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즈카의 푸른 하늘
유학 장소인 이탈리아의 음악원 생활에도 익숙해져서 친구도 많이 생겼지만, 그런데도 이탈리아 친구들의 분위기에는 따라가지 못하는 부분도 많다. 시즈카가 일본에서 태어나 릴리안 여학원이라는 아가씨 학교에서 자란 걸 생각하면 쉽사리 익숙해 질만한 부분이 아니다. 무리해서 익숙해질 필요는 없는 부분이고, 친구들이 시즈카를 매몰차게 대하거나 하는 것도 아니니 긴장할 필요는 없지만.
“시즈카, 이번 휴일 말인데.”
“권유 고마워, 다니오. 하지만 미안해. 그 날도 공부로 바빠서.”
“그렇게 수줍어 할 필요 없어, 시즈카. 나라면”
“후후, 배려 고마워. 하지만 정말로 바쁘니까.”
“아야야야야야……아, 알았어 시즈카. 알겠으니까 놓아 주지 않을래?”
어깨에 놓인 다니오의 손등을 꼬집었던 손가락을 떼자, 다니오는 과장스레 아픈 시늉을 하며 물러갔다.
“다니오, 이번도 안됐냐.”
“시즈카는 정말 가드 딱딱하네. 한 번 쯤 데이트 해 줘도 괜찮잖아?”
“하지만 다니오도 매번 질리지도 않고 저러네. 승산은 전혀 없는데.”
평소와 다름없는 시즈카와 다니오의 대화를 보곤 웃으며 얘깃거리로 삼는 친구들.
여기 이탈리아에서 시즈카는, 동양에서 온 엑조틱한 쿨뷰티로서 남녀 모두에게 상당히 인기가 있었다. 거기에다 이탈리아의 남성은 여성에게 적극적이니, 말을 걸어오지 않을 리가 없어 이런 식으로 종종 데이트 권유를 해 온다. 그 중에도 다니오는 특히 시즈카에게 집착하고 있어, 수없이 거절당해도 굽히지 않고 권유해 오는 강자다. 지금은 동료들 사이의 안줏거리가 되어 버렸지만.
하지만 누가 권유하든 전혀 흔들리지 않는 시즈카.
그런 시즈카를 보고 어떤 사람은 “조신한 일본인 여자다워서 좋다”고 말하고, 또 다른 사람은 “일본에 애인이 있는 거야, 분명”이라 억측하고, 또 다른 사람은 “정말로 진지하게 음악을 제일로 생각하고 있어서, 연애는 그 다음인거야”라고 칭찬한다.
시즈카 자신은 그 중 무엇에도 명확한 대답을 돌려주지 않고 평소와 다름없는 쿨한 눈빛과 쿨한 표정으로 넘기고 있지만, 그런데도 미움받거나 하지 않는 건 시즈카의 성격 덕일지 아니면 이탈리아인의 기질 덕일지. 어느 쪽이든, 구애하는 말에 대해 애매한 태도가 아니라 확실히 잘라 거절하고 이상한 착각을 하게 할만한 행동은 하지 않으니, 그게 좋은 걸지도 모른다.
“이야기를 바꾸겠는데, 시즈카. 오늘은 굉장히 괜찮았어. 얼마 전부터 막힌 것 같은 느낌이었는데, 아무래도 벽을 뛰어넘은 모양이네.”
“나도 그렇게 느꼈어! 무슨 계기라도 있었어?”
“계기……특별한 일은 없는데, 꾸준한 노력이 결실을 맺은 거려나?”
“과연 시즈카, 성실하구나!”
웃음이 터진다.
온화한 나날에 시즈카는 만족하고 있었다.
며칠 뒤.
“――예, 시즈카, 무슨 일 있니?”
“무슨 일 있냐니, 무슨 소리야 리베라타?”
“왠지 오늘, 분위기가 날카로운 기분이 드는데?”
“……그런 거 없어, 평소대로야. 기분 탓이 아니니?”
말을 걸어온 친구에게 어깨를 움츠리며 대답한다.
“정말로? 며칠 전까진 좋은 느낌이었는데, 오늘은 목소리도 조금 날카로운 느낌이었어.”
정면에 앉은 리베라타가 안색을 엿봐서, 시즈카는 읽던 책을 덮고 고개를 든다.
“혹시나 다니오에게 억지로 불려나가 기분이 상했다거나.”
“설마, 다니오에게 불리더라도, 단 둘이라는 걸 알면 때려눕혀서라도 돌아갈 거야.”
“Oh, 그건 ‘KARATE’구나!”
“어이, 시즈카, 리베라타, 멋대로 날 쓰러뜨리며 놀지 마.”
“어머, 있었니 다니오? 몰랐었어.”
“시즈카는 너무하네, 아까부터 보고 있었는데……그래도, 그런 쿨한 부분도 시즈카의 매력이지만.”
여전한 다니오에게 가벼운 미소로 답하고 일어난다. 웃음을 보고 무슨 생각을 했는지 다니오가 다시금 말을 걸어 왔지만, 그걸 딱 잘라 거절하고 귀로에 오른다.
친구들에게 들었는데, 그렇게나 자기 분위기가 바뀌어 있었던 걸까. 시즈카 스스로 생각하기에는 어제까지와 별 차이 없는 것 같은데.
그래, 바뀌었을 리가 없잖아.
추가로 며칠 뒤.
8월도 거의 끝나가, 1학기 시작이 다가왔다. 유학 3년째도 후반에 돌입해서, 슬슬 많은 것들을 고민해야 한다. 이대로 이탈리아에 계속 남아 높은 곳을 노릴지, 일본에 돌아가 다음 스탭을 노릴지를.
본고장이라는 부분에선 역시 이탈리아에 있는게 좋을지도 모르겠지만, 일본에 돌아가고 싶다는 기분이 없는 건 아니다. 이탈리아에서 실적을 쌓아, 일본을 거점으로 삼는다더라도 폭넓게 활동할 수 있게 된다면 말할 것도 없겠지만, 현 시점에선 큰 실적이 없는 시즈카가 지금 일본에 돌아간다고 해서 대단한 일은 바랄 수 없겠지.
카푸치노를 한모금 마시며 꽤 상이 맺히지 않는 자신의 장래를 고민하고 있자, 다시금 와글벅쩍한 친구들이 찾아와서 시즈카를 둘러싼다.
“뭐야, 시즈카 또 기분 안좋은 거 아니니?”
“왜 그렇게 되는 거니, 리베라타. 아니라고 이야기 하잖아.”
“그래. 오늘은 시즈카 굉장히 괜찮은 느낌이라고 생각하는데?”
“부족하네, 다니오. 확실히 전이랑 비교하면 꽤 옅어졌지만, 나는 평소랑 다르단 걸 알 수 있어.”
“그런가? 음―.”
다니오는 팔짱을 끼며 기묘한 표정을 지었고, 한편 리베라타는 여전히 시즈카의 이야기를 납득하지 못했단 표정으로 바라본다.
여러모로 배려해 주고 신경 써 주는 건 고맙지만, 본인이 아무것도 아니라고 하는 거니까 적당히 신경 쓰지 말아줬으면 하는 생각도 든다.
실제로 오늘의 가창은 시즈카도 나름대로 납득할 만한 솜씨였다고 생각하고 있는 거다.
“그건 이제 됐잖아. 그것보다, 점심 먹으러 안 갈래? 배도 고프고.”
“오, 시즈카 쪽에서 권해주다니 기뻐. 새로 생긴 맛있는 카페가 있는데, 어때? 내가 쏠게.”
“어머, 그건 괜찮겠네. 그럼 다같이 갈까? 오늘은 다니오가 쏜다는 모양이야.”
“그건 아니지, 시즈카.”
이렇게 되리라는 걸 알면서도 질리지 않는 다니오다. 다같이 웃으며 카페로 향하려 일어난다.
“――자, 보니토, 뭐 하는 거야. 다니오가 대접해 준다는 모양이니 가자.”
리베라타가 조금 멀리 있는 친구를 보곤 말을 걸었지만, 그 보니토는 아무래도 경황이 없는 듯 하다.
“왜 그래, 보니토?”
리베라타와 다니오가 보니토 쪽으로 다가가고 뒤늦게 시즈카도 둘의 뒤를 쫓자, 보니토가 뒤돌아보며 어깨를 움츠린다.
“아니, 아무래도 미아가 아닌가 싶어서.”
“미아?”
하고, 다니오의 옆에서 바라보자,
“잠깐, 유, 유키 군?!”
저도 모르게 소리를 높여버린 시즈카.
한편 시즈카의 소리를 듣곤 고개를 돌려, 기쁜 듯이 환히 웃은 건 틀림없이 유키였다.
“아아, 시즈카 씨. 다행이에요, 만날 수 있어서.”
“다행이라니, 어째서 여기에?”
시즈카는 아직껏 믿기지 않는 듯, 눈을 끔뻑거리며 유키를 보고 있다.
“뭐야, 시즈카랑 아는 사이였어? 이 아이는?”
“일본의 남자아이구나, 네 이름은?”
“에? 아, 그, 이름을 묻고 있는 건가. 저기, 유키예요.”
어떻게든 알아들은 건지 유키가 더듬더듬 이탈리아어로 대답하자,
“유키, 너 귀엽구나!”
“우와앗?!”
갑자기 리베라타가 유키에게 안겨붙었다.
볼륨있는 갈색머리의 리베라타는, 바디라인에 요철이 적은 시즈카완 다르게 가슴도 엉덩이도 굉장히 큰데다, 지금은 계절 탓도 있어서 얇은 여츠 차림. 그런 육감적인 리베라타에게 포옹당해서 유키는 얼굴을 새빨갛게 붉히며 굳어 버렸다. 그런 유키를 보고, 다시금 리베라타가 “귀엽다”고 말하며 볼을 비빈다.
“저기 시즈카, 이 애, 시즈카의 남동생이야?”
그렇게 물으며 유키의 뺨에 친애의 키스를 하려고 입술을 대려 하는 리베라타를 보곤, 이윽고 시즈카도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만둬, 리베라타. 확실히 그는 동안이지만, 그래봬도 대학생이야.”
“엣, 농담이지?! 초등학생 아냐?!”
일단 몸을 떼고, 말똥말똥 유키의 얼굴을 바라보며 말하는 리베라타. 시즈카의 말을 듣고, 다니오와 보니토도 놀란 표정을 짓고 있다.
“정말이야. 그러니까 자, 놓아 줘.”
“헤에~, 일본인은 동안이라는 모양이지만, 정말 깜짝 놀랐어……그래도, 인사로 키스쯤은 괜찮잖아?”
“안돼.”
“응, 어째서?”
“일본인한텐 그런 관습이 없으니까. 봐, 깜짝 놀랐잖아.”
“흐응…………아?! 아아, 그렇구나, 그런 거였어.”
거기까지 듣곤 뭔가를 납득한 듯 홀로 끄덕인 뒤, 히죽거리며 시즈카를 바라보는 리베라타.
“먼저 말해 두겠지만, 딱히 나랑 유키 군은 네가 생각하고 있는 것 같은 관계가 아니라고?”
“또 그러긴~, 과연, 유키가 일본에 두고 온 시즈카의 애인이었던 거구나!”
시즈카가 하는 소리는 전혀 들리지 않는 듯, 모두 알고있다는 식으로 웃음을 가득 띄우며 끄덕이는 리베라타를 보곤 시그마는 작게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돌린다.
“자, 잠깐 기다려 리베라타. 시즈카가 말하는 대로잖아. 왜 초등학생을 상대로 시즈카가.”
“정말―, 다니오, 체념하라고. 보는 대로 시즈카에겐 상대가 있었단 거야. 그러니까 누가 무슨 소리를 하든 흔들리지 않았던 거고. 일본에 애인이 있다는게 역시 정답이었던 거야.”
“농담이지, 시즈카. 정말로 그 소년이 애인인 거야?”
“잠깐, 다니오……그, 그러니까 그런 게 아니라고 말하고 있잖아.”
“그렇지? 응. 보라고 리베라타, 시즈카가 이렇게 말하잖아.”
“흐응……그럼,”
슬쩍 리베라타가 유키에게 추파를 던진다.
“내가 유키에게 어필해도 괜찮은 거지? 나, 한 번 동양 남성이랑 사귀어 보고 싶었어. 일본인이라면 더할나위 없고. 봐봐, 상냥하고 성실하고 여성에겐 일편단심이라잖아. 거기에 유키는 귀엽고!”
“와왓, 잠깐, 그?!”
다시금 유키의 목에 안겨붙고, 가슴을 밀어붙이는 리베라타.
아무리 시즈카라도 그 모습을 보고는 움찔 반응하며 안쪽 눈썹을 치켜세웠지만, 아까 자신이 아무 관계도 아니라고 말한 입장이라 움직이지 못하고 있다.
“저기 유키, 나랑…………어라?”
하지만, 다시금 적극적으로 유키에게 다가가려한 리베라타에게 앞서, 유키가 리베라타의 어깨를 잡고 몸을 뗐다.
그리고.
“죄송해요, 저기, 저, 시즈카 씨한테 푹 빠졌으니까!!”
라고 큰 소리로 외치며 고개를 숙였다.
정적이 깔린다.
천천히 고개를 든 유키는, 약간 얼굴을 붉히면서도 진지한 표정으로 리베라타를, 그리고 시즈카를 바라보고 있었다.
시즈카는 그 말을 듣고 굳어버렸다.
지금까지 유키와는 천천히 교류를 쌓아 서로의 거리는 확실히 가까워진 상태고, 유키는 저번 방문때 플라잉에 가깝게 호의도 전달받았다. 그런데도 확실히 사귀고 있는 건 아닌 사인데, 다른 사람도 있는 곳에서 이렇게 고백받으면 어떻게 반응해야 좋을지 모르는 거다.
그런 시즈카의 팔죽지를 잡고 미소짓는 리베라타.
“유키는 저렇게 말하는데, 시즈카는 어떤 거니?”
“그, 그러니까, 나는…….”
소리가 작아진다.
그 소리를 덮듯이, 다니오의 커다란 소리가 울려퍼진다.
“좋아, 잘 선언했어 유키! 이걸로 앞으로 우리는 시즈카에 대한 대등한 연적이라는 거구나!”
“아니 다니오, 넌 확실히 진 쪽이니까.”
“둘 다 정정당당히 싸워보자고. 하지만, 뭐어, 오늘은 만난 기념으로 식사라도 하러 갈까.”
“에이고야, 다니오도 정말 질리질 않는구나.”
어깨를 움츠리며, 다니오, 보니토와 함께 걸음을 옮기는 리베라타.
시즈카는 유키에게 다가가 작은 목소리로 따진다.
“……유키 군, 온다면 온다고 미리 말해 줬으면,”
“어라, 알레시오 씨가 이번엔 제대로 시즈카 씨에게 전했다고 말씀하셨는데…….”
“못 들었어요! 정말, 알레시오도 참…………그보다, 알레시오가 말하기 전에 제겐 어째서 말해주지 않았던 건가요?”
“에, 그, 메일 했어요. 안 닿았나요?”
“그런 메일, 보냈으면 당연히 깨달았…………깨달았…….”
거기서, 문득 뭔가 깨달았다.
“아차……요즘 메일 체크를 못했었네…….”
컴퓨터 상태가 나빠져서 수리를 보내뒀고, 컴퓨터가 없어도 생활엔 불편함이 없기에 메일도 별로 신경쓰지 않았던 거다.
“……그, 그래도. 전에, 오지 못하게 됐다고 말했었잖아요.”
얼버무리듯 입을 빼죽이는 시즈카.
그래, 그건 리베라타 일행에게 컨디션이 나쁘다는 이야기를 듣기 전날이었다.
“――에, 못 오게 됐어?”
“응, 시즈카가 외출하고 있을 때 유키에게서 전화가 왔었어.”
플라비아가 온화한 목소리로 설명해 주었다.
전에 찾아왔을 때 여름방학 중에 돈을 모아서 다시 한 번 시즈카를 만나러 오겠다고 유키가 말했었지만, 알바비를 받는 날이 예정보다 늦춰져 버려서 학기가 시작되는 타이밍 등을 감안하면 이탈리아에 가는 건 어렵다는 것을.
“유감이구나, 시즈카. 침울해지지 마렴.”
“그럴리가요. 별로 일생 만나지 못하게 되는 것도 아니고, 그 정도로 침울해지진 않아요.”
가볍게 손을 저으며 웃어보이는 시즈카.
실제로 겨울방학에는 반드시 가겠다는 전언도 받았고.
“무리 안해도 괜찮아. 사랑하는 사람하곤 언제든 함께 있고 싶을텐데.”
“정말, 그러니까 그런 게 아니라니까요.”
그런데도 아쉬워하는 플라비아를 두고 자기 방으로 돌아간 시즈카는,
“――――뭐야, 유키 군 거짓말 쟁이!”
힘 없이 침대에 엎어져서 베개에 주먹을 날렸다.
“온다고 약속했으면서. 어차피 나같은 건 그 정도밖에 아니었던 거겠지.”
자신의 푸념이 불합리하다는 건 알고 있다. 학생인 유키가 그렇게 간단히 이탈리아까지 몇 번이나 가볍게 올 수 있을 리가 없는 거다.
“그래, 어쩔 수 없잖아. 거기에, 딱히 꼭 만나고 싶은 건 아니고, 저번에 막 만난 참이고.”
슬럼프에서도 탈출했으니, 한동안은 음악에 집중하라는 거겠지. 애초에 유키하곤 알레시오나 플라비아가 추측하는 것처럼 서로 교제하고 있는 관계도 아닌데, 만날 기회가 한 번 날아간 것 정도로 영향이 있을 리 없으니까.
바로 시즈카는 평온을 되찾고는, 자기 자신의 마음속으로 그렇게 결론지은 뒤 머릿속에서 유키에 대한 생각을 몰아내기로 했다.
그 다음 날 부터 분위기가 날카로워졌다든지, 목소리에 생기가 없다든지, 컨디션이 이상해 졌다든지 등의 이야기를 알레시오 부부나 친구들에게 듣게 되긴 했지만.
“알바비가 들어오는 건 확실한 거니까, 빌려서 와 버렸어요.”
“비, 빌렸다니…….”
“아아, 뭐어 유미한테서니까 괜찮아요.”
“그, 빌릴 이유같은 건 설명하고?”
“액수가 꽤 컸으니까요. 그래도 시즈카 씨에게 만나러 가기 위해서라고 이야기했더니, 기꺼이 빌려줬으니까요.”
“그, 그렇군요…….”
얼굴이 빨개지는 시즈카.
그야 뭐, 이렇게 일부러 이탈리아 구석까지 만나러 올 정도인 거니까 애초에 가족들에게 시즈카에 대해서는 예전부터 이야기해 뒀겠지만, 새삼스레 정면으로 들으면 다시금 부끄럽다. 특히 유미는 같은 학교의 후배인데다 여러모로 얽혀있는 상대기도 하고.
“그, 그렇게까지 무리하지 않아도……그런 약속, 별로 상관없는데.”
전날 자기 방에서 “거짓말쟁이”라고 말했던 건 없었던 걸로 하고 이야기 하자,
“약속? 아……그것도 있었지만, 그, 단순히 제가 시즈카 씨를, 그, 마, 만나고 싶었던 거니까…….”
마찬가지로 얼굴을 새빨갛게 붉히며 말하는 유키.
“그, 그런가요…….”
“예, 저기, 귀찮았나요…………?”
“귀, 귀찮은 건 아니에요, 예…….”
“………….”
서서히 말이 작아지고, 한편으론 서서히 둘의 얼굴이 붉어져 간다.
“――――이봐! 시즈카, 유키, 뭘 하는 거야, 빨리 출발하자!”
거기서, 아무리 지나도 안 오는 둘을 보고 속이 터진 리베라타가 달려와서 둘의 등을 떠밀어 억지로 걸음을 옮기게 했다.
“유키, 지금은 네가 우위에 있는지도 모르겠지만, 시즈카와 함께 있을 수 있는 시간은 내가 기니까 말야, 앞으로 역전해 줄 테니까.”
기다리던 다니오가 유키를 가리키며 당당히 선언한다.
“다니오, 너는 적당히…….”
리베라타는 기막힌 표정을 지었지만, 그 리베라타에게 앞으로 떠밀리고 있던 유키는 다니오를 바라보곤, 뒤이어 옆에 있는 시즈카에게 얼굴을 향하며 말한다.
“――맞아, 시즈카 씨. 사실은 저도 이탈리아에 유학하려고 생각하고 있어요.”
“에?”
“저, 건축 디자인을 전공하고 있는데, 앞날을 생각하면 이탈리아의 건축설계는 굉장히 매력적이어서.”
“에, 엣?”
“거기에, 지금보다 시즈카 씨에게 가까이 있을 수 있게 되고……아, 무, 물론 공부가 최우선이라고요? 그래도, 시즈카 씨는 멋진 여성이고, 이탈리아에서도 인기가 있으리라 생각했는데 역시나 그랬었고, 저도 지고 싶지 않으니까……아, 사실은 알레시오 씨에게도 상담을 받았었는데, 알레시오 씨는 사실 건축가였던 모양이에요. 그래서 이래저래 인연도 있으신 모양이라 응원해 주신다고 하고, 이쪽에 오게 되면 집에 오면 된다고 플라비아 씨도 굉장히 신나게 등을 떠밀어 주셔서…….”
“에, 자, 잠, 잠깐 기다려.”
급작스런 이야기에 정보 정리가 따라잡지 못해, 계속 당황중인 시즈카.
한 가지 이해한 건 혹시나 얼마 안 가서 유키도 이탈리아에 살기 시작할지도 모른다는 거다.
“…………다니오, 이래서야 완전히 백기 드는게 나은 상황 아냐?”
“멍청한 소리 하지 마, 리베라타. 아직 졌다고 정해진 건,”
“아니―, 그래도 시즈카의 저런 표정 본 적 있어? 거기다 며칠간 가시돋혔던 분위기도 완전 사라져서 부드러운 느낌이 됐고……그치?”
그 말을 듣고 쓴웃음 짓는 보니토, 분한 듯한 표정을 짓는 다니오.
그 셋의 눈길 끝에는,
“……그래서, 알레시오 씨도 참, 방은 시즈카 씨랑 같이 쓰면 된다고 말하니까, 아무래도 그건 곤란하다고 이야기 하고,”
“싫다, 알레시오도 참……그, 그래도, 그건 어떤 의민가요, 유키 군?”
“엣, 아니, 싫었던 건 아니라고요?! 저, 저는 단지, 공부에 집중할 수 없어질 것 같고, 시즈카 씨도 곤란할 거잖아요?”
“저한테 책임을 넘기는 건가요? 너무하네요.”
“그런 생각이…….”
“――――농담이에요.”
“에, 너, 너무해요.”
그런 느낌으로 사이좋게 이야기하는 둘의 모습이 있었고,
시즈카는 요즘 마음에 졌던 응어리가 사라져가는 걸 느끼고 있었다.
‘유키 군이 이탈리아에………….’
아직 못 본 가까운 미래를 떠올리며, 경쾌한 발걸음으로 나아간다.
어느샌가 마음속이 활짝 개여간다.
그래, 이탈리아의 이 푸른 하늘처럼.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