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및 문화 콘텐츠 사이트 삼천세계

스카이 나이츠 - 창공의 기사단


Sortie 030 - 파벌 Part 2


2
“앞으로 인피티니 항공 함대를 이끌 기사단장은……. 제 44 기사단의 사냐 공주 전하시다.”

……뭐?

순간 내 귀를 잘못 들었나 의심했지만, 일단은 의심하기 전에 내 귀부터 살려야 했다. 함성과 분노가 양 옆에서 동시에 터져나왔으니까. 뒤쪽에 앉아있는, 평민과 하급 귀족 출신의 급강하 폭격 기사단과 뇌격 기사단은 환호성을 지르며 환호하는 반면, 우리 주변에 앉아있는 항공 기사단의 기사단원들은 험악한 눈초리로 우리를 노려보며 크게 반발하기 시작했다.

“찬성! 찬성입니다!”

“안됩니다. 황실에게 군권을 주다니요!”

격렬한 반대와 찬성이 양쪽에서 터져나오는 가운데 나는 살짝 고개를 기울여 에리카 소령에게 말을 걸었다.

“왜저래?”

물론 왜 서로 저렇게 격한 반응들이 나오냐는 말이다. 내 질문을 알아들었는지 에리카 소령이 조용히 속삭였다.

“파벌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파벌?”

“저희 에르데 제국은 예로부터 귀족의 이익을 대변하는 반황제 의회파와 평민 계급의 이익을 대변하는 황제파로 나뉘어져 있었습니다. 그 연장선상일 뿐입니다.”

“신분제 그냥 과거의 유산 같이 허울 뿐인 것 아니었어?”

“사회적 지위는 그냥 생겨나지 않지요. 귀족이기 때문에 가질 수 있는겁니다. 비록 저희 제국이 비교적 자유로운, 리버럴한 사회라고는 하지만, 엄연히 신분제가 존재하는 사회입니다. 당연히 귀족과 평민 계층 사이의 반목이 존재하죠.”

“……그래서?”

“원래 법에 따르면 오로지 준남작 이상의 귀족이나 기사 서임을 받은 비세습 귀족들만이 항공 기사가 될 수 있습니다. 평민 항공 기사 보셨습니까?”

“……잠깐, 펠츠 소위는? 평민이잖아.”

“펠츠 소위 같은 경우는 전쟁이 발발한 이후에 항공 기사의 수요가 급증하자 급하게 서임되었습니다. 그나마 황제 폐하의 근위대 직속이라 그렇게 처리할 수 있었던 것이지 만약 해군이나 육군이었다면 펠츠 소위는 항공 기사가 되지 못했을 것입니다.”

즉, 제국 근위대는 비교적 유연하게 운용되기는 하지만, 기본적으로 항공 기사가 되려면 귀족이어야 한다는 말이 된다.

“반황제파, 그러니까 의회파 놈들은 제국 황실이 군권을 가져가는 것을 두려워하고 있습니다. 간신히 장식으로 만들어놓은 황제가 다시 권력을 장악할 수 있으니까요.”

“황제는 그럴 생각이 있나?”

“황제 폐하의 신하된 자로서 그분의 깊은 뜻을 섣불리 짐작하면 안됩니다.”

대답을 아끼는 에리카 소령. 그래서 나도 더이상 묻지 않았다.

“그래서, 귀족들이 반발하는건 알겠는데 급강하 기사단이랑 뇌격 기사단쪽의 이야기는 뭔데?”

“가장 위험한 뇌격 기사단과 급강하 폭격 기사단은 전부 평민 계급이 맡고 있습니다. 제국 귀족이 급강하 폭격 기사나 뇌격 기사가 되는 것을 제한하는 법령은 없지만, 귀족이 급강하 폭격 기사단이나 뇌격 기사단의 항공 기사로서 배속되는 경우는 거의 없습니다.”

그러니까, 평민이 주류인 급강하 폭격 기사단과 뇌격 기사단은 황제파고, 다른 전투 항공 기사단은 반황제 의회파라는 말이지.

“모두가 그런건 아니지만, 대부분 그렇습니다. 사라토가 소속의 전투 항공 기사단은 황제 폐하를 향한 변함없는 충성으로 유명합니다.”

알았다는 뜻으로 고개를 끄덕인 나는 슬며시 주변을 둘러보았다. 반데그라프 소장이 앞에 서있던 말든, 황제파와 반황제파로 나뉜 항공 기사들은 격렬한 말싸움을 주고 받고 있었다. 일단 급강하 폭격 기사단과 뇌격 기사단, 아일린 공주의 중폭격 기사단 그리고 사라토가 소속의 기사단들이 사냐 공주를 지지하는 황제파. 와스프 및 37 기사단과 경폭격 기사단이 반황제파로 일단 판명이 났다.

숫적으로는 이쪽이 유리하지만 (일단은 나도 황제파이기는 하다. 근위대 소속이니) 문제는 중폭격 기사단과 몇몇 뇌격 기사단은 아일린 공주를 지휘관으로 추대하는 모양이었다.

상황을 정리하자면, 중구난방이다.

결국, 그날 우리가 정할 수 있었던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다만, 이것만은 확실했다.
누구든, 다른 기사단의 반발을 누르고 그들을 납득시키려면 엄청난 전과를 올려야만 한다는 것을.

그날 저녁, 사냐 공주는 우리 기사단의 기사단원 전원을 자신의 텐트로 집합시켰다. 대충 예상하고는 있던 일이기에 아무도 동요하거나 눈치 파악을 못하거나 하지는 않았다.

마지막으로 내가 텐트에 도착하자, 사냐 공주와 에리카 소령은 기다렸다는 듯 작전 회의를 시작했다.

“제가 전원을 집합하라고 한 이유는…… 다들 잘 알고 있겠죠. 오늘 반데그라프 소장 각하의 지휘관 선임건 때문이에요.”

조용한 텐트 안을 한번 둘러본 사냐 공주가 말을 이었다.

“소장 각하는 저를, 이곳 핸더슨 비행장에 전개된 100여기의 항공기를 총 지휘하는 항공 함대 사령관으로 임명하려고 하셨지요. 그에 대해서 여러분의 이야기를 듣고 싶네요. 거창하게 ‘공주 전하께서 반드시 사령관이 되셔야 합니다’ 같은 말이 아니어도 좋습니다. 그냥, 여러분의 생각을 듣고 싶어요. 자유롭게 이야기 해주세요.”

모두들 슬쩍슬쩍, 서로의 눈치만 보는 분위기다. 아무리 자유롭게 이야기 하라고 했다고 하나, 아마 황녀 앞에서 마음껏 자기 생각을, 그것도 본인에 관한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용자는 몇 없겠지. 그나마 쭈뼛쭈뼛 손을 드는 유나 중위가 아니었다면 대화는 여기서 중단되었을거다.

“유나?”

“저는…… 찬성입니다. 공주 전하께서 이곳을 지휘하는 사령관이 된다는 것은 당연합니다. 사실, 지금까지 공주 전하가 다른 지휘관들에게 명령을 받는 것이 불쾌했는데, 이번 일로 해결할 수 있으면 좋다고 생각합니다.”

누가 황제파 장교 아니랄까봐 커밍아웃 한번 직설적이다.

“아예 이번 기회에 우리 근위대가 군의 지휘권을……”

“그만. 근위대가 군 지휘권을 가지려 든다면 내전을 야기할 수도 있어요. 그 이야기는 여기서 끝내죠, 중위.”

​“​…​…​죄​송​합​니​다​.​”​

손을 들어 살짝 과격해지려는 유나 중위의 말을 끊은 사냐 공주가 다시한번 좌중을 둘러보았다.

“다른 기사단원들은, 딱히 의견이 없는건가요?”

모두들 입 밖으로 꺼내기는 했지만 암묵적으로 동의하는 눈치다. 하긴, 아무래도 그렇겠지. 자기들의 지휘관이 항공 함대의 총 지휘관이 된다는데 좋아하지 않을 부하가 어디에 있겠는가? 나도 솔직하게 말하자면 기분이 좋다. 사냐 공주의 실력이 어느정도 인정받는다는 말이니까. 항공 함대의 사령관이 된다는건 단순히 100여기의 항공기를 지휘하는 사령관이 된다는 말이 아니라, 이곳, 과나카날 전역의 항공 작전 전체, 그러니까 앞으로 진행될 전역의 방향성을 결정할 수 있다는 말이다.

당연히, 황족이 맡을만한 일은 아니다. 제국의 제도상 황족이 군 지휘권을 갖는 것은 지향되어왔으니까. 아니, 사실상 금기시 되어왔다는 말이 옳을거다. 사실, 이번 전쟁이 아니었다면 황녀인 사냐 공주나 아일린 공주가 전술부대의 사령관으로 전장에 투입되는 일은 없었을 거다. 그럼 그 전까지는 뭐했냐고? 프로파간다용 사진이나 찍고 다녔지, 뭘.

그렇기 때문에 근위대 장교들인 우리 기사단원들이 보기에는 이번 반데그라프 소장의 제안이 기분 좋을 수도 있다. 황족인지 아닌지를 따지지 않고, 정규군이 인정할 정도로 충분한 전공을 세우고 활약했다는 말이니까.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나는 다른 의견을 제시할 생각이다.

“창민경? 말하세요”

“포기하는건 어때?”

모두들 뭔 뜬금없는 소리라는 듯 나를 처다보기 시작했다. 그래, 그래. 이해 한다. 무슨 뜻인지 갑자기 그러니까 황당하겠지. 알았어, 이제 설명하려고 하잖아. 좀 기다려라.

“부기사단장님, 방금 뭐라고 말씀……”

“포기하자고. 항공 함대 사령관직 말이야.”

“……왜요?”

“어째서 입니까? 이건 좋은 기회……”

손을 들어 모두의 말을 끊은 다음 나는 입을 열었다.

“지금 우리는 어떤 상황에 처해있지?”

“예?”

“지금은 전시다.”

“예. 지금은 전시에요. 평시라면 황녀인 저에게 이런 기회조차 오지 않았겠죠.”

“그래. 그렇기 때문에 내가 이런 말을 하는거야. 지금은 전시야. 말 그대로 전쟁에서 이기기 위해서는 어떠한 수라도 사용할 수 있는거지.”

“예.”

“반대로, 이걸 나중에 정적들이 트집잡을 수 있다는거야. 그때는 전시였다, 라는 말을 변명으로 반박할 수도 있으니까.”

그들은 이렇게 반박하겠지. ‘전시였어도 그 황족이 전선 사령관을 맡는 선례를 만들었다는 것이 문제다. 그렇게 되면 앞으로 황족들이 이번 사건을 이유로 군 지휘권을 요구할 수 있고, 그건 제국군의 명령체계를 뒤흔드는 일이다.'

황제의 힘이 그다지 강하지 않은 에르데 제국이니, 귀족들이 날뛰기 시작하면 어디까지 갈지 모른다. 그걸 미리 경계할 필요가 있다.

“……그정도는 두렵지 않습니다. 황녀로서 그정도의 모욕과 모함은 감당해낼 수 있습니다.”

“또 하나가 있어. 지금 이상황에서 네가 함대 사령관이 되면 반황제파를 크게 자극하는 꼴이 되지. 지금 여기서 파벌이 갈려버리면, 이후 합동 작전에서 차질이 생길 수 있어.”

귀족들의 공통점은 자존심이 강하다는 점이다. 반데그라프 소장이 사냐 공주에게 사령관을 ‘제안’한 지금, 반황제파 귀족들의 자존심은 상처입었다고 해도 무방할 것이다. 자신들도 있었음에도, 원래라면 군 지휘권을 가져서는 안되는 황족이 사령관에 내정되었다. 이 말은 다른 의미로 말하자면 그들의 전공은 충분하지 않다는 말이 되기도 한다. 폼생폼사 귀족들이 반발할 이유가 되기도 한다.

사냐 공주가 이번 사령관직 내정을 받아들일 경우, 반황제파 기사들은 자신들 중에서 지휘관이 뽑히지 않았기 때문에 자존심에 상처를 입는다. 반대로, 사냐 공주가 이번 내정을 거절할 결정할 경우 황제파 기사들은 조금 아쉬워할 수 있으나, 사냐 공주는 ‘선례’를 따른다는다고 하면 달랠 수 있다. 명분이 있으니까.

반황제파의 기분을 왜 맞춰주냐고 말할 수도 있다. 사냐 공주는 황족인데, 그런게 무슨 상관이냐고. 하지만, 사냐 공주는 황녀이기 때문에 일거수일투족 하나하나가 정치가 되게 된다. 그말인 즉슨, 전쟁이 끝난 다음을 생각해야 한다는 말이다.

“그래서, 결론을 말하자면 차라리 중앙에 건의해서 새 지휘관을 보내달라고 하자.”

모두들 입을 다물었다.

사냐 공주는 꽤나 고민하는 눈치였다. 아무래도 내 말을 듣고 심란했던 것이겠지.
덕분에 내려진 결론은 아무것도 업었고, 우리는 별 성과도 없이 그날 저녁의 모임을 해산했다.

그리고 다음날.

와스프의 기사단장들과 경폭격 기사단의 기사단장이 부관들을 대동하고 반데그라프 소장의 천막에 들이닥쳤다. 반데그라프 소장의 호출을 받아 그곳에서 켈더프 중장과 함께 항공 함대 재편을 논의하던 우리로서는 꽤나 당혹스러운 일이었다.

“뭔가?”

황당하다는 얼굴로 자신의 텐트에 들이닥친 기사단장들을 쳐다보는 반데그라프 소장이었다. 뭐, 나는 처음 보는 일도 아니고 하니 그다지 크게 놀라지 않았지만. 괜히 항공모함을 ‘100여명의 도련님들을 모시고 전투하는 배’라고 부르는게 아니다.

“건의할 것이 있습니다.”

어째서인지 모르겠지만 중령급 기사단장들을 제치고 입을 연건 마울러 대위였다.

“대위, 지금 거기서 뭐하나?”

아까 왜 밖으로 나가나 싶었더니 그 이유 때문이었냐.

“저희 37 기사단과 항공모함 와스프의 기사단장님들, 그리고 경폭격 기사단의 기사단장님은, 저희 37 기사단의 기사단장 켈더프 중령님을 항공 함대 사령관으로 건의합니다.”

오, 그거 나쁘지 않은데. 대놓고 찬성하지는 않겠지만, 지금 당장 우리가 갖고있는 여러 문제는 한번에 해결되는 셈이다. 물론 마울러 대위는 전혀 다른 이유로 이런 제안을 해온 것이겠지만.

“어제 분명히 말했지만, 항공 함대의 지휘관을 결정할 권리는 내게 있다. 귀관들에게 있는게 아니야.”

“저희에게도 지휘관을 추천할 권리는 있습니다만?”

“내게도 듣지 않을 권리가 있지. 귀관들의 의견과는 무관하게 이건 결정된 상황이니 그만 돌아들 가게.”

“조금만 다시 생각해보시는건 어떻겠……”

​애​애​애​애​애​애​애​애​애​애​애​애​애​애​애​앵​

마울러 대위의 말이 마저 끝나기도 전에 공습 경보를 알리는 사이렌이 열심히 울기 시작했다.

서로를 마주본 나와 사냐 공주의 눈이 허공에서 부딛혔다.

“출격하자.”

이 책을 좋아하시는 분들이 좋아하시는 다른 책

댓글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