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일담 - 생존자들의 소소한 일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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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사람들이 공감하는 이야기겠지만, 사람과 사람이 친해지는 것은 매우 정교한 일이고, 동시에 시간이 걸리는 일이기도 하다.
가장 중요한 것은 첫인상. 아무리 사람은 외모보다 내면이 더 중요하니, 그런 이야기를 해봤자 결국 그 사람의 인상을 결정하는 것은 첫만남의 느낌일것이다. 그렇게 서로가 서로의 모습을 감정하고, 상대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어떠한 꿍꿍이를 가지고 자신에게 접근하는지 의심하며, 계속되는 만남과 대화를 통해 그 의심을 조금씩 줄여나간다. 그것은 처음 보는 사람이든, 아니면 얼마 보지 않은 사람이든 마찬가지일 것이다.
그리고 첫만남의 기억이 최악이라면, 당연히 그 사람의 이미지는 그렇게 굳어버려 바꾸기가 정말로 힘들게 되어버린다.
"…………"
그리고 그것은 아이템의 멤버. 하마즈라 시아게도 마찬가지였다.
지금 자신의 눈 앞에 있는 남자에게 가지고 있는 최악의 첫인상을, 어떻게든 바꾸려고 해도 바꿔지지 않는 것이다.
결국 하마즈라는 몇번이나 말하려다가 참은 그 말을, 입에 담고 말았다.
"……근데, 어째서 네녀석이 여기 있는거지?"
"앙?"
하마즈라에게 있어 '첫 만남에서 자신을 죽이려고 했던' 남자. 학원도시에서 가장 강력하다는 7명의 레벨 5(초능력자)중, 6위를 담당하고 있는 페이커는 무슨 소리를 하냐는듯 어이가 없다는 듯이 대답했다.
"내가 여기 있어서 안될 이유라도 있냐?"
"그럼 당연하지! 왜 네녀석이 우리가 자주 오는 패밀리 레스토랑에서! 우리들이랑 같이 밥을 먹고 있는건데!!?"
그것은 확실히 이상한 상황이었다. 그리고 더욱 어이가 없는것은, 하마즈라를 제외한 다른 아이템의 멤버들은 첫 만남때 하마즈라와 마찬가지로 자신들의 목숨을 노리려고 했던 페이커의 난입을 그다지 신경쓰지 않는듯한 분위기였다. 그 이상한 분위기에 자기 혼자 무언가를 잘못 알고 있는 건가, 그런 착각까지 하고 있던 하마즈라는 '헉!' 하고 과장되게 놀라더니,
"알았어! 알았다고! 다른 능력자의 능력을 사용할 수 있는 네녀석이 정신계 능력을 사용한거구나! 이 비열한 자식!!"
하마즈라는 그대로 자리에서 벅차고 일어나, 그 오른주먹에 힘을 주고 당장이라도 페이커의 얼굴을 날려버릴 기세로 소리를 질렀다. 그리고 그 행동은 당연히 패밀리 레스토랑 내에서도 눈에 띄었으며, 다른 아이템의 멤버 전원은 그 이목이 집중되는것이 불편한 것인지, 타키츠보 부터 차례대로 입을 열었다.
"아무리 상대가 레벨 5(초능력자)라도, '무언가의 간섭을 했는지' 자체는 눈치챌 수 있어. 페이커는 아무런 능력도 사용하지 않았어 하마즈라"
"타키츠보!!?"
"완전 시끄러우니까 조용히좀 해요 바보즈라"
"키누하타!!?"
"맞아 멍청아. 원숭이처럼 날뛰지 말고, 겸허히 용서하는 방법도 배우도록 해"
"무기노가 이상한 소리를 하고 있어!!?"
하마즈라는 마치 혼자서 이세계에 떨어진 고등학생 같은 느낌을 받으며 계속해서 혼란스러워했다. 그리고 키누하타의 옆자리. 즉, 하마즈라의 정면에 앉아 있는 페이커는 하마즈라의 눈을 똑바로 쳐다보며 피식, 하고 웃더니,
"아 진짜 속좁네, 옛날일은 좀 잊어주라"
"너같으면 잊을 수 있을것 같냐!! 레벨 5(초능력자)가 레벨 0(무능력자)의 목숨을 진지하게 노리는 상황을!!?"
"아 미안, 됐지?"
"열불터지겠네!!"
갸악- 갸악- 하면서 입에서 불을 뿜을 기세로 발을 동동거리며 뛰어다니는 하마즈라.
그리고 그런 꼴을 더이상 못보겠는지 한손으로 이마를 부여잡고 앓는 소리를 내던 키누하타는 정말로 말하기가 싫었다는듯, 내키지 않는다는 듯이 이야기를 꺼냈다.
"다른 멤버들한테는 페이커의 사정에 대해서 설명했어요"
그러자 무기노가 끄덕끄덕. 고개를 위아래로 저으며 덧붙였다.
"자신이 속해있던 어둠이야말로 진정 어둠의 나락이라고 생각했었는데, 그보다 훨씬 깊은 어둠이 존재하리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어. 아무리 나라도 상상하기도 끔찍한 그 과거를 가지고 저만한 성격을 가지고 있다는건 거의 기적이지. 그러니까 하마즈라가 참아"
이번에는 타키츠보가 고개를 끄덕이며,
"…응. 무척이나 불쌍한 사람. 동정의 의미로라도, 하마즈라는 용서해야해"
"도대체 무슨 속사정이길래!!?"
그러자 페이커는 싱글벙글 거리던 미소를 싹 지운채, 시선만으로 사람을 얼려죽일것 같은 싸늘한 눈빛으로 대답했다.
"알고싶어?"
"………"
하마즈라는 그 시선에 압도당했다.
자신이 아는한 어둠의 가장 깊은곳에 있을 무기노가, 그 성격 나쁜 무기노가 저렇게 말할 정도면 대체 어떠한 과거를 가지고 있는 것일까.
결국 하마즈라는 아무런 대답도 하지 못한채, 분한 표정으로 제 자리에 앉는 수 밖에 없었다. 결국 가슴 한구석에 무언가 찜찜한 감정을 가진채로, 하마즈라는 옆으로 시선을 돌렸다.
창가 너머에는 많은 사람들이 지나가고 있었다. 평범한 학생들과 연인부터 시작해서 바쁘게 뛰어가는 선생들. 하마즈라는 그런 평범한 장소에서 시선을 돌려, 저쪽 끝에 보이는 뒷골목에서 서로 떠들며 들어가는 양아치 같은 무리들을 보았다.
(확실히……)
그 총괄 이사장. 아레이스타가 사리지던 날, 도저히 인간이라고 부를 수 없는 존재가 되었던 페이커는 어떠한 방법으로 아레이스타를 소멸시켰다. 그것은 하마즈라에게는 말할 필요도 없고, 말한다 하더라도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하지만 멍청한 하마즈라도 확실하게 알수있는 것은, 아레이스타가 사라진 후 오야후네 모나카가 새로운 이사장이 되자 학원도시에 만연하던 어둠이 기적같이 사라지고 있다는 것이었다. 그 증거로, 평범한 배달차로 위장한듯한 봉고차도, 창문을 썬팅한 밴도 보이지 않았다. 아무리 말단이라고 하더라도 한때 어둠의 일원이었던 하마즈라가 그런것을 눈치채지 못할 리는 없는 것이다.
결국, 하마즈라는 멍청한 표정으로 시선을 돌린채 페이커에게 말했다.
"뭐, 알려주지 않아도 상관은 없는데. 왜 다른 녀석들한테는 말하고 나한테는 말하지 않은건데?"
키누하타는 그런 하마즈라의 행동에 안심했는지, 이마에 있는 땀을 닦으며 '후…'하고 작게 한숨을 쉬었다. 그러자 키누하타의 옆자리에 앉아있는 페이커는 키누하타가 한숨을 쉬자마자,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하마즈라에게 대답했다.
"너에게는 내가 직접 말하고 싶었어"
"…뭘? 꿈에 나올만한 끔찍한 이야기라면 사절인데"
거기서 페이커는 꾸벅. 하고, 테이블에 머리가 부딪힐 기세로 고개를 숙였다.
"미안하다"
"어, 어?"
무척이나 당황한 하마즈라는 순간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이해하지 못했다.
"말도 안되는 이기적인 이유로, 아이템이나 너한테 하지 말아야 할 일을 했어. 거기에 대해서, 미안하다"
진심으로 사과하는 페이커의 마음을, 다른 이도 아닌 하마즈라가 공감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한때, 자신이 속한 스킬아웃을 지키기 위해. 거래를 받아 미사카 미스즈라는 여성을 죽이려고 했었던 하마즈라 시아게.
'아이템이나 너한테 하지 말아야 할 일을 했어'
하마즈라는 당연하게도, 페이커의 모습에서 자신을 발견할 수 있었다.
'돌이킬 수 없는 일을, 저지를뻔 했어'
페이커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자신이 진심으로 반성하고, 자신을 막아준 카미조 토우마에게 감사를 느끼는것 처럼.
페이커는 아이템과 하마즈라에게 진심으로 미안해 하고 있고, 자신을 막아준 키누하타에게 감사를 느낄것이다.
"뭐… 그러면 뭐, 어쩔 수 없지"
그렇다면, 용서하지 않을 수가 없다.
페이커의 속사정이 무엇인지는 모르겠지만, 저 한마디로 용서할 수 있었다.
그렇게 하마즈라가 페이커의 사과를 받고, 슬슬 모든 인원이 음식을 다 먹은것을 확인했을 쯔음, 무기노가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자, 오늘은 이만 해산. 더러운 커플들은 닭살돋는 애정행각이나 하다 들어가라고"
바이바이, 라며 무기노는 뒤도 돌아보지 않은채 손을 흔들며 가게 밖으로 나가려고 했다.
그리고 그 뒷모습에 대고, 하마즈라가 말했다.
"너는 어디로 갈건데?"
"나는 일"
"……어떤?"
딸랑, 하고 가게의 문을 열던 무기노의 몸이 딱. 하고 멈췄다.
무기노는 아주 잠깐동안 그렇게 있더니, 하마즈라와 아이템이 있는 곳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씨익ㅡ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과학의 발전을 위해, 내 능력을 사용하는 일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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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누하타 사이아이와 페이커는 무지하게 추운 날씨의 1월의 길거리를 나란히 걷고 있었다.
무기노의 변덕으로 생각보다 아이템의 모임이 일찍 끝났기에, 할일이 없는 것이다. 결국 그대로 무엇을 할까- 고민을 하던 키누하타는 자신이 즐겨가던 B급 영화를 전문으로 상영하는 영화관에 가려고 했지만, 아무래도 오늘은 주인이 사정이 있는지 문을 열지 않았다.
결국, 그렇게 '자신이 있을 장소'로 페이커와 함께 돌아가는 길이었다.
"뭐야, 벌써 끝났어?"
하고, 옆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네 뭐,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됐네요"
키누하타가 고개를 돌리지도 않은채 그렇게 대답하자, 탁탁. 하는 발소리가 나더니 빠른 발걸음으로 목소리의 주인이 페이커의 옆으로 뛰어왔다.
페이커는 그 소녀. 키누하타나 자신과 같이, 그 지옥같은 실험에서 살아남은 소녀에게 향해 말했다.
"그럼 너야말로 요즘 뭐 그리 바쁜데? 쿠로요루"
"신경 꺼. 멍청아"
"우옷!?"
쿠로요루는 페이커에게 독설을 내뱉으며, 페이커의 안쪽 다리를 걷어찼다. 그러자 주머니에 손을 넣고 걷고 있던 페이커는 순간적으로 앞으로 고꾸라질뻔했지만, 탁월한 균형감각을 살린 자세로 다리를 쭉 뻗어 넘어지지 않았다. 그 포즈가 또 걸작이지만 말이다.
"이자식. 한번 해볼래!?"
"오냐, 오늘이야말로 그 빌어먹을 대갈통에 내 창을 쳐박아주마!!"
키누하타는 갸ㅡ갸ㅡ 하는 느낌으로 투닥거리는 두 사람을 보며 한숨을 쉬었다.
쿠로요루는 자신의 봄버랜스(질소폭창)로, 키누하타의 오펜스 아머(질소장갑)를 두르고 있는 페이커를 쏘는 것이다. 당연히 뚫릴리가 없다.
그런, 이제 와서는 진심이라고는 눈꼽마저 느껴지지 않는 장난을 보면서 '안티스킬만 안오게 해줘요'라고 중얼거렸다.
그렇게 '오오, 이번건 조금 아픈데!? 진짜 뚫리겠어!?', '나라고 계속 제자리에만 있는줄 아냐 멍청아!?', '뻥인데', '이 빌어먹을 놈이!!' 라며 한참을 장난을 치던 페이커는, 무언가가 떠올랐는지 쿠로요루의 질소의 창을 한손으로 잡고 대충 하늘을 향해 던지며 말했다.
"너, 또 전쟁 준비라도 하고 있는 거냐?"
쿠로요루 우미도리는 기본적으로 전쟁광이다.
암흑의 5월 계획으로 인한 약간의 인격개조. 그리고 어렸을때부터 너무 오랬동안 어둠속에 있었기에, 전투의 카타르시스를 포기하지 못하는 것이다.
자신조차 이기지 못했던 그 학원도시 최강의 레벨 5(초능력자)에게 덤빌 정도로, 무모하다고 불릴 정도의 집착이었다.
그런 걱정스러운 페이커의 음색을 눈치챘는지, 쿠로요루는 쳇. 하고 혀를 차며 대답했다.
"그럴리가 있냐? 나도 그러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지만, 그 빌어먹을 새로운 이사장이 노골적으로 학원도시내의 어둠을 지우고 있다고. 능력이 없는 성인들이라면 모를까, 우리같은 학생들은 좁은 방에서 인성교육에 관련된 프로그램을 212개나 한다더라. 그건 고문이야 고문. 차라리 죽는게 더 낫겠다"
"그러고 보니 그 1위는 오야후네의 보디가드짓을 하고 있지. 어때 쿠로요루? 합법적이면서 너의 성격에 맞는 일이라면, 그 정도 밖에 없는것 같은데"
"다른 사람의 부하로 있는건 질색이야. 그것보다, 신경 끄라고 했지 멍청아"
"우오오오!!?"
쿠로요루는 이번에야말로 진심으로 페이커가 넘어지도록 다리를 걸었다. 그리고 주머니에 손을 넣고 있던 페이커는 화려한 자세로 넘어지다가ㅡ
"우와, 진짜 추하게 넘어질뻔했네
"칫"
슝, 하고, 그 자리로 텔레포트 했다. 무언가 쿠로요루는 분해보이는 표정으로 다시 페이커의 다리를 걸려고 했지만, 페이커는 능숙하게 피해냈다.
"어라?"
그런 페이커와 쿠로요루보다 살짝 앞에서 걷던 키누하타의 발걸음이 멈췄다.
그것에 무슨 일인가, 하고 페이커와 쿠로요루가 시선을 앞으로 향하니,
"……"
그곳엔, 학원도시 최강의 레벨 5(초능력자)가 서 있었다. 거의 항상 부록으로 딸려있는 두명의 클론과 같이 말이다.
"……"
"……"
"………"
서로 그 시선이 마주치고, 페이커와 액셀러레이터. 키누하타는 침묵했다.
아는척을 해야하는가, 그대로 무시하고 가야하는가,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키누하타는, 다시한번 페이커가 상처를 입을까봐 걱정하고 있었다. 그 날의 악몽이 재연될까봐, 불안해 하고 있었다.
"풉…………"
그리고 그런 기분나쁜 침묵을, 액셀러레이터의 옆에 있는 큰쪽 클론이 부서뜨렸다.
미사카 워스트는 서로 불편한 표정을 짓고 있는 액셀러레이터와 페이커를 번갈아 쳐다보더니,
"오리지널이랑 클론이, 둘다 로리콘이라니, 세상에……… 미사카. 학원도시의 어둠같은것보다 로리콘부터 먼저 박멸해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헉, 당신 로리콘이었어!? 하고 미사카는 미사카는 자신의 정조에 대해 걱정해보기도 하고!!"
물론, 거의 곧바로 라고 해도 좋을 정도의 스피드로 퍼억, 하고 미사카 워스트의 정수리에 액셀러레이터의 주먹이 꽃혔다. 그대로 눈물을 찔끔 흘린 미사카 워스트는 '우우… 두고봐…' 같은 소리를 했지만, 액셀러레이터는 신경쓰지 않았다.
"억!?"
그리고 그런 액셀러레이터와 클론들의 바보짓을 본 쿠로요루는, 살짝 자신의 앞에 있는 페이커의 등을 손바닥으로 철썩! 때리고 말했다.
"신경쓰지 마. 멍청아"
"……"
그리고 먼저. 스윽, 하고 액셀러레이터가 움직였다. 미사카 워스트와 라스트 오더는 액셀러레이터를 뒤따랐고, 이내 가만히 서 있는 페이커를 가로질렀다.
"어이, 오리지널!!!"
그러자 페이커는 빙글, 하고 몸을 돌려 5M 정도 걸어간 액셀러레이터에게 소리쳤다.
그 목소리에 멈칫. 하고, 학원도시 최강의 괴물의 몸이 멈췄다.
그것을 확인한 페이커는 다시한번 있는 힘껏 소리쳤다.
"오리지널이라고 뻐기지 말라고! 너에게 라스트 오더나 미사카 워스트가 '미사카 미코토의 클론'이 아니라 그 각자의 의미를 갖듯이, 나도 그저 나라는 존재일 뿐이야!! 너 따위 조금도 신경쓰지 않으니까!!"
"………"
거기에, 액셀러레이터는 대답하지 않는다. 그대로 걸어가려던 액셀러레이터지만, 옆에 있는 라스트 오더와 미사카 워스트는 페이커에게 있는 힘껏 손을 흔들며 '나중에 다시 보자구~', '다음에 또 봐! 하고 미사카는 미사카는 새로운 친구에게 인사를 해보기도 하고!' 라면서 소리를 쳤기에, 마지못해 행동을 취했다.
액셀러레이터는 그저 고개도 돌리지 않은채 살짝 손을 들어준후, 그대로 자신의 길을 걸어갔다.
"후련해?"
"응. 완전 상쾌하다"
볼이 상기된 상태로 약간 숨을 헐떡이고 있는 페이커에게 키누하타가 묻자, 페이커는 엄청나게 뿌듯한 얼굴로 그렇게 대답했다.
"난 또 가볼데가 있으니까"
갈랫길이 나타나자, 쿠로요루는 그렇게 말하며 반대쪽 길로 사라졌다.
페이커와 키누하타는 그런 쿠로요루를 배웅한뒤, 다시 자신들이 가던 길로 발을 움직였다.
그렇게 5분 정도 걸었을까, 적어도 학생이 살고 있지는 않을만한 조금은 호화스러운 맨션이 나타났다.
그리고 지금 이곳에, 페이커와 키누하타. 그리고 쿠로요루는 셋이서 살고 있다. 그렇다고, 딱히 대놓고 셋이서 동거를 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아레이스타가 사라진 날 이후, 양 손이 크게 다친 키누하타를 페이커가 간호하고, 그런 페이커와 키누하타를 놀리는 형태로 쿠로요루가 출입하다 보니, 정신을 차렸을땐 이미 셋이서 살고 있는 형태가 되었다. 그리고 키누하타와 페이커. 그리고 쿠로요루는 마치 원래부터 그랬다는 것 처럼, 깨닫지 못했다는 것 처럼, 아무도 그것에 대해 일언반구도 꺼내지 않았다.
단 한마디로 부서질 달콤한 꿈과 같은 환상을, 그 아무도 자의로 부술 생각은 없는 것이다.
그렇게, 서로 아무말도 하지 않은채로 키누하타와 페이커는 맨션의 안으로 들어왔다. 하지만 텔레포트(순간이동) 능력자인 페이커가 있다고 편하게 건물 밖에서 방 안으로 텔레포트를 한것이 아니다. 키누하타는 주머니에서 꺼낸 열쇠를 그 작은 손으로 집어, 소중한 것을 만지듯이 문을 열었다. 그런 아무래도 상관없는 행동은 '이곳이 내가 있을 장소'라는 것을, 다시한번 각인시켜 주는 매우 소중한 행위였다.
맨션은 세명이 살기에도 조금은 넓은 정도의 크기였다. 그리고 그 중에서도 특히나 넓은 거실로 들어가자, 푹신해 보이는 고양이 집 안에서 두 마리의 새끼 고양이가 꾸벅꾸벅 졸고 있었다. 온몸의 털이 새까만 검은 고양이와, 눈부시 하얀 털을 가지고 있는 하얀 고양이. 이 두마리의 고양이는 페이커가 아무말 없이 사온 것이지만, 말을 하지 않아도 그것이 고양이를 좋아하지만 그것에 대해 티를 내기 싫어하는 쿠로요루를 위해 가지고 왔다는 것쯤은 키누하타는 물론 쿠로요루 본인도 잘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완전 춥네요…"
"그러게, 언제쯤 따뜻해지려나"
키누하타는 주인이 왔는데도 꾸벅꾸벅 졸고 있는 고양이들을 한번 훑어본 후, 두꺼운 외투를 벗자마자 거실에 있는 따뜻한 코타츠의 안으로 들어갔다. 그러자 페이커는 냉장고에서 차가운 귤을 몇개 꺼내 바구니에 넣어 코타츠 위에 두고, 자신도 입고 있던 외투를 벗고 코타츠의 반대편으로 들어갔다.
"아직도 추워?"
"네,네? 네, 추워요"
그렇게 귤을 먹으면서 TV를 본지 5분 정도 지났을까, 전심을 감싸는 따뜻함에 키누하타도 꾸벅꾸벅 졸고 있자, 페이커가 말했다.
아직도 반쯤 꿈 속에 있는 키누하타는 페이커의 말에 자신도 모르게 그렇게 대답했다.
"그럼"
페이커는 바닥에 앉은채로 몸을 움직여, 코타츠의 반대편으로 움직였다.
아직도 반쯤 꿈 속에 있는 키누하타는 자신에게 접근하는 페이커의 기척을 느끼지 못했고, 이내 푹신한 기분이 들었다.
"음냐아…?"
뭔가 따뜻한 기분에, 키누하타가 살짝 고개를 올리자,
"뭐야, 졸고 있었냐?"
바로 정면에, 페이커의 얼굴이 보였다.
"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우오오오오오오오!? 무, 무슨 짓이야!?"
확! 하고 정신이 각성한 키누하타는 페이커의 턱에 오펜스 아머(질소장갑)을 두른 주먹을 내질렀다. 그리고 그것을 기가 막힌 속도로 고개를 돌려 피한 페이커가 그렇게 소리치자, 키누하타는 그제서야 자신의 모습을 확인했다.
"무, 무, 무무무무무무무무무무!!"
자신은 페이커의 다리 위에 앉아 있는 것이었다.
책상다리를 한 페이커는 자신의 다리 위에 키누하타를 앉히고, 자신의 양팔로 그 앞을 감싸고 있었다.
"무, 무슨짓이에요 당신이야 말로!!?"
"아니 뭐, 춥다길래"
페이커는 그렇게 대답하며, 옆쪽으로 시선을 옮겼다. 왠지 그 그리운듯한 시선 때문에 화를 내던 키누하타도 자신도 모르게 페이커의 시선을 따라가자,
"아…"
그곳엔, 아직도 추운지 두 마리의 새끼 고양이가 서로의 몸을 껴안은 상태로 깊은 잠에 빠져 있었다.
"저렇게 하면 따뜻하겠다 싶어서"
그 말에, 키누하타는 확! 하고 얼굴에 열이 올랐다.
확실히 엄청나게 포근하고, 엄청나게 따듯해지긴 했지만. 이미 아까의 졸음은 완전히 날아간 상태였다.
"너희들한테, 항상 고마워"
"…뭐가요?"
"너희가 없었으면 나는 옛날 옛적에 망가졌을것 같거든. 뭐, 쿠로요루도 지금 아슬아슬한 상태이긴 하지만… 그 녀석, 펫샵이라도 열 생각인것 같더라. 요즘 그렇게 다니는게, 애완동물 센터를 돌면서 이것저것 배우고 있더라고. 그렇다면, 더 이상 걱정할 필요는 없겠지"
(이, 이러면 화를 내기도 뭐하잖아요…)
움찔. 하고 페이커의 품 안에서 몸을 웅크린 키누하타는 그대로 시선을 아래로 향했다. 그러자, 큰편이라고는 하지 못하겠지만 자신보다는 큰 페이커의 양 손이 보였다.
(그렇게 남자답다고는 못하겠지만… 그래도 가슴도 꽤 넓고… 손도 크네요…)
"왜, 어디 불편해?"
"아, 아니에요! 완전 아무것도 아니에요!"
페이커의 품 안에서 꼼지락대는 자신을 걱정하는듯한 목소리에, 키누하타는 양 손바닥을 파닥이며 대답했다.
그리고 너무 액션이 컸다는 것에 다시 얼굴이 빨개져서 몸을 움츠려들자, 페이커가 말했다.
"난 이러고 있으면 불편해서 못하니까, 귤이나 까주라"
"………"
키누하타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은채, 팔을 뻗어 바구니에서 귤을 꺼내서 까기 시작했다. 그렇게 첫번째 귤의 껍질을 다 깠을때쯤,
"아아"
하고, 페이커가 입을 벌렸다.
그러자 키누하타는 피식, 하고 웃으며,
"만년은 일러요"
"에, 에에~!"
라면서, 자신의 입에 반으로 자른 귤을 한입에 넣었다.
키누하타는 우물우물 먹고 있던 귤을 삼키고, 손에 들고 있는 반으로 잘린 귤을 다시 반으로 자르더니,
"입이나 벌려요 페이커"
페이커의 입에 쏙, 하고 던져줬다.
키누하타는 그리고 그것을 우물우물 먹고 있는 페이커를 보고 훈훈한 미소를 살짝 짓고, 그 나머지 귤을 자신의 입으로 가져갔다.
"키누하타"
"왜요?"
갑자기 자신을 부르는 진지한 목소리에, 키누하타는 페이커의 품안에 있는 상태로 고개를 위로 올려 페이커의 얼굴을 쳐다보며 대답했다. 뭐, 역시나 페이커의 얼굴이 코앞에 있을거라고는 알고 있었지만, 그 진지한 음색에 속은것이다. 그리고 그 동시에,
쪽. 하고, 자신의 입술에 페이커의 입술이 겹쳐져왔다.
"!!?!!?!?!?!?!!!?!?!?!?!?!?!!??????!?!!?!?!!!?!?!?!?!?!?!!!!?!!!!!!?????!???????!!!!?!!?"
퍼엉! 하고, 키누하타의 머릿속이 백지화됐다. 키누하타는 페이커의 품 안에서 파닥파닥 움직였지만 페이커의 몸을 떨칠수가 없었다.
능력으로 생각한다면 분명 힘은 자신이 더 강할텐데도 왠지 전신에서 나릇한 기분이 느껴지며,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그렇게 10초 정도. 순간이기도 하고, 영원같기도 한 시간이 지나자, 페이커는 조심스럽게 자신의 입술을 떼고, 홍당무가 된 키누하타의 얼굴을 내려다보며 말했다.
"어때, 키스란거 꽤나 달콤하지? 귤맛이긴 하지만"
"…………………………!"
그렇게 한참을 페이커의 품 안에서 파닥파닥 움직이던 키누하타는 이내 포기했는지, 몸을 배배 꼬면서 고개를 숙였다. 그리고 아주 조심스럽게,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무슨, 생각이에요…?"
"으음……"
그러자 페이커는 자신도 고개를 올려, 아무것도 없는 하얀 천장을 올려다봤다. 그렇게 무언가 깊은 생각을 하는척 했지만, 페이커 본인도 엄청나게 부끄러워 하고 있다는 것을, 키누하타는 자신이 앉아있는 페이커의 몸에서 느낄 수 있었다.
"내가 두번 다시 돌아올 수 없을때, 나한테 소리쳐줬잖아. 목숨을 걸고, 말려줬잖아"
페이커는 말한다.
그토록 자신이 가지고 싶었던 '주체'
'나' 라는, '내'가 인정할 수 있는 '나'라는 '자신'.
"멍청한 나는, 내가 생각해도 더 이상 있을 수 없는 멍청이라, 너희들이 그렇게 소리쳐줘도 알지 못했어"
해답은, 무척이나 가까이 있었다.
바로 자신의 옆에. 언제나, 자신을 걱정해주며 조언을 해줬던 소녀들.
그 해답을 찾을때 까지, 얼마나 오랜 시간동안 방황했던가.
"너가 나에게 했던 말. 나는 듣지 못했지만. 그래도 알수있어. 기억할 수 있어"
페이커는 말한다.
자신이라는 주체를 찾고 나서, 진정으로 독립한 페이커가 처음으로 행한 가장 의미있는, 자신만의 선택.
"그것에 대한, 나의 대답이야"
"페이커……"
키누하타는 말없이, 고개를 숙였다.
이미 가슴은 진짜로 폭발하지 않을까. 의심이 들정도로 뛰고 있고, 무언가 정신계 능력자의 환상이 아닐까, 그런 생각도 들지만. 고개를 숙인 키누하타는 자신의 앞에 있는, 자신보다 커다란 손을 잡았다. 그 손에서 느껴지는 따뜻한 온기에, 이것이 현실이라고 느끼며 그 환상에서 벗어나지 않으려고 했다.
그러자, 딸칵. 하고, 현관문이 열리는 소리가 났다.
"아아, 더럽게 춥네. 응? 너희 뭐하고 있냐?"
"하,하하하하하하 그, 글쎄요"
"그, 그러게. 오늘은 내가 저녁당번이었나?"
"아, 아니 오늘은 쿠로요루로 알고 있는데요!?"
"뭐, 뭐 괜찮으니까 내가 하지 뭐!"
쿠로요루는 그렇게 당황해 하고 있는 둘을 보면서,
"………너희들 무슨짓 했냐?"
"그럴리가"
"무, 무슨 소리를 하는걸까"
쿠로요루는 잠시동안 그 둘을 지긋히 노려보더니,
"뭐, 상관없나. 나 대신 저녁 열심히 해줘"
"오,오우 물론이지! 걱정마라! 오늘은 양식? 양식으로 괜찮지!?"
"나, 나도 도와줄게요 페이커!"
그렇게 벌떡 자리에서 일어난 페이커와 키누하타는 조심스럽게 부엌으로 움직였다.
"자, 잠깐만. 일단 당근을 씻어야 할거 아니에요!"
"아 맞다. 잠깐 깜빡했어. 어이, 손 조심해. 그러다가 베일라"
"……내 능력 완전 까먹고 있죠?"
"아 맞다"
그런 왠지, 듣고 있으면 염통이 쫄깃해지는 소리를 들으며, 쿠로요루는 부글부글 거리는 가슴을 붙잡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그 부엌으로 뛰쳐가며 소리쳤다.
"아 진짜, 짜증나니까 나도 도울래!!"
아무리 어둠의 가장 깊숙한 곳에 빠졌더라도,
현실에 절망하고, 과거에 절망하여, 모든것이 부서진적이 있더라도,
지금도, 그리고 앞으로도 서로의 상처를 보다듬어 줄 수 있는 소중한 존재만 있다면.
조금만 잘못해도 깨질것 같은 꿈과 같은 현실은, 영원히 계속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