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다른 나
어머니께서 전화를 오래 하고 계신다.
저녁을 먹고, 거실에서 느긋이 TV같은 걸 보고 있을 시간대. 집은 절이지만 다른 집처럼 TV는 있고, 아버지께선 의외로 속된 방송도 즐겨 보신다. 무엇을 보든 생각할 것도 얻는 것도 많이 있고, 오히려 정해진 것들만 보면 생각이 굳어져 버릴 우려가 있다. 무슨 일이든 생각하기 나름이라고 지당하게 들리는 이야기를 하긴 하지만, 내가 보기엔 단순히 좋아하는 걸 보고 있는 걸로만 보인다.
그래도 나는 아버지의 그런 모습이 싫지 않다. 단지, 내가 아는 사람들 앞에 그런 모습을 내보이는 건 괜히 부끄럽게 느껴지긴 하지만.
"아뇨, 이쪽이야 말로 언제나 감사해요……예, 다음엔 꼭."
어머니는 평소에 그리 전화를 길게 하지 않는 분이시다 보니, 흔치 않은 일로 느껴진다. 길다고 해봐야 15분 정도긴 하지만.
"그렇군요, 예……후후, 그 때는 큰일이었지요."
남의 이야기를 훔쳐듣는 걸 즐기진 않지만, 아무래도 들려버리는 건 어쩔 수 없다. 그런데 이렇게 되면 대체 누구랑 어떤 이야기를 하는 지는 신경 쓰인다. 그렇긴 해도 그걸 계속 신경 쓰고 있을 수도 없고, TV도 마침 딱 흐름이 끊겨서 나는 자기 방으로 돌아가려 자리서 일어났다.
"예……예. 아, 잠깐 시마코."
"예?"
어머니께서 갑자기 부르셨다. 어머니는 송화기를 손으로 누르곤 내 쪽으로 다가왔다.
"자, 이거. 후쿠자와 댁에서 온 전화야."
"예……?"
그 말을 듣고, 머리위에 물음표가 난무한다.
어머니가 말한 이야기가 바로 이해되지 않는다.
"아아, 미안해. 후쿠자와 댁이라곤 해도, 유키 군 쪽이야."
내 태도를 보고 뭔갈 착각한 건지, 어머니는 그런 이야기를 했다. 그리고, 나는 거기서 간신히 상황을 이해했다.
유키 군이, 나에게, 전화를.
"에엣?!"
나는 허둥지둥 어머니쪽으로 달려가서, 전화기를 받아들었다.
"오오, 그 느긋한 시마코가 그렇게 잽싸게 움직이다니……역시 사랑의 힘이란 건 굉장하네."
아버지가 좀 엇나간 소리를 감개 깊은 듯이 주절이고 있지만, 신경쓰고 있을 상황이 아니다.
"아, 저기. 여보세요?"
『아ー, 토도 양, 인가요? 저기, 후쿠자와예요. 후쿠자와 유키예요.』
전화 너머서 들려온 건, 틀림 없이 유키 군의 목소리였다.
그렇다고 하면, 설마 어머니께서 길게 전화했던 상대는 유키 군이었단 소린가. 나한테 온 전화를 받아서 계속 이야기를 했었던 건가. 사실을 깨닫곤, 나는 얼굴이 새빨개졌다.
"저기, 미, 미안해요, 어머니가!"
전화를 손에 들고 꾸벅꾸벅 고개를 숙인다.
『아뇨, 저도 즐거웠으니까요. 하핫, 그리고, 토도 양에 대한 이야기도 많이 들었고…….』
"에, 에엣?! 무, 무슨 소릴 하셨나요, 어머닌?!"
유키 군의 말을 듣고 다시 깜짝 놀라, 얼굴이 더 뜨거워진다.
『그, 그건…….』
꿀꺽 침을 삼킨다.
『으음……마, 말 못해요.』
그 말을 듣고 울고 싶어진다. 대체 어머니는 유키 군에게 어떤 이야기를 한 걸까. 혹시나 어릴 때의 굉장히 낯부끄런 이야기 같은 걸 하진 않았을까. 그토록 오랫동안 이야기를 했으니까, 분명 별별 이야기를 다 할 수 있었을 거다.
"부탁할게요, 무슨 이야기였는지 가르쳐 줘요."
『괘, 괜찮아요, 이상한 소리는 안 했으니까요. 단지……』
"다, 단지?"
『단지, 토도 양은 의외로 장난스럽고 귀엽구나……아, 으앗, 나 무슨 소릴 한 거지. 미안, 지금거 잊어줘!』
잊어달라고 한대도 잊을 수 있을 리가 없다. 나는 수증기가 입에서 솟구칠 것만 같은 느낌으로, 아무것도 못하고 굳어버렸다.
『저기, 그보다 오늘 전화한 용건 이야긴데요.』
"예, 예."
유키 군의 말을 듣고, 간신히 굳은 상태가 풀렸다.
『저번에 아버지께 빌렸던 옷, 세탁 맡긴게 돌아와서 돌려드리려고요. 감사했어요.』
"아아, 아뇨, 감사라니. 알았어요, 그럼 유미 양에게라도 맡겨 주시면"
이라고 내가 말하자,
『아, 아뇨, 가급적 토도 양에게 직접 돌려주고 싶어서.』
유키 군이 당황한 듯 대답했다.
하지만 그러면 좀 폐가 아닐까. 유미 양에게 맡겨 주시면, 같은 릴리안에 다니니 편할 것 같은데.
『역시, 제대로 만나 감사를 하고 싶고요.』
"감사라뇨, 그래야 할 건 오히려 제 쪽이고."
『하여간, 직접 만나서 건네드리고 싶은데……안될까요?』
"아뇨, 알았어요. 그렇게까지 말씀하시면, 예, 그럼 어떡할까요?"
그 뒤로, 언제, 어디서 만날지 약속을 정하고, 그 뒤로 얼마간 잡담을 나눈 뒤 전화를 끊었다.
후ー하고 숨을 내쉰 뒤, 어머니 쪽을 돌아본다.
"정말, 왜 빨리 말 안해준 거야? 왜 어머니가 유키 군하고 그렇게 길게 이야기를 한 거야? 그것보다, 대체 유키 군에게 무슨 이야길 했어?"
내가 추궁하자, 어머니는 조금 쓴웃음을 지었다.
"별 이야기는 안 했어. 시마코를 좀 어필해 준 거야."
"어필이라니……."
말이 막힌다.
내 어머니가 이런 사람이었었나. 어쩜 이렇게 기쁜 듯, 즐거운 듯한 표정을 짓고 있는 걸까.
"그것보다, 또 유키 군이랑 데이트 하는 거니?"
어머니의 말에 순간 대답이 막혔다. 잘 생각해 보면 계속 거실에서 전화를 한 거니, 같은 곳에 있던 아버지와 어머니에겐 혹시나 이야기 내용이 다 들렸었던 건가. 자기가 얼마나 멍청한 짓을 했나 깨닫곤 다시금 얼굴이 새빨개진다.
"별로, 데이트 같은 건 아니에요."
애써 냉정함을 되찾아서 설명한다.
예전에, 우리 집에 들렀을 때 빌린 아버지의 옷을 돌려주겠다는 것 뿐이라고.
"그래도, 유키 군도 참. 유미 양에게 맡겨 주면 될텐데."
별 생각 없이 말을 꺼내자, 이것 보라는 듯 어머니가 고개를 저었다.
"바보구나, 시마코. 그런 거, 너를 만나고 싶은 구실인게 당연하잖니."
"――에?"
눈을 크게 뜬다.
어머니는 크게 한숨을 내쉰다.
"어째서 이렇게 둔한 애로 자라버린 걸까. 유미 양에게 맡겼다간, 시마코를 만날 수 없잖니. 유키 군은 어찌됐든 직접 시마코에게 건네고 싶었던 거겠지. 시마코를 만나려고."
"에……에……?"
어머니의 말을 듣고, 의미를 이해해서 카아아앗 하고 몸이 뜨거워진다.
지금까지 그런 식으로 생각한 적은 없었다.
그래도 설마 유키 군이 정말로 그런 걸 생각해서?
"귀엽잖니. 이유를 찾아서 시마코랑 만나려고 필사적인게. 그치, 아버지?"
그러자 TV를 보고 있던 아버지까지 이야기에 끼어들었다.
"나는 좀 더 직접적으로 이야기 할만한 기백이 있으면 좋겠는데, 뭐 그쯤은 순정 청년인 편이 시마코에게는 좋을지도 모르겠는데."
"정말, 아버지까지……."
불만을 토하려는 말에도 힘이 실리지 않는다.
어째서 이렇게, 아버지도 어머니도 쓸데없이 관여하려고 하는 걸까. 지금까지 이런 적 없었는데.
"그래도, 시마코."
"예?"
"전화를 받은 뒤로, 시마코는 정말 멋진 표정을 짓고 있어."
그런 이야기를 하곤, 아버지와 어머니는 웃는다.
그래도 나는 잘 모르겠다.
어쨌든지, 이렇게 유키 군과 두 번째 약속을 나누게 된 거다.
아버지와 어머니에게 그런 식으로 놀림 받은 탓에, 유키 군과의 약속 날도 이래저래 더 신경쓰인다. 이를테면, 복장이나 머리 모양. 딱히 데이트 같은 건 아니니까 그렇게 신경 쓸 필요는 없을 거로 생각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짐을 건네고 바이바이 하고 끝나진 않을 거고. 일단은 휴일이니까.
그런 것들을 의식하며 약속 장소로 가자, 이미 유키 군이 와서 기다리고 있었다. 나는 종종걸음으로 유키 군이 있는 쪽으로 다가간다.
"죄송해요, 기다리셨나요?"
"아뇨, 안 기다렸어요. 아직 시간 전이고요. 그보다, 저야 말로 죄송해요. 번거롭게 이런 휴일에 불러내서."
확실히, 그 말 대로긴 하다.
학교에서 유미 양을 통해 건네줬으면, 시간도 수고도 안 들었을 거다. 거기다 덤으로, 약속 장소에 가기 위한 교통비도 안 들었겠지. 두 사람 집에서 적당한 위치를 잡았기에, 정기권만으론 올 수 없는 곳이다 보니 필연적으로 교통비가 생긴다. 물론 그걸 아까워 하거나, 불만을 꺼낼 생각은 전혀 없지만.
효율만을 생각하면 확실히 손해인 상태다. 그래도 이렇게 직접 건네주겠다고 한 건, 역시 어머니가 말했던 이유인 걸까.
슬쩍 유키 군의 모습을 살펴봤지만, 딱 보곤 모르겠다.
그래도 그럴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면 가슴이 두근거린다.
"저기, 이 뒤에 토도 양은 예정 있으신가요?"
"엣?"
"아뇨, 모처럼 휴일에 나오신 거니, 저번의 감사를 겸해서, 그, 괜찮으시다면 영화라도 보러 가지 않으실래요? 아, 물론 표는 제가 살게요."
"그런, 그러면 죄송해요. 저번에는 저야 말로 대접을 받은 쪽이었는데, 그렇게 배려 안 해 주셔도."
그래, 이건 결코 거짓말 같은 게 아닌, 거짓없는 본심. 유원지에서 한 데이트 때는 티켓값은 각자 내긴 했지만, 식사나 주스 같은 것들은 유키 군 쪽이 주로 내 줬었다. 그러니까 오늘 이런 식으로 다시 대접받을 수 있을 리 없다.
"아, 그, 그렇네요. 죄송해요, 이상한 소릴 해 버려서."
"아……."
유키 군은 초조한 기색이 섞인 채로 웃으며 얼버무리려 한다.
어째선지, 이 동작, 표정을 보곤 마음에 가시가 팍 박히는 듯한 고통이 느껴진다. 동시에 가슴 안쪽에서 뭔가가 솟아오른다.
"저기, 유키 군."
저도 모르게 나는 입을 열고 있었다.
유키 군이 나를 바라본다.
"딱히, 감사라거나, 그런 건 괜찮……지만, 예정이라면, 비어있어요."
그 말을 하며, 뺨이 불그스름하게 열을 띠는게 느껴진다.
"에? 그 소린……."
눈을 크게 뜨곤, 유키 군이 물음을 꺼낸다.
"영화를……."
"아, 예. 저로 괜찮다면."
내가 그렇게 대답하자, 옆에서도 알아볼 수 있을 정도로 유키 군의 표정이 확 바뀌어, 기쁨으로 가득찼다.
"저, 정말인가요?!"
"예."
다시 한 번 끄덕인다.
이렇게 유키 군과 둘이서 영화를 보러 가게 되어, 나란히 걸음을 옮긴다. 이렇게 둘이 이야기하면서 걷는 건 저번에 유원지에 간걸 포함하면 두 번째다.
아아, 어쩌지.
왠지 그 때 보다도 훨씬 더 가슴 고동이 빠르다.
영화관에 도착하고 나서, 나는 바로 당황했다.
도착한 건 멀티플렉스여서, 옛날 영화관의 이미지밖에 없었던 난 당황스러웠던 거다. 그도 그럴게, 영화를 보러 온 게 얼마만인지도 기억이 안 날 정도고, 멀티플렉스에 대해선 들었었지만 실제로 온 건 처음이었으니까. 예쁘고 세련된 공간을 보고, 조금 놀랐다.
"토도 양, 보고싶은 영화 있으셔요?"
옆에서 유키 군이 그런 걸 물어보지만, 영화 자체를 보는 게 오랜만이어서 지금은 어떤 영화가 인기 있는지, 뭐가 상영되고 있는지조차 모른다. 나는 솔직하게 그걸 이야기하곤, 선택권을 유키 군에게 맡기기로 했다.
잠시 동안 유키 군은 상영작들을 살핀 뒤, 이윽고 볼 걸 정했는지 표를 사왔다. 나는 내 몫의 표값을 내곤, 무슨 영화를 고른 건지 물어봤다.
"이걸로 했어요. 오랫동안 히트하고 있고, 전 원작자도 좋아해요. 사실은 계속 보고 싶다고 생각했었고, 상영시간도 딱 좋았어요. 자리가 거의 차 있어서 조금 구석 쪽이 되긴 할텐데, 괜찮나요?"
"예, 전 괜찮아요. 어떤 이야긴가요?"
"분야로는 미스테리려나요. 그래도 자세한 내용은 저도 몰라요."
상영관을 향해 걸어간다. 휴일이기도 해서, 유키 군이 말하는 대로 꽤 사람이 북적이고 있다.
중간에 있는 매점에서 팝콘이랑 콜라를 샀다. 영화관에선 역시 이게 정석이라며, 유키 군은 웃었다.
"특히 이 캐러멜 팝콘이 괜찮아요. 토도 양도 드세요."
추천을 받아서 앞 영화가 끝나는 걸 기다리는 동안, 조금 예의 없다고 생각하긴 하지만 팝콘을 집어먹어 본다. 향과 달콤함이 잘 어울려, 정말로 맛있어서 무심코 "맛있어요!"라고 말해 버렸다.
"정말, 굉장히 맛있어요. 깜짝 놀랐어요. 빠져버릴 것 같아요."
"그렇죠. 특히, 이런 곳에서 먹는다는 것도 맛있는 이유일지도."
"아아, 확실히."
피크닉이나 소풍에 가면, 평소랑 같은 도시락이라도 훨씬 맛있게 느껴진다. 밖에 놀러 갔을 때 산 주스나 과자도 다른데서 팔고 있는 거랑 똑같을 텐데 다른 것만 같이 느껴진다. 기분이나 분위기라는 게 새로운 조미료로 작용하는 거겠지.
"거기에, 토도 양이랑"
"예? 제가, 뭔가요?"
캐러멜 팝콘의 여운에 잠겨있는 중에, 이름이 들려서 고개를 돌린다.
유키 군을 바라보자, 어째선지 갑자기 얼굴을 붉히며 입을 닫아 버렸다.
"아뇨……아, 아무것도 아니에요. 아, 봐요, 전 상영이 끝난 모양이에요. 안에 들어가죠."
재빨리 문 안으로 들어가는 유키 군.
뭔가를 얼버무리려는 것 갈은 기분이 들지만, 뭐 괜찮겠지. 그치만, 그만큼 캐러멜 팝콘이 맛있었으니까.
상영된 영화는 애절한 내용이었다.
사랑하는 여자를 돕기 위해 죄를 저지르는 남자. 하지만 그 남자이 저지른 죄는 아무도 모른다. 아무에게도 알리지 않는다. 그, 사랑하는 여자마저도 모른다. 홀로 괴로워하며, 모든걸 짊어지려 한다.
이윽고 경찰의 손이 그 남자에게로 뻗쳐온다. 하지만 남자는 그것마저도 계산에 넣고 있었다. 그건 그 전에 죄를 범한 여자를 지키기 위해, 사랑하는 여자의 죄로부터 눈을 돌리기 위한 행동이었으니까.
그리고 마지막. 마침내 남자의 죄를 알게 된 여자. 그녀는 대체 무슨 생각을 했을까.
"……굉장히 애절했어요."
영화를 본 뒤, 근처 카페에서 쉰다.
나는 영화의 내용을 떠올리니, 눈물이 나올 것만 같았다.
확실히 좋은 영화였다고 생각하지만, 조금 슬프다. 과연 저 남자는 저렇게 사랑하는 여자를 지키는 걸로 행복했던 걸까. 저 여자는, 남자의 죄를 깨닫고 어떤 느낌이었을까. 만약 나였다면 마음이 찢어져버렸을지도 모르겠다.
많은 생각이 떠오른다.
"그렇, 네요. 확실히 죄는 지으면 안 되겠지만, 그는 사랑하는 사람을 어떻게서든 지키려고 했던 거니까요……."
유키 군의 목소리도 평소보다 낮은 톤이었다.
"혹시……."
저도 모르게 나는 말을 꺼냈다.
"혹시나, 유키 군이 사랑하는 사람이 같은 상황이면, 유키 군이라면 어떻게 할 거로 생각해요? 저 영화의 남자랑 똑같은 생각을 할 것 같나요?"
내 물음에 유키 군은 팔짱을 끼고 진지하게 생각에 잠긴다.
홍차를 한 모음 마신 뒤, 나직히 이야기를 시작한다.
"저였다면……영화를 본 직후여서 그런지 모르겠지만, 안 할 것 같아요. 죄는 반드시, 언젠가 드러나요. 설령 드러나지 않더라도 여자쪽은 평생 사라지지 않는 상처가 따르리라 생각해요.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깊고, 무거운 상처가. 그러니까, 저는 여자의 죄를 같이 짊어지리라 생각해요. 자주 이야기하잖아요. 고통은 나누면 반이 된다고. 그러니까 혹시 그런 상황이 오면, 저는 솔직히 그 죄를 인정하도록 하고, 토도 양과 함께 걸어가고 싶으……려나요. 분명, 말처럼 간단한 건 아니겠지만요."
천천히 자신의 마음을 정리해나가며 천천히 풀어나가는 유키 군.
"그런, 가요."
어쩐지 유키 군 다운 대답처럼 느껴졌다. 가정이니 의미가 없을지도 모르겠지만, 그래도 생각하는데 의미가 있다.
혹시, 내가 여자 입장이었다면 어떻게 했을까. 역시 남자가 죄를 범했으면 싶진 않다. 그래도 남자가 자신의 죄를 짊어져줬으면 하고 생각하지도 않는다. 빙글빙글 도는 생각. 그렇게 생각에 잠기는 중에.
"……어? 저기, 지금, 유키 군."
왠지 지금, 이야기 속에서 굉장한 이야기를 태연히 꺼내지 않았었나.
"아니, 저기, 지금 건 실수예요!"
깨달은 건지, 유키 군도 허둥지둥거리고 있다.
"에, 시, 실순가요?"
"그, 그게 아니라. 시, 실수지만, 실수가 아니라……으, 아아! 그그그그그, 조금, 지금거, 일단 잊어 주지 않을래요?!"
새빨개진 채로 유키 군은 흐트러진 모습을 보였지만, 나도 마음속에선 의미를 알 수 없는 말의 흐름이 빙글빙글 돌아서 전혀 여유가 없었다.
"아, 알았어요. 일단, 잊을게요."
"예, 부, 부탁드려요."
잘은 모르겠지만, 그렇게 양해하는 걸로 어떻게든 표현적으론 차분함을 되찾았다.
그렇긴 해도.
어떻게 해도, 마음속은 안정되지 않았다.
차를 마시며 이야기한 뒤, 유키 군과 헤어져서 귀가하자 마침 저녁 식사때였다. 저녁을 먹으면서 하룻동안 있었던 일을 아버지와 어머니가 물어와서 곤란했다. 학교에서 있었던 일은 별로 묻지 않았었는데.
식사를 마치고, 욕실에 들어가 땀을 씻는다. 욕조 속에서 혼자가 되어, 드디어 침착하게 하룻동안 있었던 일을 되돌아 본다.
아침, 어떤 옷을 입고 갈지 망설이고, 약속 장소로 향해, 영화관에서 캐러멜 팝콘을 먹으면서 영화를 보고, 영화를 다 본 뒤엔 카페에서 쉬었다.
확실히 이건 데이트일지도 모른다는 걸 간신히 깨달았다.
그리고, 그 마지막에 유키 군이 한 이야기.
"으으으으읏!"
그게 떠오를 것만 같아서 고개를 바로 흔들어 쫓아낸다. 그 일은 잊기로 약속했으니까.
따뜻한 물에 코까지 잠긴 뒤, 숨이 막힐 즈음에 고개를 든다. 역시, 그렇게 간단히 잊을 수 있을 것 같지 않다. 그건 어떤 거였을까. 분명, 단순히 이야기의 흐름이 그랬던대다 눈 앞에 내가 있었으니까 그렇게 되어 버렸던 거겠지만, 그래도 역시 두근거렸다.
부끄러움과 목욕에 쌍으로 현기증이 덮칠 것만 같아, 욕조에서 나온다. 이렇게 몸이 뜨거운 것도, 고동이 빨라지는 것도, 분명 뜨거운 욕조에 들어가 있었던 탓. 유키 군의 탓이 아니야. 그렇게 자신을 설득하며 세면장에 앉아, 정면의 거울을 바라보자,
수증기로 흐려진 거울에 내가 비쳤다.
"………………."
그 나 자신을 보고, 무심코 어머니의 말을 떠올린다.
아아, 확실히 나는 멋진 표정을 짓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흐린 거울엔 제대로 비치지 않았는데도, 그런 걸 자연스럽게 떠올려 버릴 정도로 내 표정이 평소와 달라 보였던 거다.
가슴에 손을 댄다.
피부가 뜨거운 건, 고동이 빨라지는 건, 과연 목욕 탓인 건지, 이미 나는 알 수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