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가을의 실루엣
길었던 여름방학도 끝나, 다시금 학교생활이 시작됐다. 학교가 별로 싫은 건 아니지만 아무래도 계속 쉬었다보니 개학 후 한동안 좀 나른한 느낌인 건 어쩔 수 없겠지.
그런 조금 노곤한 분위기의 방과후, 무슨 말을 들은 것도 아닌데 교실에 남아서 빈둥거리고 있었는데.
"너 말야, 그건 어떻게 생각해도 데이트잖아. 것보다, 사귀고 있는 걸로 염장질 하는 걸로밖에 안 들려."
"음―, 역시 그렇게 생각해?"
코바야시의 말을 듣고 유키는 신음소리를 냈다.
여름방학 중에 미나코 씨와 있었던 일을 간단하게 이야기하고 감상을 요구한 결과가 이거였다.
"뭐야, 여름방학 중에 그런 만남을 만들어서 여친이 생겼다니, 못 들었다고."
"야, 얌마. 미나코 씨는 아직 딱히 여친이라거나 그런 건 아니라고."
"헤에, 미나코 쨩이라고 하는 구나. 저기, 사진같은 거 없어?"
"쨩 붙여서 부르지 마, 아무리 그래도 선배니까."
"에, 뭐야, 연상이야? 멋진데, 유키치. 역시 누나 속성이었나."
이런. 아까부터 말실수만 계속하고 있다.
애써서 이름 같은 건 덮어두고 이야기를 했었는데, 전부 의미가 없어져 버렸다.
"아, 이게 그 미나코 씨 아니니?"
"아, 아리스, 어느새!"
멈춰세울 틈도 없이 아리스는 유키의 학생수첩에 끼워져 있었던 스티커 사진을 뺏어 들었다. 코바야시도 그 사진을 바라본다.
"우와, 유키치도 참, 완전 러브러브잖아!"
"진짜네, 안겨붙어 있어! 게다가 꽤 귀엽잖아!"
"야, 돌려줘!"
아리스의 손에서 스티커사진을 되찾는다.
그건 여름방학 중에 미나코 씨에게 반쯤 억지로 떠밀려 찍은 거였지만, 확실히 둘의 표정이나 포즈만 보면 사이 좋은 커플로밖에 안 보이겠지.
"젠장, 유키치만 좋겠네. 좋은 일 생기고."
"그런 거 아니라니까."
라고 말은 했지만, 사실 미나코 씨와는 그 뒤에도 두 번쯤 만났고, 그중에 한 번은 저번 주말이었다. 총 4번 만난게 되지만, 무서운 부분은 그 중 한 번도 약속하고 만난 적은 없다는 사실이었다. 전부 우연히 만나서, 그 뒤에 미나코 씨의 페이스에 휘둘리는게 매번 있는 패턴이다.
결국 코바야시와 아리스한테 놀림당하기만 해서, 이야기 안 할걸 그랬다고 생각하면서 교실을 떠났다.
적당히 셋이서 이야기하면서 교문으로 향하는데, 왠지 평소랑 상태가 달랐다. 교문 근처에 사람들이 잔뜩 많다고 할까, 묘한 분위기가 주변에 감돈다고 할까.
코가야시랑 잠시 마주본 뒤 일단 걸음을 옮기는 중, 그 원인을 깨달았다.
'엣, 저건……?'
그 모습을 정확히 확인하기 전에, 상대쪽이 유키의 모습을 인식했다.
"앗, 유키 군―!"
그 여성은 수많은 하나데라 학원 남학생들이 보고 있는 앞에서 크게 소리치곤, 유키를 향해 팔을 붕붕 흔들었다. 그러자 학생들의 시선이 일제히 유키에게 모였다. 그 중에는 살의같은 것도 섞여있었던 것 같다.
"미, 미나코 씨?!"
빠른 걸음으로 미나코 씨에게 다가간다. 코바야시와 아리스가 흥미진진한 표정으로 바로 뒤를 따라오는 게 마음에 안 든다.
"이, 이런 곳에서 무슨 일인가요?"
주위의 눈길을 신경쓰면서 작은 소리로 물어보자.
"에에, 그, 이걸……."
가방에서 비닐봉지를 꺼내곤, 유키에게 건네려 한다.
"이건?"
"저번에 유키 군의 집에서 빌린 셔츠. 제대로 세탁해 뒀으니까. 보통 그, 안 가지고 있을 때 만나니까, 여기면 확실하려나 싶어서."
주위가 술렁거리기 시작했다. 분명 뭔가 이상한 오해를 하고 있겠지. 그것도 그럴게, 집에서 셔츠를 빌렸다면 무슨 일인가 싶을 거다.
"자, 잠깐, 미나코 씨. 에에, 그건."
"그, 얼굴이나 머리카락까지 질퍽질퍽 더러워졌었잖아. 내가 입었던 셔츠까지 더러워져서, 그 때 빌린 셔츠."
우와, 왜 또 쓸데없이 오해를 받을 것 같은 말을!
예상대로, 주위는 아까보다 더 술렁거리기 시작했다. 얼굴을 붉히고 있는 사람, 코피가 터진 녀석, 왠지 쪼그려 앉은 녀석, 노골적으로 야한 눈으로 미나코 씨의 몸을 핥듯 쳐다보는 녀석……젠장, 그런 눈으로 미나코 씨의 몸을 보지 마, 거기 너!
"유, 유키치, 너 이미 거기까지 했었냐. 내 손이 닿지 않는 어른의 계단을 올랐을 줄이야!"
"아니, 그런 적 없어!"
하지만 어떻게 말을 하든 이 자리선 오해가 풀릴 것 같지 않다.
"에잇, 미나코 씨, 이쪽!"
"엣?!"
어느정도의 희생을 감수하더라도 지금은 이 자리를 도망치는게 먼저라고 판단한 유키는, 미나코 씨의 손을 잡곤 억지로 끌고 뛰어갔다.
주위를 둘러싸고 있던 관객들에게서 환성이 솟아오른다.
"야―! 유키치! 내일 제대로 설명 하라고―!!"
코바야시의 고함섞인 소리를 뒤로 하며, 유키는 계속 달렸다.
내일은 터무니없는 상황이 될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하면서.
계속 달려, 어느샌가 어딘가의 공원에 도착해서야 걸음을 멈췄다. 주위에 드문드문 사람이 보이긴 하지만, 별로 많진 않다.
"저, 정말, 뭐야, 갑자기 뛰어가곤."
미나코 씨의 숨이 흐트러져 있다. 불만스런 기분을 숨기지 않고 표정에 드러내며 유키를 바라본다.
하지만 불만을 터뜨리고 싶은 건 유키 쪽이었다.
"그건 제가 할 말이에요. 뭔가요, 갑자기 학교까지 와서, 그, 그런 짓을 당하면, 제가 어떻게 될지 모르는 건가요?"
"어떻게 된다니, 어떻게 되는 거니?"
"그러니까, 그. 저랑 미나코 씨의 관계를."
"아아! 그래도, 일단 그런 부분은 고려하고 오긴 했는데……."
"……혹시나, 그 모습 말인가요?"
"응."
그 미나코 씨의 모습이라는 건, 왠지 릴리안의 교복이 아닌 다른 학교의 교복차림이었다. 우선 무엇보다 먼저 눈이 향하는 곳은 회색에 빨강이 섞인 체크무늬 치마. 무릎 위까지 오는 그 치마는 너무 눈에 잘 띈다. 그리고 하얀 반소매 블라우스의 위에 밝은 베이지색 베스트를 입고, 가슴팍에는 약간 흐트러진 크로스타이.
거기에 더해 머리모양. 지금까지 만났을 때는 언제나 머리 뒤에서 모은 포니테일이었지만, 오늘은 긴 머리칼을 머리띠로 정리하고 있다.
"친구한테서 빌린건데, 어때, 어울리지? 꽤 마음에 들어."
"뭐, 뭐어……귀엽긴 한데요."
"에, 뭐, 뭐라고 했어?"
"아, 아니, 아무것도 아니에요!"
이런, 완전히 이상한 말 실수를 해 버린 것 같다. 다행히 미나코 씨에겐 들리지 않았던 모양이지만.
"변장이었나요, 그건……."
뭔가, 단숨에 힘이 빠졌다.
"그래도, 뛰고 나니 더워졌어."
뺨에서 솟는 땀을 손수건으로 훔치곤, 미나코 씨는 천천히 베스트를 벗기 시작했다.
"웃."
그러면 당연히 블라우스 차림이 되는데, 이 계절에는 아무래도 눈에 들어와 버리는 게 하얀 블라우스 위에서도 보이는 속옷 라인. 자주 봤다고까진 하기 힘들지만, 여름이 되면 길에서도 종종 보이는 모습일텐데도 두근거린다. 아무래도 오늘은 파란색인 모양이고……아니, 그게 아니라.
"그래도 미나코 씨, 대체 무슨 소릴 하신 건가요. 그거 분명, 다들 오해했을 텐데……."
"에, 뭐야, 나 뭔가, 오해받을만한 소릴 했었나?"
말했어요, 잔뜩.
하지만 분명 본인은 자각이 전혀 없이 했을 거란 부분이 귀찮은 부분이다. 알고서 이야기 한 거라면, 봐줬으면 싶다.
"뭐, 됐나. 볼일은 마쳤고. 슬슬 가야지."
"어라, 어디 가시는 건가요?"
"에에, 이 뒤에, 학원 있어서."
그렇다면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하면서도, 유키는 뭔가 아쉬운 기분을 느꼈다. 생각해 보면 미나코 씨랑 만나서 아무것도 안 하고 헤어지는 건 이게 처음일지도 모른다.
어쨌든, 유키는 그런 느낌을 받은 자기 자신이 당황스럽게 느껴졌다.
그리고 다음날.
상상했던 대로, 학교에 가자 전교에 유키의 소문이 가득 차 있었다.
그것도 그렇다. 남학교라는 세계서, 그런 눈에 띄는 행동을 했던 거다. 물론 남학교라고 해도 애인이 있는 녀석은 있겠지만, 소수파일 거고. 거기다 유키는 학생회장이라는 입장이고, 미나코 씨는 꽤 미소녀다. 소문이 안 나는 게 이상하다.
재빠르게도 신문부는 임시 교내신문을 만들어서 배포했다. 한 면 가득하게 '학생회장과 수수께끼의 미소녀'라는 타이틀로 사진이 실려 있다. 유키가 미나코 씨의 손을 잡고 달리고 있는 상황에서, 유키가 뒤에 있는 미나코 씨를 바라보고 있는 얼굴도 제대로 찍혔다. 미나코 씨는 앵글이 비스듬하게 잡혀서 얼굴은 거의 나오지 않았긴 하지만, 그게 쓸데없이 미스테리어스한 미소녀스런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다.
기사 내용 중에는 '학생회장과 친밀한 관계인 듯한 수수께끼의 미소녀 X'라고 쓰여있다.
교실에선 아침부터 코바야시나 아리스의 질문공세에 시달려서, 오해를 풀기 위해 열심히 설명했다.
"……라는 거야. 이해 했어?"
"쳇, 뭐야, 재미없어. 아찔한 매혹체험의 감상을 꼭 듣고 싶었는데."
뭐가 아찔해.
"그래도, 어제의 그걸 들었을 때는 분명 그럴 거라고 생각했는데."
아리스가 뺨을 볼그스름하게 붉히고 몸을 비비꼬고 있다.
"그러니까 나는 미나코 씨랑 그런 관계가 아냐. 키스도 아직 한 적 없으니까."
"그렇다는 건, 언젠가 할 예정이구나."
"엣?"
"그런 식으로 들렸는데?"
거기에 좀, 의표를 찔렸다고 할까, 의식의 틈을 들쑤셨다고 할까.
"아니, 그런 건……."
이라고 말하면서, 저도 모르게 고민에 잠긴다.
대체 미나코 씨를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 걸까. 미나코 씨랑 만났을 때를 머릿속에 떠올린다.
행동력이 있다고 하면 듣긴 좋지만, 기세랑 분위기로 뒤는 생각지도 않고 돌격한다. 취재라고 주장하면서 묘한 변장을 하고 스토킹 같은 짓을 하거나, 위험한 곳에 발을 디디다 실패한다. 아무리 봐도 선배로 느껴지진 않고, 같이 있으면 돕는다는 명분으로 휘둘릴 뿐이다.
천연에 틈이 많지만 관찰력같은 건 날카롭고. 언제나 적극적이고, 감정 변화가 커서 그게 바로 겉에 드러날 정도로 알아보기 쉽다.
그리고, 그리고――――
"……아, 이거 혹시나, 어제 미나코 씨한테서 건네받은 봉투 아냐?"
라는 말에 정신을 차린다.
"진짜네. 저기, 정말로 셔츠만 들어 있는거야? 그거 말고 뭔가, 사랑의 메시지같은 건 없으려나."
유키가 생각에 잠기고 있는 사이에 어느샌가 가방 속을 뒤졌는지, 멋대로 안에서 봉투를 끄집어냈다.
"자, 잠깐! 그건 열면 안돼!"
일어나서 소리쳤지만, 이미 때는 늦었다.
코바야시랑 아리스가 봉투 안에 있는 걸 보고 눈을 크게 떴다.
"유, 유키치, 이거 브래지"
"바보, 말하지 마!"
코바야시의 입을 막고 봉투를 뺏는다.
"이, 이건, 저번에, 미나코 씨가 우리집에 놓고 가서……."
어지간히 당황했던 거겠지. 유키는 말 안해도 되는 이야기까지 해 버렸다.
"유키치, 역시 너!"
"아냐, 그러니까 그거 아니라니까!"
정말로, 미나코 씨랑 만난 뒤로는 이런 일이 넘쳐나, 머리를 싸매는 유키였다.
다시금 달아나듯 학교서 나온 유키는, 어제 공원으로 걸음을 향했다. 공원 안에 들어가 목적지를 향하자, 거기에는 이미 그녀가 기다리고 있었다.
"아, 평안하세요, 유키 군."
릴리안에서 흔한 인사를 하곤, 미나코 씨는 미소지었다.
오늘도 어제랑 마찬가지로 다른 학교 교복을 입고 왔지만, 더운 탓인지 조끼는 입지 않았다. 하지만 그 대신에 왠지 안경을 끼고 있다. 분명 도수 없는 안경이겠지만.
유키는 인사를 하며 걸음을 옮겨, 가방 안에서 아까 그 봉투를 꺼낸 뒤 말없이 미나코 씨에게 건넸다.
아무리 미나코상이라도 부끄러운 건지, 말없이 건네받곤 가방 안에 넣었다.
"후우, 미안해, 가져오게 시켜서."
"아니, 뭐어, 괜찮은데요……."
아무리 그래도 반 친구한테 걸렸던 건 덮어 두기로 했다.
"그래도, 역시……어라, 이거, 뭐야?"
미나코 씨는 웅크려 앉곤, 바닥에 놓여있던 종이를 집어들었다. 그건 하나데라의 교내신문이었다. 아무래도 가방에서 꺼냈을 때 같이 떨어져 버린 모양이다.
"에, 이건……나?"
사진을 보고, 미나코 씨가 입을 벌리며 소리쳤다.
"아, 아니, 정말 곤란했다니까요. 미나코 씨가 그런 짓을 하니까, 다들 오해해 버려서."
허둥지둥, 조금 장난스런 말투로 말한다.
유키 입장에선 그리 심각해지지 않았으면 하는 의미도 담아서 한 말이었지만.
"그래……그렇네."
미나코 씨는 맥없이 어깨를 늘어뜨렸다.
"에, 미나코 씨?"
"나 같은 여자애랑 그런 식으로 오해받아 버리면, 유키 군도 싫구나."
"아, 아니, 싫다기보단."
"미안해. 나, 주위에 어떤 폐를 끼칠지 별로 생각도 못하고 행동할 때가 많아서. 그래서, 자주 마미한테도 혼나는데."
"자, 잠깐, 미나코 씨, 오늘은 왜 그러시나요? 그렇게 얌전하게."
"실례야. 나도 미안하다고 느끼면 이렇게도 된다고. 후우, 미안해. 유키 군한테 그런 폐를 끼칠 생각은 없었어. 앞으로는 거리에서 봐도 말 안 걸도록 할 테니까."
"잠시만요, 미나코 씨!"
혼자서 미나코 씨가 멋대로 이야기를 진행해 나가는 걸, 유키는 조금 억지로 막았다.
"딱히, 싫다는 소리 한 적은 없잖아요!"
"엣……?"
미나코 씨는 눈을 크게 떴다.
"에에, 그야, 뭐 분명 이런저런 소리를 듣긴 했지만, 싫은 건 그렇게 주위에서 떠들어대는 거지, 딱히 미나코 씨랑, 그렇다는 게 싫은 건 아니라고 할까, 에에 그 뭐냐, 뭔 소릴 하고 싶은 거지."
"정말, 무슨 소릴 하고 싶은 거니?"
미나코 씨가 눈썹을 찌푸리며 물어봤다.
"그러니까, 요는, 별로 미나코 씨랑 같이 있는 게 싫은 게 아니란 소리예요."
"…………."
"에―, 어라?"
미나코 씨가 뺨에 손을 대곤 유키를 바라보고 있다. 뭔가 이상한 소리를 해 버린 걸까.
하지만, 미나코 씨는 아까 전까지 침울해졌던 분위기를 싹 집어 던지고, 싱긋 웃고는.
"흐응―, 그럼, 어디 놀러 갈까?"
라고 말해왔다.
"어라, 학원은요?"
"오늘은, 땡땡이. 자, 어디 갈까?"
"에, 자, 잠깐 기다려 주세요. 아직 간다고는 한 마디도"
"뭘 투덜대는 거야. 자, 재밌는 게 우리를 기다리고 있어!"
손가락을 세우고 선언하듯 말하곤, 미나코 씨는 유키의 손을 잡고 달린다.
거기에 끌려 유키도 달린다.
앞으로 달리는 미나코 씨의, 체크무늬 미니스커트가 나부껴, 눈부신 허벅지가 눈에 들어온다.
공원에, 초가을의 저녁햇살을 받은 둘의 그림자가 신나게 달리고 있다.
……덧붙여서, 오늘 미나코 씨의 속옷은 눈부신 흰색이었다.
……그리고 그 말을 실수로 흘려 버려서, 거리에 소리가 울려퍼질 정도로 따귀를 얻어맞았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