.
 낯선 세계에서, 자신만의 가치관을 지키며, 항상 스스로 선택하여 나아가야만 한다.


 안전은 보증할 수 없다.
 장래도 보증할 수 없다.
 올바름이나, 만족마저──.


 ──『하늘을 난다』는 것은, 그런 것.


 위아래도 분간할 수 없는 무한하고도 자유로운 하늘에서, 자신이 나아갈 길을 스스로 만들어내어, 간신히 도달한 길 끝에서 가치를 찾아내는 것조차 스스로 해야만 한다.
 말도 안 되는 이야기다.


 사나에는, 익숙해진 스스로의 방을 둘러보았다.
 눈꺼풀을 닫고 귀를 기울여, 집의 소리를 듣는다.
 정적만이 사나에를 감싼다.
 부모님은, 이미 자고 계실 것이다.
 굳게 닫힌 창 바깥에선, 서서히 기세를 더해가는 비와 바람소리만이 울려퍼진다.


 눈을 뜨자, 책상 바로 옆에 있는 자신의 침대가 눈에 들어왔다.
 공부를 끝마치고, 침대에 들어가 이불을 덮으면, 그걸로 전부 끝.
 다음에 눈을 뜨는 것은, 내일 아침이겠지.
 여느 때처럼 부모님께 인사를 드리고, 준비된 아침식사를 먹고, 의무교육을 받기 위해 학교로 발을 옮긴다.
 진절머리가 일지만, 헤맬 필요 없는 일상이 시작된다.
 이 세계엔, 살기 위해 필요한 모든 것이 갖추어져 있다.
 안전도.
 평화도.
 가족도.
 학교도.
 장래도.


 사나에는, 다시금 창문을 바라보았다.
 비는 눈 깜짝할 새에 폭풍우로 바뀌어 있었다.
 바람에 이르러선, 창틀이 삐걱일 정도로 거세졌다.
 이 폭풍우 속에서 창문을 열어 재끼고 뛰쳐나간다니, 완전히 비상식적인 짓이다. 자칫 잘못하면, 가는 도중에 사고를 당할지도 모른다.


 잠시 동안 바깥을 바라보던 사나에는, 이윽고 자신의 손을 바라봤다.
 그리고, 다시 펜을 잡았다.









「──지루해, 이 세계는. 자그만 요동조차 없는 부동의 대지. 그러니, 변화와 자극을 원하는 거야」


 대자로 쓰러진 채, 천인 소녀가 중얼거렸다.
 흐트러진 숨을 가다듬으며, 마리사는 그 독백을 들었다.
 한 쪽은 쓰러지고 한 쪽은 서 있다.
 패자와 승자의 모습.
 그러나, 승자일 터인 마리사의 얼굴엔 달성감이나 기쁨 따윈 한 조각도 없이, 그저 눈을 부릅뜨며 상대를 노려봤다.
 뒤에서 그 둘의 결투를 지켜보던 사쿠야 또한, 마리사의 승리를 확인했음에도 방심하지 않고 적을 경계하고 있었다.


「딱히, 나도 환상향에 대지진을 일으키고 싶어서 일으킨 게 아냐. 천인의 생활은 지루하고. 나도 지상에 있는 애들처럼 놀고 싶었어. 그래서 이렇게 지진을 일으키다 보면, 누군가 나를 막으러 올 거라고 생각했지. 그때 온 게 너희, 란 이야기──」


 소녀가 일어섰다.
 손가락 하나 까딱하지 않고, 살포시 떠올라 자세만을 바로한 채 땅에 내려선 것이다.
 자신이 패배하여 쓰러져 있었단 사실 따윈 존재하지 않는다는 듯 우아하면서도 여유 넘치는 행동이었다.


「처음엔, 어딜 어떻게 봐도 믿음직스런 구석이 요만큼도 없는 인간이라고 생각했는데, 나름대로 꽤……만족스럽게 만들어주네?」


 그렇게 말하며, 미소를 짓는다.
 화사한 웃음이라는 말을 그대로 자아내듯, 소녀 특유의 천진난만하고도 흐림 없는 미소.
 하지만, 그 말을 되새기니, 한 줌의 호감조차 느낄 수 없었다.
 마리사의 눈매가 보다 험악해지고, 이가 삐걱거릴 만큼 굳게 다물린다.


「고작 그런 이유로──」


 그 목소리는 분노에 차 가늘게 떨렸다.


「고작 그런 이유로, 넌 레이무의 집을 부서 버린 거냐!」


 ──마리사가 하쿠레이 신사에 일어난 사태를 알게 된 지는, 얼마 되지 않았다.


 텐구의 신문으로, 모든 것을 알 수 있었다.
 사흘 전, 신사가 정체 모를 이유로 인해 붕괴된 것. 원인은 알 수 없음. 이와 함께 신사의 거주자인 하쿠레이 레이무의 소재 또한 불명. 또한, 이 일과 관계가 있을지는 모르지만, 마을에서도 선대무녀의 행방을 찾을 수 없게 되었다고 한다.
 겨우 그런 단기간에 모았다고는 믿을 수 없을 만큼 놀라울 정도로 많은 정보를 긁어모아 쓰였다는 신문의 기사와 자신이 아는 정보를 합하여, 마리사는 여러 사실을 도출해낼 수 있었다.
 그 날, 하쿠레이 신사에는 레이무의 어머니가 올 예정이었다.
 그리고 약속 당일, 마리사는 직접 신사를 찾아갔었다,


 그때──레이무를 보러갔을 때, 이미 일은 일어난 것이다.
 원인은 알 수 없지만, 신사가 붕괴하고, 아마 현장에 있었을 터인 레이무의 눈앞에서 어머니가 행방불명 됐을 터.
 레이무는 자신에게 그런 사실을 숨기고 있었던 것이다.
 마리사는 그 사실을 알자마자 허둥지둥 하쿠레이 신사로 향했으나, 그곳에 남아 있던 것은 자신이 환각이라도 보고 있는 게 아닌가 싶을 정도로 끔찍하게 변해버린 신사의 흔적 뿐이었다.
 레이무는 만날 수 없었다.
 사정을 물어볼 수 없었다.
 하지만, 한 가지 확신하는 것은 있었다.


 ──누군가, 무슨 짓을 벌였다.
 ──그리고, 그로 인해 레이무의, 내 친구의, 중요한 장소가 엉망진창이 되어버렸다.


 마리사의 마음속에서, 이제껏 느껴본 적 없는 분노가 끓어올랐다.
 자신에게 아무 말도 없었던 레이무의 서먹한 태도에 대한 분노 또한 물론 있었지만, 그걸 아득히 넘어설 정도로 시꺼먼 감정의 불꽃이, 자신이 불태울 것을 찾아 날뛰고 있었다.
 그 열기에 몸을 맡긴 마리사는 환상향 곳곳을 헤집고 다녔다.
 환상향에서 일어나고 있는 이상기후와의 관계 있을 만한 것들을 가늠해보고, 그렇게 이어진 궤적들을 더듬듯 온갖 곳을 찾아다니며, 하루도 쉬지 않고 불철주야 날아다닌 결과. 마침내 이 천계를 찾아낸 것이다.
 그 과정 도중, 사쿠야가 갑자기 자길 따라온 이유는 알 수 없었지만, 이내 신경을 껐다.
 이번 이변의 흑막인 천인을 눈앞에 두고, 자신이 해야 할 일을 깨달았다.


 ──이 녀석을 흠씬 두들겨 패주겠어!


 싸움을 걸어오는 마리사와 마주한 그 소녀는 마치 기쁘다는 듯 맞서 싸웠다.
 적은 강했다.
 처음엔, 손 한 번 까딱할 틈도 없이 지고 말았다.
 패배한 마리사를 대신하여 사쿠야가 승부에 나섰지만, 그녀마저도 지고 만 것이다.
 하지만, 천인 소녀는 패배한 마리사들을 마무리 짓지도, 무언가를 요구하지도 않았다.
 그저, 실망스럽다는 듯 짜게 식은 눈으로 내려다볼 뿐이었다.
 마리사는 바로 일어섰다.
 패배의 쓴맛에 기죽지 않고, 분노라는 감정으로 몸을 불태우며 다시금 싸움을 걸었다.
 그리고──.


「웃기지마! 너는, 내가 직접 레이무한테 사과하게 만들어주겠어!」


 마리사는 이겼다.
 적어도, 결투 규칙 하에서 승리를 거둔 쪽은 확실히 마리사였다.
 분노를 힘으로 바꾸어, 패배에서 배울 점을 찾아내는 냉정함과 한 걸음도 물러서지 않는 의지의 힘. 그것이 마리사에게 승리를 거머쥐게 만들어준 것이다.


「너한테는 이미 만족했어. 자, 다음엔 거기 뒤로 빠져있던 네 차례야. 넌 그 흑백처럼, 기적적인 역전극으로 날 매료시켜줄 거야? 나를, 어떻게 자극해줄래?」


 천인 소녀는, 마리사를 무시하고 사쿠야에게 그렇게 말했다.
 자신에게 이긴 자를 인정하려는 태도나, 패배에 대한 분함 섞인 표정 같은, 그런 승부가 난 뒤에 보일법한 반응이 전혀 나오질 않는다.
 감정을 감추고 있는 건 아니다.
 하물며, 견디고 있는 것은 결코 아니다.
 정말로, 아무것도 느끼지 못하는 표정이었다.
 그녀에게 보이는 거라곤 오로지 『자신이 극적으로 쓰러졌다는 것에 대한 만족감』──그저, 그뿐이었다.


「망할 자식!!」


 성대에서 짜여나온 노성과 함께, 마리사는 혼신의 마스터 스파크를 내뿜었다.
 극대의 마력포가 천인 소녀를 삼킨다.
 방금 승부에서 결판을 낸 것 또한, 이 기술이었다.
 파괴력이라는 점에 있어선, 결투의 룰에 의거하고 있던 방금 그것을 월등히 앞선 것이었다.
 이미, 마리사에게 승패는 관심사가 아니다.
 그저, 눈앞에 선 존재를 때려눕히고 싶다는 분노 밖에 없었다.
 팔괘로에서 뿜어져 나오던 마력이 줄어들며 빛이 사그라졌다.
 빛이 사라진 자리에, 천인 소녀가 서 있었다.
 처음 서 있던 곳에서 단 한 걸음도 움직이지 않고, 미동 없이, 자세조차 전혀 변하지 않은 채 멀쩡히 서 있다.


「──음」


 소녀가 마리사를 바라봤다.
 흥미가 가신 물건을 다시 보긴 싫다는 듯, 과하게 귀찮다는 것 같은 태도였다.


「너, 혹시 나랑 승부해서 이겼다고, 네가 나보다 강하다고 착각하고 있는 거야?」
「뭐라고!」
「정말로 강한 녀석이란 건, 승리든 패배든 자기 마음대로 고를 수 있는 법이야」


 천인 소녀가 웃는다.
 더할 나위 없는 비웃음으로.


「하지만, 약한 녀석은 패배하는 것 말곤 선택할 수 없어」


 혼신을 다한 일격을 날렸음에도 상처는커녕, 옷을 더럽히는 것조차 불가능하다는 사실에 마리사는 이를 갈았다.
 아까 그 승부가, 상대에게 있어서 단순한 놀이에 불과했다는 건 충분히 이해하고 있었다.
 분하다.
 굴욕스럽다.
 확연한 힘의 차이가 자신을 가로막는다.


「그게, 어쨌다고……!」


 시약이 들어간 병 몇 개를 꺼내든다.


「너를 용서할 수 없다는 내 마음이, 변하기라도 할까보냐!」


 마법이라고 한들, 그 효과는 거의 폭약이나 다름없다. 당연히, 살상력도 상당하다.
 탄막놀이나 그 엇비슷한 결투에는 결코 쓰지 않고 호신용으로만 챙겨두고 있는 그것들을 사용할 결의와 각오를, 마리사는 굳혔다.
 일찍이, 요우무와 승부하던 도중 일어났던 감정의 변화.
 혼탁해진 적의를 순수한 승부를 향한 의지만으로 바꾸어냈던, 그때와는 전혀 다른 방향을 향해 마리사의 감정이 달려 나가기 시작한다.
 승부 따윈, 이제 어찌되든 상관없다.
 그저 어떻게든, 내 앞에 있는 적을 흠씬 패주고 싶을 뿐이다.


「죽──!」
「 『죽어버려』 같은 말이라도 할 셈이야?」


 휘둘러진 마리사의 손이 허공을 가른다.
 그 손에 분명히 쥐어져 있던 병이, 어느새 흔적도 없이 사라져 있다.
 당황하며 뒤를 돌아보니, 사쿠야가 시약이 들어간 병을 들고 서 있었다.
 어느새, 라고 물으려던 마리사는 그게 멍청한 질문이란 것을 깨달았다. 당연히 시간을 멈추고 가져갔겠지.


「너한테 이런 건 어울리지 않아, 마리사」
「돌려줘!」
「얌전히 이걸 집어넣고, 물러서 있겠다고 약속하면 돌려줄게」
「내가 어쩌든 사쿠야랑은 상관없잖아!」
「있어」


 사쿠야는 코가 닿을 만큼 얼굴을 들이대곤, 마리사의 눈을 들여다봤다.


「많이 있어」
「……승산이 없다는 것 정돈 알아. 하지만!」
「모르잖아. 이런 식으로 싸우는 건, 마리사가 하지 않았으면 해」
「위험하니까 안전한 선 안에서만 놀란 소리야? 나한테도 말이지, 머리가 회까닥 뒤집힐 것 같은 일이란 게 있다고!」
「그래서, 내가 따라온 거야. 내가, 널 대신하기 위해──」


 병을 마리사에게 떠안기며, 사쿠야가 마리사의 앞을 막아서듯 나온다.
 천인 소녀와 사쿠야가 마주선다.


「자신 있는 쪽이 나서는 게 좋잖니. 이런 건」


 사쿠야의 양손엔 어느새 나이프가 쥐어져 있었다.
 예리한 칼날이, 빛을 받아 희미하게 반짝인다.
 사쿠야는 자신의 탄막에 나이프를 쓴다. 처음에 승부를 했을 때도 그랬다.
 하지만, 이 승부는 그때와는 전혀 다른 의미를 ​가​졌​음​을​─​─​마​리​사​는​ 느낄 수 있었다.
 사쿠야는 냉철한 살의를 갖고, 싸우려 하고 있는 것이다.


「헤에, 너는 『그런 싸움』을 할 생각이구나」


 천인 소녀는 사쿠야의 변화를 이해하고서도, 여유로운 미소를 잃지 않고 있었다.


「그것도 일흥이지. 부디, 날 즐겁게 해줘」
「아까 그 싸움을 보아, 당신의 몸은 나이프로도 어쩔 수 없을 것 같네. 딱딱한 게 오니 수준이야」
「시간을 조종하는 능력이라니 인간한텐 어울리지 않는 힘인걸. 하지만 그렇게 빈약해서야, 천인인 내 시간을 멈출 순 있어도, 생명을 끊는 건 불가능해」
「하지만, 아직 시험해보지 않은 곳은 많아. 과연 눈이나 귀, 입속에는 칼이 박히지 않을까?」
「음, 분명 그런 곳에 시험해본 적은 없네. 흥미로워」
「그렇다면, 시험해보도록 할게. 나 자신 있거든, 그런 거에」


 즐겁다는 듯 농담을 주고받는 천인에 비해, 사쿠야의 표정은 이미 1mm의 움직임조차 사라져 있었다.
 마리사는, 저게 바로 사쿠야의 진심임을 알아챘다.
 사쿠야는 적을 죽일 각오로 싸울 생각인 것이다.


 ──그만둬.


 상대를 향한 분노와 증오는 전혀 사그라지지 않았다.
 용서할 수 없고, 말도 안 되는 짓거리도 정도껏 하라고 말해주고 싶어진다.
 아무리 미사여구를 덧붙여도, 아까까지의 자신이 상대를 마구잡이로 쥐어 패서 땅에 패대기치고 싶다고 생각하고 있었던 건 틀림없는 사실.
 그럼에도, 마리사는 그 순간 사쿠야를 말리려 하고 있었다.
 입을 열고, 목소리를 내어──.


「그만둬, 사쿠야. 적어도 내 앞에선」


 머리 위에서 들려온 익숙한 목소리에, 마리사는 무심코 숨을 삼키곤 시선을 돌렸다.
 구름 위에 존재하는 천계. 창공에 셀 수도 없이 떠올라 있는 대지들 사이에서 목표를 골라내다보니, 어느새 찾아낼 수 있었다.
 하쿠레이의 무녀가, 그곳에 있었다.


「레이무──」


 자기 옆으로 내려선 레이무를, 마리사가 바라봤다.
 레이무 또한 마리사에게 시선을 돌렸다.
 말하고 싶은 게 산만큼 쌓여 있었다.


 ──걱정했잖아.
 ──그때, 왜 나한테 숨긴 거야.
 ──네 어머니는 괜찮으신 거냐.
 ──너는, 괜찮은 거냐.


 적에게 향하던 그토록 커다란 분노와 집착이, 레이무를 보자마자 전부 아무래도 좋다는 것 마냥 녹아들었다.
 지금, 걱정스러운 건 레이무 뿐이다.
 하지만, 마리사는 입을 열지 못했다.
 마리사에게서 눈을 돌린 레이무의 시선이, 이번 이변의 원흉을 향해 있었기 때문이다.
 누구보다도 정당한 분노가, 그를 받아 마땅한 상대에게 향해진다.


「마리사, 미안. 이따가 마저 얘기해줄게」
「……그래, 그래줘. 이 다음부턴 전부 너한테 맡길게」


 그렇게 대답한 뒤, 마리사는 크게 숨을 내쉬었다.
 어깨에서 무거운 짐을 내려놓은 것처럼, 굳어 있던 몸에서 힘이 빠졌다.
 이제, 자신이 할 일은 없다.
 레이무 대신 적을 쓰러뜨릴 필요도, 화낼 필요도 없다.
 그저, 지금부터 시작될 싸움을 끝까지 지켜보고만 있자고 결정했다.
 레이무가 사쿠야에게 다가간다.


「내가 대신할게」


 사쿠야는 어깨를 들썩이더니, 그 자리를 레이무에게 양보했다.
 레이무와 천인.
 두 사람이 대치한다.
 서로가 서로를 적이라고 인식하고 있으면서도, 그 둘의 표정은 전혀 바뀌지 않은 채 서로의 얼굴을 바라볼 뿐이었다.


「네가 지진을 일으키고 날씨를 이상하게 만든 범인이야?」
「이변 해결의 전문가. 널 기다리고 있었어」


 천인 소녀가 웃으면서 긍정한다.
 마리사를 상대할 때도, 사쿠야를 상대할 때도, 그리고 지금도. 그녀는 오로지 미소만을 지을 뿐이다.
 그게 스스로에게 가진 절대적인 자신감에서 비롯된 여유임은 분명한 사실이었다.


「뭘 기다리고 있었단 거야. 꼭 이변을 해결해주길 바라고 있었단 눈치네」
「이변 해결 놀이 상대가, 꼭 요괴가 아니어도 괜찮지?」


 분노가 되살아난 마리사가 몸을 들이밀고, 사쿠야가 그런 마리사를 말없이 말린다.
 신사를 파괴당한 당사자인 레이무 앞에서, 자신이 벌인 짓을 『이변 해결 놀이』 따위로 치부하며 웃는다.
 명확한 목적도, 신념도 없다.
 강자의 입지를 근거 삼아, 놀아날 뿐이다.
 제3자의 입장임에도 분노를 드러내는 마리사와는 반대로, 레이무 본인은 조금의 감정표현조차 하지 않은 채 증오스러운 적을 바라보고 있었다.


「난 천계에서 사는 히나나위 가문의 일원. 이름은 텐시야」


 히나나위 텐시가 마치 시를 읊듯 자신의 이름을 밝혔다.


「매일매일, 떠들고, 노래하고, 마시고, 춤추고, 떠드는 것만 반복하는 천계의 생활이 정말로 싫증나서 지루해하고 있을 쯔음, 네가 지상에서 다양한 요괴들을 상대로 노는 걸 봤어」
「딱히 놀고 있던 건 아니야」
「특히, 오니가 이변을 일으켰을 때가 가장 재미있었어!」


 희희낙락한 표정에서 튀어나온 말에, 레이무의 눈썹이 아주 약간 까딱였다.


「그 날은 밤새도록 지루할 틈이 없었어. 환상향의 어딜 봐도 즐거웠거든. 마지막에 결투를 벌일 때의 고조감은 정말 최고! 그 뒤에 한 연회에 무심코 끼어들고 싶어질 정도였다니까」
「──」
「그걸 보고 생각한 거야. 나도 이변 해결 놀이를 하고 싶다고. 그래서 일으켜버렸어, 이변」
「……그래」
「아, 그러고 보니」
「뭐?」
「너 말고도 또 있지? 이변을 해결하는 무녀. 네가 지면, 그 녀석도 불러주지 않을래?」


 그렇게 말하고, 텐시는 방긋 웃었다.
 언뜻 보면 미심쩍은 부분 없는 노골적인 미소를 짓고 있는 그녀.
 하지만, 텐시가 지금까지 해온 말을 돌아보면, 그게 본인이 스스로를 너그럽다고 여기기에 나온 태도임을 알 수 있었다.
 자신은, 이 자리에 있는 그 누구보다도 높은 곳에 서 있고, 내려다보고 있다.
 그런 자신의 아래에 있는 자들이 뭐라 말하든 자신은 무고하며, 그렇기의 스스로의 행동 또한 용납될 수 있다.
 ──그런 흔들림 없는 자신에 대한 확신이 깃든 태도였다.


「그래 좋아. 나한테, 이길 수 있다면 말이지」


 텐시의 그런 말을, 도발이라고 받아들이지 않은 듯 레이무가 대답했다.
 그저 담담하게, 지금부터 시작될 결투에 대비해 음양옥을 주변에 띄우고, 불제봉을 쥔다.
 표정과 행동, 그 어느 쪽에서도 분노나 짜증은 느껴지지 않았다.
 적어도 마리사의 눈에는, 레이무의 모습이 이상할 정도로 평소와 똑같이 보였다.


「상대가 천인이든 괴짜든, 내 일은 하나야. 이변을 일으킨 녀석을 퇴치할 뿐」
「후후훗. 그래 맞아, 그런 분발하는 모습이 보고 싶었던 거야!」


 텐시 또한 쥐었다.
 마리사의 혼신의 힘이 담긴 마스터 스파크를 맞을 때에도, 사쿠야와 싸우기 직전까지 갔을 때에도, 땅에 꽂아둔 채 뽑지 않았던 검──비상의 검──을 쥔다.
 레이무의 실력을 얕잡아 보는 자만심을 가지고 있진 않다.
 하지만, 그와 동시에 스스로가 더 격이 높은 존재라는 확신 또한 갖고 있었다.


「하지만, 그렇게 태도가 제대로 나타나지 않는 건 좋지 않아. 나를 정말로 퇴치하고 싶다면, 더 필사적인 모습을 보여 봐. 감정을 억누르는 걸 무아의 경지라고 말하진 않아」
「딱히, 그런 심성 자랑을 할 생각은 없는데」
「넌 너무 곧아. 곡전(曲全)*, 즉 여생을 다하려면 어느 정도 굽는 게 필요하단 것쯤은 알아둬──」


 그렇게 말하는 텐시의 모습은, 천계에서 지상으로 내려와 인간에게 충언을 내려주는 천인에 걸맞는 위엄을 갖고 있었다.
 마리사와 사쿠야로선, 그 말이 지금까지 자기가 무슨 짓을 저질렀는지 알지도 못하는 오만방자한 말투로밖에 보이지 않았다.
 그런 텐시의 말에 레이무는──,


「──안심해. 네 덕분에, 난 구부러졌거든」


 ──담담하게 대답했다.


「내장이 비틀려 끊어질 만큼」


 지금 당장은 결투의 룰에 따라, 두 소녀가 싸움을 벌이기 시작했다.




 사토리의 몸은 싸늘한 바닥 위에 조심스레 뉘여 있었다.
 요 같은 것은 깔려 있지 않았지만, 그 대신 선대가 자신의 재킷을 벗어 덮어두었다.
 잠든 건지 깨어 있는 건지 알 수 없을 만큼 엷은 호흡만을 거듭 반복하는 사토리를, 선대와 청아, 그리고 스와코 셋이 함께 둘러앉아 지켜보고 있었다.


「여긴 신산데, 이래서야 꼭 비구니 절 같네」


 네 인요가 모여 있던 곳은 바로 스와 대사의 안이었다.
 어슴푸레한 실내를 작은 촛불만이 옅게 비춘다.
 물론, 무단으로 불을 킨 것이다. 중요문화재로 지정되어 있는 건물 안에 멋대로 침입해서, 화기까지 들여왔단 게 들키는 날엔 당장이라도 경찰이 출두할 것이다.


 하지만, 신사 내부의 광경이 바깥에 보일 일은 결코 없다.
 지금 밖에선, 태풍이 강타한 것만 같은 비바람이 날뛰고 있기 때문이다.
 밖에 나가기만 해도 생명의 위험을 느낄 정도로 강렬한 폭풍우.
 비가 격렬하게 지붕과 덧문을 두들기고, 바람이 목조 건물 여기저기를 삐걱거리게 만든다.
 실내에 있음에도 공포가 일어날 정도의 기세였으나, 이곳에 모인 자들에게 있어 이 폭풍우는 오히려 손꼽아 기다려온 것이었다.


「게다가, 실려온 게 사람이 아니라 요괴란 말씀이지. 음, 동료가 요괴라는 말을 들은 시점에서 이상하단 생각은 했지만. 가엽게도, 완전히 힘이 다해가고 있네──」
「괜찮은 겁니까, 스와코 님?」


 ──『스와코 님』이라 그거지.


 진지한 표정으로 물어보는 선대에게서 시선을 돌리고, 스와코는 속으로 기분이 나빠졌다.
 처음 만났을 때엔 눈치채지 못했지만, 이렇게 다시금 마주하니, 이 인간의 이질적인 부분이 싫어도 느껴졌다.
 스와코를 보는 눈에는 한 치의 흐림도 없는 경외심으로 가득했고, 위대한 존재를 향한 공포가 모순 없이 마음속에서 양립하고 있다.
 그건 즉, 신을 향한 신앙.


 ──카나코가 무슨 말이 하고 싶었던 건지, 이제야 알 수 있겠네.


 스와코는, 선대의 곧은 시선을 똑바로 마주할 수 없었다.
 거북함과 꺼림칙함이 한데 섞인 것만 같은 감각.
 좀 나쁘게 말하자면, 그녀의 시선은 자신을 너무나 비참하게 느끼게 만든다.
 신으로서의 힘과 위광을 잃은 지 어언 수백 년, 그것을 충분히 자각하고 있는 스와코에게 있어서, 선대가 자신에게 향하는 순수한 신앙심은, 한때 누린 과거의 영화를 떠오르게 함고 동시에 영락한 자신의 모습을 뼈저리게 상기시킨다.


 본인 또한 이런데, 카나코는 더욱 그렇겠지.


「아아, 괜찮아. 응, 그렇지」


 스와코는 헛기침을 하며, 어떻게든 신답게 잘난 말투로 대답하려 애썼다.


「이제 곧 환상향으로 전이할 준비가 끝난다. 안심하여도 좋다」


 실제로 입에서 나온 말은, 스스로 생각해도 조금 아니다 하는 느낌을 받을 정도로 우스운 말투였다.


「감사합니다」
「으음」


 깊숙이 고개를 조아리는 선대의 태도에 반쯤 벌게진 얼굴로 호들갑스레 끄덕이는 스와코.
 이쪽의 심정을 알아챈 것일까, 옆에서 능글맞게 웃음 짓는 청아에게 괜시리 화가 났다.


「폭풍우도 꽤 격렬해진 것 같고 말이야. 마을에 사는 인간들의 당황스러움이나 우려가 여기까지 전해져올 정도야. 전이하기 위한 술식 같은 건 미리 준비해뒀으니. 남은 건 『기회』를 살피는 게 다야」


 스와코의 설명을 이해하고 있는 건지 그렇지 않은 건지 알 수 없는 무뚝뚝한 얼굴을 유지한 채 선대는 귀를 기울였다.
 사나에 이외의 인간과 대화를 나누어본 건 정말로 오랜만이다. 게다가 이쪽에서 어떻게 받아들이건 간에, 상대가 순수한 신앙을 가진 인간이란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적어도, 카나코 수준으로 거부감을 느끼진 않았다.


 자신의 말에 진지하게 귀를 기울이는 선대의 모습을 보며, 스와코는 약간 으스댔다.
 어느새 기척은 있음에도 모습을 보이지 않고 있는 카나코도 그렇고, 그 『기회』가 무르익을 때까지 아직 약간의 시간이 더 필요하기도 하여, 스와코는 수다스레 말을 이었다.


「이제 필요한 건 술식을 기동하기 위한 에너지를 충전한 다음, 스위치만 누르면 끝이야. 그 왜 있잖아, 영화에서 번개가 가진 에너지로 타임머신을 작동시키는 장면. 아, 환상향의 주민이니 모르겠구나」
「알고 있습니다」
「에, 진짜?」
「역시 선대로군요」
「혹시, 너도?」
「3편까지 전부 봤답니다」
「재미있지! 속편이 제작된 영화는 거의 다 2편부터 망하는 트리를 타는데 말이야──」


 풀어진 얼굴로 말을 이으려던 스와코는 제정신을 차렸다.


「아, 아니. 그런 건 아무래도 좋아. 즉, 그렇다는 거야」
「뭐가 그렇다는 말씀이신지?」
「으익─, 딴지 걸지 마! 어쨌든, 그 술식이 이 신사를 기점 삼아 발동하게 돼. 발동하면, 시간을 들일 것도 없이 단번에 환상향으로 갈 수 있어. 그러니까, 이 사토리 요괴의 상태가 이래도 충분히 시간에 맞을 거야」


 구체적인 설명을 듣고 안심하는 선대의 옆에서, 청아가 질문을 더했다.


「환상향은 결계로 둘러싸여 있다 들었습니다만, 그 문제는 괜찮은 건가요?」
「응, 결계의 성질에 대한 것도 미리 조사해뒀어. 실제와 환상 사이의 경계를 넓히는 결계야. 이런 종류의 결계가 상당히 메이저하던 시대가 있었거든. 통과하는 방법은 알고 있어. 환상과 함께 통과하면 되는 거야」
「과연」
「──」
「선대는 잘 모르는 것 같아, 정말 무녀 맞아?」
「죄송합니다」
「아니, 그렇게 미안해하지 않아도 괜찮아. ──우리는, 이 신사를 포함한 이 일대의 땅 통째로 환상향으로 전이할 거야. 그렇다고 물리적으로 이동하는 건 아니지만. 아득한 옛날, 이 스와 대사가 지어졌을 때부터, 모레야 신 자체는 존재해왔고, 인간들의 신앙 또한 존재했었어. 인간의 역사에는 남지 않았지만, 신화의 시대에 우리를 받들어 모시기 위해 지어진 최고의 신사를, 이 토지는 기억하고 있어. 지금의 세상에는 환상의 존재가 된 장소로서 결계를 통과하는 거야」
「환상들이──」
「헤에, 그렇게 부르는구나. 뭐, 쉽게 말하자면 엄청 옛날에 없어져서 사람들이 잊어버리게 된 건물, 땅과 함께 『환상들이』 한다는 거야. 옛날엔, 신사도 호수도 더 작았으니까. 자리를 잡는단 의미에서 봐도, 그리 귀찮게 따질 건 없을 거고」


 대충 말을 끝마친 스와코는, 크게 숨을 내쉬었다.
 섭섭한 표정을 짓는 스와코.
 둘과의 대화가 끝난 것이 섭섭한 것은 아니었다.
 이야기를 끝마치는 것 자체가 아쉬웠다.
 이야기하는 동안 깨달을 수 있었다.
 기회가 무르익었음을.
 때가 됐다.
 이 세계로부터 떠날 시간이, 드디어 찾아온 것이다.


「──그럼, 슬슬 가볼까」


 고개를 들어올린 스와코가 말했다.
 깔끔한 결단이었다.
 망설임은 없다. 하지만, 어딘지 모르게 쓸쓸해 보이는 미소가 입가에 번져 있었다.
 스와코는 『이영차』하고 기합을 넣으며 일어섰다.
 그리고 그 직후, 이제야 깨달았다는 듯 시선이 돌아간다.
 거의 동시에 선대의 시선 또한 같은 방향으로 향한다.
 점점 다가오는 기척을 느낀 것이다.
 평범한 사람들이었다면 이 격렬한 폭우 속에서 발소리를 들을 수 있을 리 없었겠지만, 신과 무녀에겐 당연하리만치 파악되고 있었다.
 발소리가 방 앞까지 다가오더니, 다음 순간 힘차게 덧문이 열렸다.


「사나에!」


 흠뻑 젖어 제자리에 우뚝 서 있는 내방자의 얼굴을 보고, 스와코는 경악에 찬 소리를 내질렀다.


「어……어째서, 꼴은 또 왜 그래?」


 자신이라지만 멍청한 질문도 다 하네, 라고 스와코는 생각했다.
 그것 말고도 물어볼 게 잔뜩 있을 텐데.
 사나에는 방에 있었을 때 입고 있던 잠옷이 아닌 다른 옷으로 갈아입고 있긴 했으나, 어째서인지 교복차림이었다.
 우비를 걸치지 않은 이유 정도라면 안다. 아무리 사나에라도 자기 방 옷장에 비옷을 상비하고 있진 않기 때문이다. 부모님에게 들키지 않고 현관을 통해 나올 순 없었을 테니까.
 아마도 폭풍우 속을 뚫고 온 탓일까, 사나에는 거친 숨을 고르고 고개를 갸웃거리며 웃었다.


「그게, 비가…그…엄청 많이 오길래, 딱 봐도 흠뻑 젖을 것 같아서, 더러워져도 괜찮은 옷을 고르고 있자니 자연스레 이 옷을……이라니, 바보 같죠? 앞으로 입을 일도 없을 텐데, 마음에 드는 옷이 아까워져서……」


 스와코는 자신이 물을 필요조차 없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사나에가 이곳에 있는 이상, 모든 대답은 나온 것이나 마찬가지다.
 그럼에도, 다시금 확인하기 위해 떨리는 몸을 다잡으며 입을 열었다.


「……사나에, 너 지금 자기가 뭘 하려는 건지 알고 있어?」
「네. 저는, 환상향으로 가겠어요」
「몰락한 신이랑 같이, 이 세계에서 사라지겠단 거구나? 가족 전부를 버리고」
「틀려요」
「틀려?」
「스와코 님들과 함께 가는 게 아니에요. 제가, 환상향으로 가기 위한 배에 올라탔을 뿐이죠」
「부모님은 어쩌고?」
「편지를 남겨뒀어요」
「편지라니……고작 그런 걸로 후회하지 않겠어?」
「할 거예요. 분명 하겠죠」
「그럼──!」
「어느 쪽을 골라도 후회할 거예요! 그렇다면, 제 의지로 선택한 길을 가겠어요!」


 사나에는 떨리는 목소리로 외쳤다.
 뺨을 타고 흘러내리는 그것이 젖은 머리칼에서 방울져 떨어지는 빗물인지, 눈물인지, 스와코는 알 수 없었다.
 하지만, 요동치는 사나에의 두 눈에 확고한 의지가 담겨 있다는 것만은 이해할 수 있었다.
 스와코의 얼굴이 단번에 일그러졌다.
 그야말로, 당장에라도 눈물이 쏟아져내릴 것 같은 표정이었다.


「환상향으로 가겠다고 결정한 이유, 물어봐도 괜찮아?」
「안 알려드릴 거예요」
「짠돌이 같으니」
「왜냐면, 제 마음이니까요. 스와코 님들 때문이 아니라, 제 자신을 위해 환상향으로 가는 거니까, 가고 싶은 건 제 마음이니 스와코 님한테는 가르쳐드릴 생각 없어요」
「나 원 참, 풍축 주제에 신에 대한 존경심이 이렇게 없어서야」


 둘은 어색한 미소를 지었다.
 서로 고뇌와 망설임을 품고 있다.
 이 선택이 올바른지 어떤지, 지금은 알 수 없다.
 애당초, 상대가 자신을 받아들이고 있는지조차 알 수 없으니까──.
 하지만, 둘은 서로를 보며 웃는다.
 일찍이, 사나에가 어렸을 적에 짓던, 그리운 미소였다.


「어쩔 수 없지」


 말과는 달리, 스와코는 기쁜 듯 웃으며 사나에에게 길을 양보했다.


「환상향 직행 배에 지각생 한 명이 끼어버렸네. 위험한 짓도 다 해」
「빠듯할 때까지 고민하고 고민했으니까요. 그래도, 이게 제 대답이에요」


 스와코는 자기보다도 키가 큰 사나에를 마치 어머니처럼 품에 안았다.
 옷이 다 젖어버렸지만, 그런 건 아무래도 좋았다.
 몇 초 동안, 사나에의 고동과 식어버린 체온을 느끼곤, 몸을 떼었다.


「──좋아! 사나에의 힘이 있으면 기회를 잴 필요도 없긴 하지만, 마침 좋은 타이밍에 왔어. 서둘러 술식을 기동할게. 사나에도 도와. 어떻게 하는 건진 알지?」
「네, 물론이에요. 옛날에 배웠으니까요」
「영재 교육은 해두고 보는 거라더니」


 스와코의 농담에, 사나에가 쓰게 웃었다.
 실내에 발을 디딘 순간에야 간신히 선대 일행의 모습을 눈치챈 사나에.
 가로 뉘인 사토리의 모습엔 사나에도 놀랄 수밖에 없었다.


「사토리 씨! 왜, 왜 그러세요!」
「우리랑 똑같은 이유 탓에 점점 약해져가고 있어. 증상만 따지면, 이쪽이 더 심각하긴 해도. 하지만, 이제 그것도 바로 해결할 수 있을 거야」


 스와코가 간단명료하게 상황을 설명했다.
 그럼에도 사나에는 걱정스럽다는 듯 눈을 떼지 못하고 있었으나, 사토리를 구하기 위해서라도 시급히 환상향으로 가야한다는 것은 이해하고 있는 듯했다.
 마음을 진정시키며, 스와코를 바라본다.


「알겠어요, 서두르죠. 그런데, 카나코 님이 보이시질 않는데요──」
「그러고 보니 그 녀석, 뭐하고 있는 거야? 사나에가 온 것도 눈치챘을 텐데」


 실내를 둘러보던 스와코가, 사나에가 열어젖힌 덧문을 통해 바깥으로 시선을 돌렸다.
 밤의 어둠 속을 가득 메운 폭우 탓에 시야가 상당히 좋지 않았다.
 그리고 그 속에, 한 그림자가 둥둥 떠 있었다.


「──카나코?」


 스와코의 말을 듣고 나서야 사나에도 눈치챌 수 있었다.
 억수 같이 내리는 비속에서, 카나코가 가만히 자리를 지키고 있다.


 감기에 걸리세요, 라고 말하려던 사나에가 입을 우물거렸다.
 자기가 바보 같은 말을 하려 했음을 깨달았기 때문은 아니다.
 격렬한 비바람 속에서 있으면서도, 카나코의 옷은 젖거나 펄럭이는 것처럼 보이지 않았다.
 그것이 확실하게 보이지 않을 만큼 시야가 나빠서 그렇단 이유도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사나에의 눈에는 카나코가 이 폭풍우의 영향을 전혀 받지 않는 것처럼──혹은, 녹아들어 하나가 되어가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이야기는 끝난 것 같군」


 카나코가 중얼거렸다.
 폭풍우 탓에 알아 듣긴 어려웠지만, 확실히 들렸다.


「카나코 님……?」
「사나에, 잘 결심했다. 스와코가 이러저러 말한 게 있을 게다만, 여기까지 온 걸 보아 각오는 해둔 거겠지. 그 녀석은 그저 너를 돌볼 책임을 견뎌내지 못했을 뿐이야」
「……카나코, 무슨 소리야?」
「이제 와서, 사나에 네가 바라는 대로 살라는 무책임한 소린 하지 않으마. 네 힘과 신앙은, 틀림없이 신을 도울 수 있다. 네 자신의 생각대로, 사명을 다하거라. 그렇다면 네 헌신에 신이 감사하며, 보답할 것이다」
「무슨 ​말​씀​이​세​요​…​…​카​나​코​ 님, 이쪽으로 와주세요」
「그래. 술식을 기동하는데 네 협력이 필요해. 꾸물거리지 말고 얼른 도와」
「사나에가 왔으니, 내 힘은 필요 없다」


 카나코의 대답에, 스와코와 사나에의 안색이 창백해졌다.
 옆에서 대화를 지켜보고 있던 선대마저, 불안한 기운을 느끼곤 눈썹을 찡그렸다.
 카나코가 무슨 말을 하고 있는 것인지, 저도 모르게 이해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환상향으로 가지 않는다」


 카나코의 대답에, 그곳에 소용돌이치던 불안한 기운이 명확한 형태로 굳어졌다.


「……웃기지 마」


 스와코가 잔뜩 낮아진 목소리를 흘린다.


「이제 와서, 무슨 헛소리야! 사나에가 와줬잖아! 그런데, 이제 와서……!」


 이제 와서──.
 정말로 그럴까?
 마음속 어딘가에서, 카나코의 이 선택을 이미 예상하고 있던 건 아닐까.
 지금 느끼고 있는 불합리함의 뒤로, 묘하게 납득하고 있는 건 아닐까.
 카나코가 저렇게 생각하는 것도 어쩔 수 없지──라고 이해하는 자신이 있었다.


「왜 그러세요, 카나코 님!」


 사나에의 비통한 물음에, 카나코는 웃었다.
 웃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어느새, 카나코의 모습이 확실하게 보인다.
 폭풍우는 그치지 않았다. 하지만, 카나코의 주변엔 비도 바람도 존재치 않았다.
 무언가가 비바람을 막고 있는 것이 아니다.
 마치, 비가 카나코를 피해가는 듯이, 비정상적인 궤적을 남기며 땅으로 떨어져내렸다.


「……아까까지의 나였다면, 분명 납득할 수 있었을 터다」


 카나코의 미소는 공허하면서도 자조적이었다.


「환상향으로 가는 것 자체엔 아무 의문도 없었다. 아니, 가기를 거부할 이유가 없었지」
「처음부터 그리 내키진 않았단 말로 들리네」
「그래, 맞아」
「변덕스런 녀석이네. 그저 흐르는 대로 흘러가기만 하다가 마지막 순간이 돼서야 불평을 늘어놓다니, 한심해」
「그래, 그 말대로다. 한심하군」


 거의 서로를 노려보듯이, 두 신은 시선을 주고받았다.


「내 자신이, 한심하고, 비참해서……그런 자신으로부터 눈을 돌려왔다」
「이제 와서 나약한 소린──」
「넌 그런 소릴 할 기력조차 내버렸을 텐데. 그렇지 않나, 스와코!」


 꾸짖듯이 외치는 카나코의 반응에, 스와코는 한순간 뒷걸음질 쳤다.
 마음속 어딘가에서, 카나코의 말에 동의하는 자신이 있었다.
 그 또 다른 자신이, 카나코의 규탄을 받아들이고 있었다.


「포기한 거다, 너는. 덕분에 편해지지 않았나? 자긴 깔끔하게 포기할 때를 잘 골랐다고 생각하며, 발버둥치는 나를 꼴불견이라고 여겼잖아?」
「──」
「나를 보는 네 눈에선, 그런 빛이 엿보였다」
「……불쾌하게 느꼈다면, 사과할게. 하지만, 인정할 건 인정해야 해. 이제, 이 세계에 신은 필요치 않아」
「그러니 어딘지도 모를 시골구석에 처박혀 숨죽이고 살잔 말이냐. 여생이 얼마 남지 않은 인간처럼」
「그게 불만스러워?」
「너는 어떻지? 환상향에 가서, 뭘 할 거냐? 무언가를 이루겠단 의욕은 있나? 아니, 이 세계에서는 이룰 수 없었던, 새로운 목표라도 있는 거야?」
「그건──」
「똑같다. 장소가 다를 뿐이지. 너야말로 흘러가기만 할 뿐이다. 환상향으로 가지 못해도 너는 전혀 개의치 않았을 터다. 무책임했던 거지. 그렇기에 사나에의 힘을 빌리려 들지 않았고, 떨쳐내려 애썼던 거다. 너는 이곳에서 사라질 셈이었던 거야!」


 사나에는 무심코 스와코를 바라봤다.
 스와코는 입술을 악물며, 떨고 있었다.
 카나코가 제멋대로 한 말에, 어찌 반박해야할지 알 수 없었다.
 적중이었던 것이다.


「환상향에 이주해서, 그곳에서 있으나마나한 신앙을 모으며 부질없는 목숨을 이어가는 삶 따위, 나는 견딜 수 없다. 확실히 이제 와서 말하기엔 늦었을지도 모르지. 하지만, 나는 간신히 결정했다. 스와코, 너와 무기력한 여생을 함께하는 건 사절이다. 동반자살이나 마찬가지야」
​「​사​나​에​가​…​…​있​잖​아​」​


 스와코는 필사적으로 소리를 짜내기 시작했다.


「우리들을 따라 와주는 이 아이를 위해, 이 아이의 신으로서 계속 함께해줄 순 없는 거야?」
「인간의 부모처럼 말이냐?」


 카나코는 비웃음으로 답했다.


「네겐 사나에와 피로 이어져 있지. 정을 품은 이유는 될 터다」
「넌 아니란 소리야?」
「나는, 신이다」
「그게 뭐 어쨌는데? 풍축인 사나에를, 가족으로 여길 수 없단 소리잖아!」
「인간들의 부모처럼 행동할 순 없다. 내가 사나에에게 보여줄 수 있는 건, 오로지 신으로서의 모습 뿐이야」


 문득, 사나에는 깨달았다.
 폭풍우가 약해져가고 있다.
 그토록 격렬하던 비바람이, 어느새 가라앉아간다.
 하지만, 그렇다 치기엔 기묘한 감각이었다.
 그저 단순히 폭풍우가 잦아들기 시작한 것이 아니다.
 여전히, 하늘에는 달빛 한 줄기조차 내리쬐지 못할 만큼 두꺼운 먹구름으로 가득 메워져 있었구, 가끔가다 번개까지 번뜩였다.
 그곳에서 쏟아져 내려야 할 비와 바람──흉포한 자연의 힘만이, 지상이 아닌 다른 곳으로 사라져가고 있다.
 그렇다면, 대체 어디로──.


「──잠깐, 카나코」


 스와코 또한 이변일 눈치챈 듯했다.
 전율하는 몸을 억누르며, 침을 삼켰다.


「너, 어쩔 셈이야?」
「난 최후의 순간까지, 무언가를 이루고 죽겠다」


 대답하는 카나코의 눈에서, 장렬한 각오의 빛이 번뜩였다.


「인간이 신을 잊고 떠나보낼 생각이라면──」


 한순간, 모든 소리가 사라졌다.


「──떠오르게 해주마」


 폭음.
 그리고 충격.
 말 그대로, 폭풍전야와도 같은 고요.
 억지로 만들어진 정적은, 마치 부푼 풍선이 터져나가듯 엄청난 소리를 내며 갈라졌다.
 갑작스레 발생한 충격파와도 같은 돌풍을 몸으로 맞으며, 스와코 일행은 건물 속으로 튕겨나갔다.
 잠잠해지던 폭풍우가, 카나코를 중심으로 다시금 날뛰는 것만 같았다.
 하늘 위의 구름에서 쏟아지는 것이 아니다. 어딘가에서 불어오는지조차 가늠할 수 없는 바람과 비가 몰아치고, 바로 옆에 벼락이 내리친다.
 한순간의 광란은, 언제 그랬냐는 듯 다시금 잠잠해졌다.


「카나코!」


 스와코가 바람에 뜯겨나간 덧문을 넘어 다시 바깥을 보았을 때엔, 이미 카나코의 모습은 사라져 있었다.




 마치 폭풍우가 떠난 뒤의 현장 같았다.
 아니, 실제로 폭풍우가 떠나간 것이다.


 거짓말처럼 비바람이 잠잠해진 바깥을 바라보며, 스와코는 멍하니 서 있었다.
 물에 잠긴 땅만이 폭풍우가 지나갔음을 증명했다.
 이슬비조차 내릴 기미가 없고, 바람은 아직 불고 있지만 아까 그것과 비교하자면 미풍이나 다름없었다.


 스와코는, 카나코가 서 있던 곳을 멍하니 바라봤다.
 갑작스레, 무언가를 알아챈 듯 머리 위를 향해 시선을 돌린 스와코.
 밤하늘을 가린 먹구름이, 기묘한 움직임을 보이며 바람을 타고 움직이고 있었다.


「……너」


 스와코가 고개를 돌렸다.
 아까 몰아친 돌풍에서 사토리를 지키고 있던 선대를, 격렬한 눈빛으로 노려본다.


「너──!」


 저도 모르게 나오려던 말을 필사적으로 이를 악물어 삼켰다.


 ──너 때문이야.


 그렇게 말하기 전에, 제정신을 차린 것이다.
 불합리한 트집이란 생각에 말을 끊은 건 아니다.
 신이 인간에게 책임을 덮어씌우는 일은, 있어선 안 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런 생각을 아주 지울 순 없었다.


 ──어째서.
 ──어째서 이제 와, 카나코 앞에 나타난 거야.
 ──어째서, 더 일찍도, 더 늦게도 아닌, 지금 와서 나타난 거야.
 ──네가 있어서, 카나코가 과거를 되새기게 만들었어.
 ──네 신앙이, 카나코를 다시금 자신을 신이라 자각하게 만들었어.
 ──어째서, 더 빨리 나타나서 카나코를 지탱해주지 않은 거야.
 ──어째서, 모든 일이 끝난 뒤에 새로운 인연이 되어주지 않은 거야.


 스와코 본인조차 제대로 다잡지 못한 혼란스러운 속내가 눈을 통해 드러났다.
 갑작스런 분노의 대상이 된 선대는 영문도 모른 채 멍하니 있을 뿐이다.


 결국, 엉뚱한 화풀이.
 신의 불합리함을 인간의 탓으로 여기다니, 저잣거리 농담으로도 못 써먹을 이야기다.
 스와코는 고개를 돌리고 주먹을 움켜쥐었다.


「스와코 님, 카나코 님은 대체 어디로……?」


 사나에의 질문에, 스와코는 괴로운 표정을 지으며 답했다.


「인간이야」
「예?」
「어디가 됐든 인간이 많은 곳. 마을……아니, 그 태도를 보아하니 대도시의 도심까지 갈 생각이겠지」
「이 폭풍이 잠잠해 진 거랑 관계가 있는 건가요?」
「잠잠해진 게 아니야. 카나코는 『건乾』──하늘을 자아내고, 비바람을 다루는 힘을 가진 신. 그 녀석은, 그 폭풍과 하나가 돼서 여길 떠난 거야」


 옆에서 듣고 있던 사나에와 선대가 눈을 부릅떴다.
 하늘을 ​움​직​인​다​니​─​─​상​상​을​ 초월하는 신의 힘을 느낀 것이다.
 현세에서 신앙과 함께 힘을 잃었다는 말이 믿겨지지 않을 정도였다.


「하지만, 폭풍은 영원한 게 아니야」


 스와코가 말했다.


「애당초, 그 폭풍은 새벽쯤 돼서 사라질 거였어. 폭풍이 잦아들면, 카나코도 힘이 다하겠지」
「그게, 무슨──」
「죽을 셈인 거야, 그 녀석은」


 다시금, 말문이 막힌다.
 기분 나쁜 침묵이 내려앉는다.
 폭풍이 그치고, 아까까지 울리던 시끄러운 소음에서 해방된 신사는 그저 고요함만이 가득했다. 불안할 정도의 정적.
 사나에도 선대도, 한마디 말조차 꺼낼 수 없었다. 청아는 애초부터 대화에 끼어들 생각은 없는 듯했다.
 카나코의 행방은 알았다.


 그럼, 이제 어떻게 해야 하는가?
 뭘 해야 하는 거지?
 둘은 가만히 스와코의 말을 기다렸다.


「──미안, 사나에」


 고개를 수그리고 생각에 빠져 있던 스와코가, 천천히 얼굴을 들었다.


「이렇게 된 건, 전부 내가 야무지지 못했기 때문이야. 네 가족도, 네 신도, 되어주지 못할 것 같아」


 비장한 각오가 서린 말.


「스와코 님, 무슨……?」
「난, 카나코를 막으러 갈게」
「막는다니요?」
「저 녀석은, 남은 힘이 바닥날 때까지 날뛸 생각이야. 미쳐버린 신은 재앙이나 다름 없어. 가만 놔둔다면, 분명 수많은 인간이 죽게 돼」
「어째서, 그런……」
「알겠지? 사나에 넌 이대로 술식을 발동시켜서, 거기 있는 무녀들이랑 같이 환상향으로 가. 준비는 전부 끝났어. 사나에 혼자서라도 가능할 거야」
「……무리에요」
「나는 함께 있어 줄 수 없어. 신으로서의 책임이 있으니까. 그 책임을 다하러 나설 때야」
「무리에요! 저 혼자선──!」
「해야 돼, 혼자서! 너는, 우리가 없더라도 환상향에서 살아갈 수 있는 이유를 찾아냈잖아!」


 사나에는 당장이라도 터져 나올 것 같은 울음을 견디며 이를 악물었다.


 갑작스런 이별.
 모든 게 다, 잘 될 것이라 생각했다.
 그건 스와코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사태가 변하고 말았다.
 사나에도 각오는 하고 있었다.
 예전에 스와코가 말한 대로, 자신의 의지로, 환상향으로 가겠단 결의를 굳혔다.


 ──하지만.
 이건 해도 너무해.
 이렇게 갑작스런 이별이라니, 너무 불합리하잖아──.


「……진심으로, 미안해」


 한탄하고 싶은 건 스와코도 마찬가지였다.
 그런 마음을 견뎌내듯, 모자를 깊게 눌러써 챙을 내렸다.


 발을 돌린다.
 향하는 곳은 바깥.
 지금 가면, 다신 돌아오지 않는다.


 그 사실을 직감하면서도, 사나에는 제자리에서 손을 뻗을 수밖에 없었다.
 저 등을 붙잡아, 스와코를 멈춰 세울 수 없다.
 허공을 맴도는 손이, 조금씩 떨림을 더했다.
 치켜든 손끝으로, 스와코의 뒷모습이 점점 멀어져간다.


「잠시 기다려 주십시오」


 그런 사나에의 갈등을 알아챈 듯, 선대가 사나에를 대신하여 스와코를 불러세웠다.


「저도 함께 가겠습니다」
「왜?」


 스와코는 짧게 물었다.


「카나코 님을 막는 데 힘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무슨 이유로?」
「──」
「어째서, 네가 그렇게 나서는 거야?」
「그건……카나코 님을 무사히 데리고 돌아올 수 있다면, 모두 만족할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즉, 너는 카나코와 나, 그리고 사나에 셋이 함께 환상향으로 갈 수 있도록 돕겠단 소리구나」
「네」
「그건, 어째서?」
「제가, 그러고 싶기 때문입니다」
「나랑 같이 갔다간, 손쓰지 못하게 될 거야, 저 요괴」
​「​─​─​사​토​리​가​!​?​」​
「아무리 여유가 있다지만, 아무리 그래도 새벽까지 시간이 될 것 같진 않아. 늦장 부릴 틈은 없다고 생각해. 한시라도 빨리 원래 살아가던 곳으로 돌아가지 않았다간, 정말로 죽어」
「──」
「저 요괴의 생명까지 걸어가면서, 우릴 도울 이유가 너한텐 있어?」


 선대는 대답할 수 없었다.
 단단하게 굳어 움직이지 않는 표정 아래로, 한눈에 알아볼 수 있을 정도로 갈등이 거세게 회오리친다.
 하지만, 결국 선대는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 움직이지 않았다.
 사나에처럼, 입을 굳게 다물고, 제자리에 서 있을 뿐이었다.
 스와코는 그런 선대의 모습을 꾸짖지 않고, 오히려 묘하게 안심했단 미소를 지었다.


「환상향에 도착하면, 사나에를 잘 돌봐줘. 우리한테 진 빚은 그걸로 갚는 셈 치고. 고마웠어」


 스와코는 남은 힘을 짜내 그렇게 말하곤, 바깥을 향해 뛰어들었다.
 말 그대로, 박살난 덧문을 넘어 땅으로 뛰어든 것이다.
 물에 젖어 질퍽거리긴 하겠지만, 착지할 장소는 분명 딱딱한 땅바닥일 터.
 그러나 스와코의 두 다리는 땅을 밟지 않고, 마치 물속으로 빠지듯 빨려들어갔다.
 눈 깜짝할 새에 온몸이 땅 속으로 묻히고, 스와코의 모습이 사라진다.
 그녀도 가버린 것이다.
 남겨진 사나에와 선대는, 신이 사라진 신사에서 그저 멍하니 제자리를 지키고 있을 뿐이었다.









 카나코 님을 몰아세운 건──나인가.


 스와코 님이 무슨 말을 하고 싶었는지 알 수 있었다.
 카나코 님과 나눈 대화와, 내게 보인 눈빛으로 이해하게 된 것이다.
 구체적으로 내 무엇이 카나코 님을 자극했는지는 알 방도가 없다. 하지만, 내게 있는 무언가가 카나코 님의 마음을 움직이게 만들었다. 그것도 아주 나쁜 방향으로.
 태도일까, 시선일까, 그게 아니면 말투가 좋지 않았던 것일ᄁᆞ.


 ──아니.
 분명, 이 지식 때문이다.
 내 안에 있는, 이 세계와 이곳에 사는 생명들에 대한 선입관이 이 사태를 일으킨 것이다.
 이 세계의 누구 앞에서도, 내 시선은 무엇보다도 우상에 대한 인식을 우선하여 상대를 본다.


「──코치야 사나에」


 스와코 님이 사라지고 잠시 후, 난 입을 열었다.
 정신을 차린 사나에가 나를 바라본다.


「정말 미안하다만, 시간이 촉박하다. 술식의 기동을 부탁하마」


 가로 뉘인 사토리의 곁으로 다가가, 감적을 죽이고 말했다.
 형용키 힘든 꺼림칙함에, 사나에의 얼굴을 바로 볼 수 없었다.


「아, 알겠어요……」


 스와코 님을 쫓을 순 없었다.
 스와코 님의 말이 맞다.
 그녀를 돕는 길을 선택하면, 사토리가 위험에 처한다.
 사토리의 생명을 저울에 달다니, 내게 그런 ​짓​은​─​─​불​가​능​하​다​.​


「괜찮으신 건가요?」


 내 갈등을 알아챘다는 듯, 청아가 물었다.
 방금 대화를 나눌 때에도 전혀 흥미를 보이지 않고 철저히 방관을 고수하던 그녀가, 왜 이제 와서 내게 저런 질문을 건넸는지는 알 수 없다.
 일행 중에서도 유일하다시피 이 사태를 심각히 여기지 않던 그녀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신을 설득하는 일은 어려울지도 모르지만, 힘으로 굴복시키는 것이라면 어떻게든 가능할지도 몰라요. 지금 중요한 건, 환상향으로 데려가는 거니까요. 사나에 씨가 술식을 사용할 수 있다면, 억지로라도 이곳으로 데려온 다음, 술식을 기동하기만 하면 될 거예요」
「……내 힘을 너무 과대평가하는군. 신의 힘에 이길 수 있을 리 만무할 터다」
「그럴까요? 그런 건 해봐야지 아는 거잖아요」
「도박을 걸 순 없다」
「사토리 님이 걱정돼서 그러시는 거죠?」
「그래」
「하지만, 모든 게 다 잘 풀릴 가능성도 있어요」
「무리하게 나설 수 있는 상황이 아니지 않나. 사토리의 목숨이 위태롭다」
「확실히 곤란한 상황이죠. 하지만, 선대. 안전한 길을 고르고, 나머진 포기해도 괜찮으신 건가요? 당신이 남들보다 뛰어난 힘을 가진 이유는, 남들이 하지 못하는 것을 이루기 위해서라 생각하진 않으세요?」


 청아의 설득은, 그야말로 악마의 유혹 같았다.
 아니, 그게 아니면 망설이는 날 올바른 대답으로 이끌어주는 것일까.
 진심을 말하자면, 스와코 님도, 카나코 님도 도와드리고 싶다. 누가 뭐라 하던 사나에의 곁에서 두 신이 함께하는 것이 좋은 일이니까.
 하지만, 그게 사토리의 생명을 저울질할 만큼 중요한 이유일까──?


「중요한 이유에요」


 내 자문에 대답한 것은, 내 자신이 아닌 사토리였다.


「사토리! 정신이 든 거냐!」
「글쎄요? 의식이 있는 것 같기도 하고, 없는 것 같기도 한 애매한 상태였긴 하지만……일단, 이야기는 대충 들었어요」


 거의 속삭이는 것처럼 들려오는, 쉰 목소리.
 코끝이 닿을 정도로 얼굴을 들이대고 입가에 귀를 가져다대야 겨우 들릴 정도로 작은 목소리였다.
 하지만, 대답 자체는 확실히 하고 있다.
 무심코 가슴에 품듯 두 손을 꽉 붙잡은 나를 사토리가 누운 채 올려다봤다.


「저는 괜찮답니다. 자, 고민하지 말고 얼른 가보세요」
「……말도 안 되는 소리 마라」
「당신이 한 짓에 말려들어가는 일은 익숙해졌어요. 정말 어쩔 도리가 없는 사람이네요. 나중에 때려줄 거예요」
「사토리, 난 지금 진지하게 말하고 있다!」
「그럼, 아까까진 진지하지 않았던 건가요?」


 나는 무심코 말문이 막혔다.


「그렇지 않잖아요. 당신은 언제, 어느 때든 진지했어요. 장난삼아 남들과 사귀려들지 않았죠」


 사토리는 허약한 미소를 지으며 말을 이었다.


「전 마음을 읽는 요괴에요. 진심을 숨겨봤자 소용없답니다」


 ──나도 모른다.
 내 자신조차, 가끔가다 스스로를 알 수 없게 될 때가 있다.
 아니, 스스로이기에 알지 못한다.
 애당초, 이 세상에 진실로 스스로를 아는 자는 있는 것일까.
 모르기에, 지금까지 진심을 다해 힘껏 살아왔다.
 하지만, 이번엔 그게 화근이 되고 말았다.


 내 탓이다.
 내 머릿속에 『동방 프로젝트의 캐릭터. 야사카 카나코』라는 지식이 없었다면, 이 지경이 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내가 내 자신이 아니었다면, 쓸모없는 문제는 생기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뭘 기준으로 『쓸모』를 가르는 거죠? 그거야말로, 게임에서나 나올 이야기에요」


 하지만, 이 세계에 있어서 난──.


「전 제 나름대로 이 세계를 다양한 관점에서 고찰해왔어요. 당신이 들어봤자, 어차피 어려워서 이해하지 못하겠지만요.
 그러다 딱 한 가지, 결론이 나오게 됐어요. 만약, 이 세계가 게임속의 ​세​계​라​도​─​─​우​리​들​이​ 평면 위에 그려진 창조물이라 하더라도──전 아무래도 좋다, 는 사실을요」


 사토리가 단정 짓는다.


「왜냐하면, 당신이 있기 때문이에요. 당신이 너무 당신 멋대로 제 주변을 휘젓고 다니며, 지저 깊은 곳에서 멈춰져 있던 제 세계를 움직여줬어요. 이런 듣도 보도 못한 이야기가 이미 정해져 있던 일이라곤, 도저히 상상할 수 없는걸요」


 ……사토리.


「자기가 가진 전생의 기억이, 눈앞의 현실을 가리는 필터가 되고 마는 그 고뇌는 알아요.
 하지만, 그렇기에 당신은 눈앞의 상대를 현실로 존중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나서온 거예요. 당신은 확실히 이 세계에서 살아가고 있어요. 그러니까, 당신의 생각대로 행동하며, 인연을 만들어 가세요. 저와의 만남이 그랬던 것처럼」


 내가, 생각하는……대로.


「……음, 사려가 얕은 점은 환영할 수 없지만. 당신이 바보 같단 것쯤은 이미 단념한 지 오래에요」


 그렇게, 볼썽사납다는 시선으로 나를 비웃는 사토리는, 쇠약해져 있긴 했지만 평소와 똑같아 보였다.
 내 손을, 사토리가 맞잡아오는 감촉이 느껴졌다.
 불안해질 정도로 허약했지만, 확실히 알 수 있었다.
 마치 날 응원하고 있는 것만 같았다.


「응원하고 있어요. 정말이지, 한심한 사람이네요. 보통 이런 갈등엔 스스로 대답을 내려야 하는 법이잖아요, 소설의 주인공처럼. 사토리 요괴한테 마음을 읽혀서 대답을 내놓다니, 이런 사기가 어딨어요. 치사하긴」


 하핫, 그러게 말이야.


「……하지만, 당신이 지금까지 열심히 살아왔다는 건 알고 있으니까. 도와주고 싶어졌어요」


 사토리는 조금 부끄럽다는 듯 웃고는,


「친구니까요」


 그렇게, 말해줬다.
 ──고마워.
 ​그​리​고​─​─​결​정​했​어​,​ 사토리.


「사토리」
「네」
「다녀오마」
「부디, 적당히 노력하고 오세요」
「여기서 기다려다오. 반드시 돌아오겠다」
「이 세계가 무너지더라도, 당신과 함께할게요」


 체력을 소진한 듯, 사토리가 눈꺼풀을 닫았다.
 아직 의식이 남았는지 어떤지도 알 수 없다.
 사토리의 하얗게 질린 얼굴을 보고 있자니, 불안감이 나를 덮친다.


 아니……이건, 공포다.
 나는 사토리를 잃는 것이 죽을 만큼 무섭다.
 나 홀로 있을 때엔 이런 공포를 느끼지 못했다.
 어떤 위험한 상황에 처하더라도, 최후엔 자기 자신이 죽으면 끝인 이야기였으니까.


 하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다.
 내 행동과 그 결과로 인해, 사토리가 죽을지도 모른다.
 그게 견딜 수 없을 만큼 무섭다.
 그 무엇보다도 무겁다.


 하지만──.


「스와코 님을 쫓는다」


 나는 망설임을 깔끔하게 떨쳐내듯이, 스스로의 결의를 입으로 내뱉었다.


「카나코 님을 막는다」


 사나에가 놀랍단 표정으로 나를 바라봤다.
 청아가 만족스럽게 미소 짓는다.
 하지만 지금은 남의 바람을 위해서가 아닌, 그 무엇보다 내 자신의 의지로──!


「나는, 가겠다」


 후회는, 결과가 나온 뒤에 해도 된다.
 나는 계속 부여잡고 있던 사토리의 손을, 조심스레 놓았다.
 끝까지 맞닿아 있던 검지가 아쉽다는 듯 서로에게 결별을 고한다.


「사나에」
「아, 네」
「내가 두 분을 데리고 돌아올 때까지, 술식의 준비를 마치고 기다려다오」
「……네! 두 분을, 잘 부탁드려요!」


 나는 끄덕였다.
 그런데, 결의는 됐다 쳐도 아직 문제가 산더미만큼 쌓였다.
 우선, 어떻게 스와코 님들을 따라잡지──?


「선대. 아무리 당신이라도 달려서 쫓다간 늦을 거예요」
「청아?」
「폭풍과 하나가 됐다는 야사카 카나코의 이동속도와 거리. 그야말로 태풍을 쫓는 격이죠」
「그런가……」
「그러니, 제가 힘을 빌려드리도록 할게요」
「……그래도 괜찮은 건가?」


 나는 무심코 되물었다.
 그녀의 생각은, 아직도 잘 알 수 없다.
 눈앞의 사태에 방관을 고수하는 건, 우리들과는 달리 환상향으로 가는 것에 그렇게 크게 집착하지 않기 때문일지도 모르겠지만, 그렇다면 진정한 목적이 무엇인지, 나로선 짐작할 수 없었다.
 내 행동을 재촉한 이유가 결코 카나코 님들을 돕기 위해서임이 아니란 건 알지만──.


「처음부터 말씀드렸잖아요. 저, 당신이 무엇을 이룰지 보고 싶어요. 그걸 위한 도움은 아끼지 않을 생각이고요」


 아이처럼 천진난만하게 웃는 청아.
 ……뭐, 상관없나.
 그녀의 도움에 팔자 피는 건 이쪽이니까.


「얼른, 제게 명령해주세요. 괜찮아요, 실망시켜드리지 않을 테니까요」
「알았다. 생각해놓은 방도는 있나?」
「물론이죠」
「그렇다면 도와다오, 청아」
「아앙~♥, 선대한테 부탁받아 버렸어요! ……살짝 쾌・감」


 ……미안, 지금은 개그 칠 여유가 없거든.
 진지하게 해주세요, 청아 씨이이!


「그 폭풍의 경로는 예측할 수 있어요. 괜찮아요, 충분히 따라잡을 수 있답니다. 그러니 『출진』 하기 전에──이걸」


 그렇게 말하며, 청아는 한 벌의 옷을 꺼내들었다.
 낯익은 홍백의 색조가 눈에 들어온다.


「역시, 싸움에 나설 때엔 거기 알맞은 차림을 해야죠」


 그것은, 이 세계에 온 뒤로 몸에 걸치지 않은 나의 무녀복이었다.









 몽롱해진 의식 속에서, 사토리는 생각했다.


 ──이 세계는 무언가 애매하다.


 이 세계가 『동방 프로젝트』라는 게임을 기반으로 하여 만들어진 세계가 아닐까 하는 의심을, 결코 부정할 수 없다.
 바깥세계에 온 뒤로, 환상향에선 알고 있을 리 없는 것에 대해 골몰히 생각한다.
 현실 위에 성립된 세계임에도, 너무나 조화롭지 못한 요소가 가득하다.
 반대로, 선대의 기억에 있을 법한 세계가, 끝없이 주도면밀한 이론 위에 세워져 있다.
 현실을 규명하니, 점점 더 애매한 환상이 되어 흩어지고.
 환상을 규명하니, 점점 더 강고한 현실이 되어 뭉친다.
 이 세계의 애매함은, 책에서 초점이 잡히지 않는 부분을 문장 한 줄로 간단히 기록해놓은 것 같은 느낌이다.


 ──그렇다면, 이야기의 주역으로서 가장 무거운 운명을 짊어지고 있는 것은, 분명.


 스스로가 살아갈 수만 있다면, 이 세계의 진실 따윈 아무래도 좋았다.
 만약 정해진 운명이 있다고 한들, 그렇게 불만스럽지도 않다.
 돌아갈 집이 있고, 친구가 함께하는 지금의 일상이 너무나 만족스럽다.
 일부러 운명을 거스를 이유는 없다.
 하지만.


 ──이 세계가 하나의 극장에 불과하고, 그녀가 이야기를 만들어나가기 위한 무대 위의 소품이나 배우에 불과하다 한다면.


​「​적​어​도​…​…​당​신​에​게​,​ 후회가 남지 않을 자유로운 선택을……」


 절실한 마음이 담긴 그 말은, 너무나도 허약하여, 누구에게도 들릴 일 없이 사라져갔다.









 ──그날 밤, 스와시에 거주하는 사람들 중 일부가 불현 듯 깨달았다.


 심야까지 깨어 있던 사람.
 아니면, 자다가 깨어난 사람.
 그들은, 갑작스레 일어난 폭풍이, 일어났을 때처럼 갑작스레 그친 것을 깨닫고, 무심코 밖을 내다보았다.
 처음, 그 눈에 비친 것은 평소에 자주 보던 것들이었다.
 격렬한 비에 흠뻑 젖고 거센 바람에 헤져있긴 했지만, 항상 봐온 마을의 풍경, 항상 봐온 산들과 스와 호수의 모습이 틀림없었다.
 이윽고, 누군가는 깨달았다.
 그 위에 펼쳐진 하늘의 비정상을.


「뭐야, 저게……」


 누군가가, 혹은 모두가, 멍하니 중얼거렸다.
 거짓말처럼 갑작스레 그쳐버린 비가 아까까지 분명히 내리고 있었음을 증명하는 듯이, 밤하늘에는 짙은 비구름이 가득했다.
 하지만, 그 구름의 형태가, 움직임이, 분명히 이상하다.
 스와시의 온 하늘을 가릴 정도로 거대한 먹구름.
 그것이 크기를 유지한 채, 꼬리를 물 듯 길게 늘어나고 있었다.
 올려다보는 시민들 모두가 이해할 수 없었다. 비유하자면 『검은 항적운』이라고 표현하는 것이 가장 알기 쉬울지도 모른다.


 ──무언가가, 구름을 끌고 날고 있다.


 그 『무언가』의 궤적을 구름이 따르며 점점 더 가늘고, 길게 뻗어나간다.
 곧지 않고, 꿈틀거리듯 꾸불꾸불 이어진 그 불규칙한 궤적은, 마치 하늘을 기어가는 거대한 뱀처럼 보였다.
 먹구름을 몸으로 삼은 뱀.
 그 뱀의 몸에선, 커다란 천둥소리와 함께 벼락이 자신을 과시하고 있었다.
 뱀의 머리가, 산의 끝자락, 지평선 너머로 달린다.


 ──이거, 이상 기후인가.
 ──설마, 신이 변덕이라도 부리는 건가.


 사람들의 공포와 불안감이 섞여들었다.
 그 혼란의 중심을, 이번엔 땅속의 무언가가 꿰뚫고 사라졌다.


「으악! 이번엔 또 뭐야!」
「지진이라도 난 건가!?」


 하늘의 이상함을 잇고 일어난 것은, 땅의 비정상이었다.
 갑작스레, 땅이 흔들린 것이다.
 하지만, 그것 또한 단순한 지진이라 여기기엔 불가사의한 점이 많았다.
 흔들린 것은 단 한순간 뿐. 말 그대로 지나쳐가듯 지진은 금방 다스려졌다.
 아니──말 그대로 『지나쳐간』 것이다.


 개인으로선 파악할 수 없는 사건. 기계가 뽑아낸 계측 결과를 본 자들만이, 그 비과학적인 현상을 조금이나마 파악할 수 있을 것이다.
 지진의 진원은, 스와시를 횡단하듯 이동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것』이 향하는 곳은, 하늘의 『무언가』가 향하는 곳과 같은 방향이었다.


 하늘을 나는 무언가와 이를 쫓는 땅속을 지나는 무언가.
 둘 다, 엄청난 속도였다.
 인간의 지혜를 뛰어넘은 현상이자, 존재였다.


 그것들이 향하는 곳은, 스와시를 둘러싸는 산들을 너머 있는 곳──보다 많은 인간이 살아가고, 보다 고도의 문명이 발달한 도시.
 그 중심이었다.




역자후기

요즘 선대록 갱신이 자주 되네요. 슬슬 목숨의 위기가 느껴집니다.
그나저나 이거 사토리 히로인력이;;;; 이제 이 작품에서 나온 어떤 히로인보다 가장 진히로인의 향기가 느껴졌어요.

케이네 고백씬도 메인히로인 자리는 꿰찰 만한 물건이었는데 사토리는 그냥 다 꺼져라 이것들아, 내가 온리 원, 넘버 원이다. 이러는 것 같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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