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째날 낮 : 소환자, 모조 사냥꾼(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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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오사카 린과 에미야 시로가 런던에서 부터 도착한 후 3일이 지났다. 그녀의 선배- 에미야 시로는 꽤나 키가 커져 있었다. 아처와 비슷한 수준으로 자랐지만, 머리색과 피부는 그와는 정 반대의 색을 띄고 있었다. 그녀의 언니는, 이후 그에게는 몰래 그녀에게 말했다. 운이 나빴다면, 지금 아처와 비슷해졌을지도 모른다고. 무슨 일인지 그녀는 물으려고 했으나 그녀의 언니는 질문할 틈을 주지않고 다음날부터 토오사카 가로, 매일 하교 후 마술강습을 받기 위해 출근하라고 명했다. 그녀는 무언가 찜찜한 기분을 감추지 못한 채로, 하교 후마다 토오사카 가로 향했다.
토오사카는 그녀에게 많은걸 가르쳤다. 토오사카 가의 기초가 되는 보석 마술부터, 마토 사쿠라의 근본인 가공과 검은 성배의 제한적인 이용도. 그녀는 만족스러웠지만- 아니, 만족스럽다는 수준이 아니다. 획기적일 정도로, 토오사카가 가르쳐 주는 모든 것은 그녀에게 필요한 것들이었다. 마토 사쿠라의 포텐셜을, 토오사카 린은 직접 개발해서 올려주고 있었던 것이다.
정리 정돈된 토오사카 저택의 문을 열어젖힌 그녀는, 언제나 조심스럽게 실례합니다라는 말과 함께 저택 내부로 들어섰다. 2층, 안방으로 가는 계단, 그리고 응접용 거실. 안쪽으로 들어가는 복도의 끝에는 주방이 있다. 그리고 지하로 내려가는 문을 열고 내려간다. 토오사카 저택의 지하에는 가문의 공방이 존재한다.
마술사의 공방은 그야 말로, 요새이자, 핵발전소와 같다. 잘못 건들면 무언가 터질 가능성이 존재하고, 영맥에서 가장 가까운 토오사카 저택의 폭발은 곧 미야마 쵸의 초토화로 이어진다는, 조금 과장 섞인 듯해 보이는 그녀의 언니의 설명을 기억해냈다. 조명 없는, 어두운 계단을 조심히 걸어 내려간 그녀는 공방의 중심에서, 그녀의 언니가 여러 보석들을 올려두고 책상에 엎드려 자고있는 것을 봤다. 정말, 칠칠치 못하다니까. 선배에게 전염된 걸까? 라며, 그녀는 살짝 웃으며 학원의 자켓을 언니의 등에 덮어두고 옆의 의자를 꺼내 낀 먼지를 털어낸 후 털썩 앉았다. 먼지 내음이 하나도 없는 걸 보아하니, 돌아온 동안 청소를 제대로 했나 보다. 아니면 그 붉은 궁병의 집관리가 뛰어났거나. 아무리 생각해도 후자기에, 그녀는 책상에 올려둔 보석들을 만지기 위해 손을 뻗었다. 그때, 옆에 있던 그녀의 언니가 희고 나긋나긋한 손으로 그녀의 손목을 잡았다. 그리고 부스스한 얼굴로 일어나, 고개를 저었다.
「이, 일어나 있었어요?」
「방금…….」
그녀는 무언가 죄지은 느낌이 들었다. 손목을 잡은 이유는, 아마 그 보석은 언니가 사용할 보석들 일 것이었다. 아름다워서 무심코 만지려고 든게 잘못이었지만, 그녀의 언니는 그렇게 크게 그녀를 다그칠 생각은 없는 것 같았다.
「그 보석들 만지지 않는게 좋아.」
「어째서예요?」
「대부분 저주가 걸려있어. 한많은 주인에게 붙잡혀 있던 보석들이야. 헐값에 팔아넘길때 부터 알아챘어야 하는데, 그 빌어먹을 브로커 자식이…….」
토오사카는 주먹을 꽉 쥐면서 부들거렸다. 아마, 대단하게 범접할 수 없을 정도로 사기를 당한 느낌일 것이다. 몸을 일으켜 일어난 토오사카는 그녀의 자켓을 가볍게 책상 위에 올려둔 후에 어제 저주를 풀기 위해 무리를 좀 했으니, 자기 위해 좀 올라가 있겠다며 지하를 떠났다. 졸지에 혼자 남은 그녀는 조금 서운한 마음이 들었지만, 그래도 괜찮다며 자신을 토닥였다.
몇 시간 정도 자고 있을테니, 그 참에 안을 좀 둘러볼까.
순간, 그녀의 머릿속으로 지나가는 한 생각. 보석. 몇가지 보석들은 대부분, 저주가 풀려있었다. 그녀의 마력으로 알 수 있었다. 깊은 저주는 마력을 용존하고, 용존된 마력들은 곧 '마술'로서 기동할 수 있게 되는 촉매제가 된다. 이 저주를 풀면 용존된 마력을 얻을 수 있다. 그녀는 손을 뻗어, 네다섯개 정도 되는 보석들을 만져보기 시작했다. 흑요석과 홍옥(루비), 사파이어. 저주가 풀려 있어 안에 농축된 마력의 양을 느낄 수 있었다. 아마 저주를 풀고나서 곧장 토오사카는 마력을 주입했을 것이었다. 정말, 일 처리를 너무 빠르게 한다니까요. 그리고 마지막으로 남은 보석을 보려고, 눈을 돌렸다.
혈석.
아직, 저주가 풀리지 않았다. 그녀는 흠칫하며, 뻗으려던 손을 거뒀다. 녹빛에, 혈관이 지나가듯 적색 빛이 가득 찬 저주받은 보석. 그걸 자각한 순간, 혈석이 말을 걸었다. 단순한 환청을 유발할 정도로, 혈석에 걸린 저주는 농밀했고 깊었다.
「자유롭게.」
「무슨……」
「날 자유롭게 해줘.」
손을 뻗는다. 이미 혈석이 시킨 대로, 어느새 그 저주받은 혈석에 그녀는 손을 올리고 있었다. 마술 회로가 강제로 젖혀지면서, 검은 성배의 마력이 그녀의 혈관을 타고 흘러내렸다. 납이 혈관을 채워가며, 혈석이 무거워진다. 진흙이 혈관을 지나가는 느낌. 그녀가 정신을 차렸을땐, 이미 혈석에 충분하다 못해 넘칠 정도의 마력을 집어넣고 있었다. 그녀는 곧장 소스라치게 놀라며 혈석을 땅에 던졌다. 깨진 혈석에서 흘러나온 검은 마력이 아처를 소환할때 쓰였던 마술진과 공명하며 붉게 빛났다.
마토 사쿠라는, 그때서야 깨달았다. 자신이 무슨 짓을 한 건지.
하지만 깨달았다고 해서 소환 의식을 멈출 수는 없었다. 어느 깊은 저주와 강력한 성배의 마력, 그리고 마술진과 공명하기 시작한 의식은 폭주하는 기관차마냥 흘러가기 시작했다. 어느 영창도 존재하지 않는 주제에, 마술진은 그 결을 따라서 행동을 시작했다. 마술진이 존재의 가치에 맞게 변형되어간다. 새겨졌던 각인과 문양은 어느새 어느 새로운, 위대한 자의 소환을 위해 변형되었다.
「아, 안 돼……!」
그녀는 가까스로 손을 뻗었지만 무리라는걸 이내 깨달았다. 소환되고 있는 마술진에 외부의 작용이 개입하면, 불안정해진 마술진이 폭주해서 폭발하거나 아에 다른게 나올 수도 있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뭐가 나오든, 그녀는 도망치지는 않을 생각이었다. 왼손의 주각呪却을 해방하고, 손바닥을 소환진으로 향한다. 그녀의 마술은 검은 소성배의 마력으로 구현한 그림자. 날서고 투박하지만 그만큼 위협적인 마술이었다. 뭐가 나오든, 그녀의 언니와 서번트 아처가 올때까지의 시간 벌이 정도는 할 수 있을 것이다.
깨진 혈석에서 영창詠唱을 반복한다. 환청에 가까운 음에, 마토 사쿠라는 순간 움찔했다. 소스라칠 정도의 낮선 음.
----- 그는 피의 권속이자 피의 조언자이며, 피의 지배자이자 인간이 아닌 자.
---- 고도 야남에서 만들어진 존재이자 초월자.
--- 그 본질에 도달하지 못한다고 해도 그의 껍질과 거짓 고도古都를 여기에 강림시킨다.
-- 모조된 것의 그릇을 빌어 여기에 비니,
「그만!」
- 자, 다시 사냥의 밤이 시작된다.
그녀는 뇌를 깨트릴 정도로 강력한 두통을 느껴 관자놀이를 짚으며 비틀거렸다. 하지만 눈은 그대로 소환진에 머물러 있었는데, 깨진 혈석과 마력이 융해融解되어 액체가 되어 있었다. 그리고 서로 섞여, 피색으로 마술진에 퍼졌다. 기분 나쁠 정도로 정교한 피의 색. 순간 액체가 뒤끓더니 그 사이에서 어느 남자가 기어나왔다. 액체는 그 남자에게 들러붙지 않고 있었는데, 그녀는 그 광경을 그저 지켜보기만 했다. 얼빠진 상태로. 남자가 그 액체들 사이에서 나오자, 액체들은 곧장 모이더니 다시 깨진 혈석 파편으로 돌아갔다.
그녀는 왼손에 단단히 마력을 장전한 후 남자의 행동에 대비했다. 위협적인 행동을 하려는 낌새를 보이는 그 순간, 그림자로 갈기갈기 찢어버릴 생각이었다. 하지만, 빅토리아 시대의 옷차림 같은 남자는, 털썩하고 쓰러지더니 다만 그녀에게 손을 뻗을 뿐이었다.
「……아?」
「도……와줘, 제발…….」
손을 뻗으며 탈진한 그를 그녀는 반사적으로 마술진에서 끌어내서 상태를 살폈다. 쇼크 상태였다. 몸을 추스릴 수 없을 정도로 떨고 있었고, 식은땀이 이마 위에 송골송골 맻혀있었다. 몸은 차갑게 식어서 얼음장을 만지는 듯 했다.
안 돼, 어떻게든 해야…….라고 생각하며, 그녀는 걸치고 있던 보라색 가디건을 벗어 그의 몸을 감쌌다. 덥혀질 기미는 보이지 않았지만, 불길한 소리에 그녀는 소스라치며 반사적으로 뒤돌았다. 긴장의 끈을 놓은게 실수였다며, 그녀는 자신을 다그치면서 다시 왼손에 마력을 제어넣었다. 뒤돌아본 그녀의 앞에는, 이때까지 본 적 없는 괴물이 네 발로 서 있었다. 누런 안광, 회색 털과 비쩍 마른 몸. 두 발로 선다면 3m는 거뜬히 넘을 크기다-라고, 그녀는 제대로 준비하며 생각했다. 과부하가 될 정도로 집어넣은 마력을 그림자로 구현해낸다. 불길한 세 개의 검은 날이 지하의 돌바닥에서 솟아나 목표를 향해 쇄도한다.
「하압!」
기합과 함께 솟구치는 검은 칼날. 목표는 그르렁거림과 함께 민첩하게 피해냈다. 어둠에서 번뜩이는 안광은, 그녀가 본 적이 있는 안광이었다.
야수.
예상외의 민첩함에 그녀는 인상을 찌푸리며 다음 날을 준비했다. 야수는 그걸 기다려 줄 용의는 없었다. 곧바로 그녀에게로 쇄도하는가 싶더니- 그녀의 등 뒤에 있던 「소환자」를 노리기 위해 틈을 파고들었다. 짐승의 촉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노림수. 그녀는 아차 하는 생각과 함께, 조건반사로 그림자를 휘둘렀다. 짐승은 태초적 감이 뛰어난 것인지 다리 한쪽이 긁히는 것으로 끝냈다.
「칫.」
방금 전 조건반사는 카운터였기도 했기에, 그녀는 혀를 찼다. 짐승은 으르렁거리며 이제 확실하게 그녀를 위험으로 인식하고 있었다. 그녀는 날을 다시 준비하면서, 창을 준비했다. 야수와 그녀는 쓰러진 누군가를 두고 대치했다.
그리고 짐승이 소환자를 향해 다시 파고든다. 그녀는 준비한 세 개의 그림자를 다시금 쇄도시켰다. 짐승은 그걸 너무나 손쉽게, 천장에 달라붙는 것으로 피해냈다. 확실한 위협을 배제하기 위해, 짐승은 소환자가 아닌 그녀에게로 뛰어들었다. 번뜩이는 누런 안광과 늑대의 열린 턱이 그녀의 눈 앞에 확실히 다가왔다. 하지만, 그녀는 두려워하는 기색 없이, 오히려 씩 웃었다. 그리고 왼손을 들어, 준비한 창을 장전하고,
「알 고 있었어- 그렇게 올 것을 말이야!」
그대로 투창했다.
비행체가 아닌 이상 배럴롤 같은 움직임은 불가능. 야수의 떡 벌린 입 속으로, 그림자로 만들어진 창은 들어가 두개골을 부수고 그대로 지하의 천장까지 관통해서 박혔다. 그리고는 야수에게서 더러운 피가 뇌수와 섞여서 질질 흘러나왔다. 그녀는 한숨을 푹 내쉬면서 긴장을 털어냈다. 성배의 마력을 끌어쓰는 리바운드를 걱정해야 하지만, 지금은 그저 조금 쉬고싶었다. 털썩하고 주저앉은 그녀는 다리를 접어 무릎을 안았다. 아직도 뛰고있는 심장을 진정시키기 위해서. 마력이 흩어진 그림자창은 곧 소멸했고 야수는 지하의 바닥에 낙하음과 함께 철퍼덕하고 떨어졌다.
그 소리에 그는 깨어났는지, 아직도 떨리는 몸을 일으켜 세웠다. 회복한 것이겠지. 그는, 앉아있는 그녀에게 시선을 돌렸다. 검은 후드에 입가 위로의 얼굴은 잘 보이지 않았다.
「저건...?」
「저도 잘 모르겠네요.」
그의 물음에, 그녀는 살짝 미소지으며 대답했다. 그는 고개를 끄덕이더니 주춤거리며 야수의 사체에계 다가갔다. 허여멀건 뇌수와 응고되기 시작한 피가 그를 불렀다. 아니, 정확히는 그가 이끌렸다는게 옳은 표현일 것이다. 더러운 시체에, 그는 무릎을 꿇고 손을 올렸다.
그리고 단 하나의 영창 구절만이 그의 머릿속을 맴돌았다. 해방시켜 달라는 듯이, 그 영창을 읊어서 머릿속에서 내보내달라는 듯이 깨질듯한 그의 머리 안에 벌레마냥 기어들어가 계속해서 뇌를 파먹는 듯 했다. 그는 이를 꽉 아물다가, 영창 구절을 읊었다.
「I am fake hunter, (나는 가짜 사냥꾼이자,)」
「for follow of blood's echos. (피의 유지를 받드는 자이다.)」
단 하나의 구절, 자신의 이명異名을 고하는 그.
수많은 지식이, 수많은 과거가 그의 뇌를 관통하듯 스치고 지나갔다. 자신이 누군지, 자신이 무엇을 했는지. 불확실하고 구멍 뚫려 있었지만 스스로의 정체 정도는 깨달았다. 그리고 기본적인 사냥 지식과, 톱날의 사용법. 권총의 효율적인 이용법 등의 지식들.
야수의 뇌수가 섞인 피와 사체가 아까까지의 응고됨이 거짓말 같이 순식간에 기화하듯 사라져갔다. 그는 주먹을 쥐었고, 그리고 곧장 오른손에 기괴한 모양의 둔기가 들려 있었다.
휜 나무 손잡이 부분에는 닳은 듯한 붕대가 묶여있었고, 연결되어 있는 날 부분은 기괴한 모습의 톱날이었다. 전체적으로 면도칼 같은 생김새였지만 마치 괴물의 이빨로 만든 듯한 모습을 띄고 있었다. 그는 소환된 그 물건을 알고 있었다. 톱 단창. 야수 사냥용 무기. 손을 다시 쥐었다 펴는 것으로 톱을 다시 '어디론가로' 넣을 수 있었다.
방금까지의 허약했던 빈혈 환자가 거짓말 같이, 멀쩡하게 서는 것을 본 그녀는 그저 멍한 표정으로 검은 후드를 뒤집어 쓴 남자를 보기만 했다.
「... 괜찮은가요?」
「저, 저는 괜찮아요! 다만, 그... 누군지 물어봐도 될까요?」
그녀의 물음에 그는 곤란한 듯이 고개를 돌렸다.
「사실, 저도 저를 잘 모르겠습니다. 기억이 온전치 않아요. 아무런 기억이 없는데, 지식은 들어차 있습니다. 사냥 방법이라던가, 방금같은 무기의 사용법 같은것 말이죠.」
그리고 그가 팔짱을 끼고 곰곰히 고민하기 시작했다. 그녀는 그런 그에게 잠시 뜸을 들이다 저주받은 혈석 이야기와 실수로 그를 소환해버린 이야기를 전부 했다. 검은 후드 아래서, 그가 무슨 표정을 짓는지 그녀는 잘 알아챌 수 없었지만 상대방이 놀라울 정도로 침착하게 설명을 듣고 이해하는걸 보고 마토 사쿠라는, 아마 그가 마술에 소질이 있는게 아닐까- 하고 생각했다. 단순한 착각이었지만. 곧 비정상적으로 밀집한 마력의 흐름에 아처와 토오사카가 뛰쳐 내려왔지만, 사쿠라의 정황설명에 둘은 허탈한 표정으로 납득하고는 아처는 다시 영체화로 돌아갔고 토오사카는 자세한 조사를 위해 자신을 「사냥꾼」이라 소개한 남자를 끌고 공방 내부의 서재로 끌고들어갔다.
그는 조금 혼란스러운 표정으로 토오사카의 리드에 따라 들어갔다. 그리고 정리되어지지 않은 서재의 내부 의자에 강제로 앉혀졌다.
「당신, 사냥꾼이라고?」
「기억은 없지만, 지식에 따르면.」
「좋아, 손목이 위쪽을 향하게 내밀어.」
산발이 된 윤기있는 검은색 머리카락을 대충 묶어올린 모습에, 그는 움찔했지만 날카로운 푸른 눈동자의 눈빛에 순순히 안쪽 손목을 보여줬다.
거기에는 그가 모르면서도, 알고있는 문양이 있었다. 속칭 피의 유지를 뜻하는 문양, 맨 아래의 점과 그 위로 역전逆轉된 횃불 모양. 그 문양의 밑에는 알아보기 힘든 숫자가 적혀 있었다.
「이 문양... 고대의 사냥꾼들의 문양에서도 본 적 없어. 당신, 누구야?」
완벽하게 경계하는 눈빛을 쏘아내는 그녀에게, 그는 침묵으로 일관했다. 그녀는 그런 그를 보고 서재에 남아있는 몇가지 보석들로 무력으로 캐낼까- 했지만, 그렇다고 해서 가능하다는 보장도 없었고, 안다면 눈빛이 흔들렸겠지만 그는 그런 기색도 없었다.
「... 소환된 기억만이 있습니다. 그 전 기억은 텅 빈 공백입니다. 아에 없어요.」
「하아...」
토오사카는 깊은 한숨을 내쉬더니 서재에서 몇가지의 두꺼운 가죽 고서를 꺼내 자료를 찾기 시작했다. 그런 그녀를 두고 그는 눈치를 보며 일어나 서재 안을 돌아다니기 시작했다. 수많은 고서들, 그리고 그 안에 잠든 수많은 고도의 지식들. 그는 잠시 그것들에 대해서 호기심이 들었지만, 찾아 보지는 않았다. 그러다 흥미가 생긴 책에 손을 데려고 할 때, 그녀가 그를 멈춰세웠다.
「만지지 마, 여기 있는 책들은 전부 마도서니까.」
「마도서...?」
「그래, 마도서. 마술의 지식을 글로 옮겨놓은 책. 몇가진 약하지만 대부분 지식이 없는 일반인이 보면 미쳐버릴 정도니까, 미치기 싫다면 건들지 않는게 좋아. 어느 정도는 정보를 얻었으니, 이제 대충 설명은 해줄 수 있어. 정확하진 않겠지만.」
그녀의 그런 말에, 그는 다시 자리에 앉아서 정중하게 말했다.
「부디.」
「나 참, 어디 사는 어떤 정의 바보같다니까...」
그런 그의 모습에 그녀는 싱긋 웃으면서 운을 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