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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아담, 두명의 황제


1화


서울 한복판에 우뚝 솟은 어느 고급 호텔.
고급스러운 내부와 화려한 장식들, 그리고 많은 종류의 음식이 진열된 레스토랑은 수십년의 역사를 자랑한다.
그곳에서 한 끼 식사를 하기 위해서는 몇십만원을 지불해야 하지만 손님은 하루도 끊기지 않았다.
오늘밤도 어김없이 사람들이 레스토랑을 가득 채우고 있었는데 신기하게도 모두 같은곳을 바라보고 있었다.

"학생 맞아?"
"에이, 젊은 피아니스트겠지."

고급진 와인색 카펫이 깔린 레스토랑의 정중앙에선 한 소년이 그랜드 피아노를 연주하고 있었다.
검고 총명한 눈을 가진 그는 음악의 힘 때문인지 염색한 금발 때문인지 고귀한 귀족같은 아우라를 물씬 풍기고 있었다.

"슈베르트의 마왕이던가?"
"나 클래식은 잘 몰라서.."

엄숙하게 매너를 지켜야만 쫓겨나지 않는 호텔에서 사람들이 식사를 멈추고 수군거리고 있었다.
그런 사람들의 수군거림 속에서 웅장하고 장엄한 선율이 들려왔다.
사람들은 그 소년의 연주에 빠져들어 음식이 식는것 따위는 안중에도 없어 보였다.
웨이터들도 그 자리에 멈춰서 연주를 감상했고 심지어는 호텔 관리자도 곤란하다는 표정으로 가만히 지켜보고 있었다.

"대단하다.."
"내가 배워서 아는데 저거 무지 어려워!"
"쉿, 조용히 해. 듣고 있잖아."

호텔 관리자는 순식간에 레스토랑이 피아노 연주회장으로 바뀐 착각에 빠졌다.
듣고 있던 사람들도 정말 이곳이 연주회장인 것처럼 부스럭 소리를 내거나 자리에서 일어나지 않고 수군거리기만 했다.
마침내 그의 연주가 끝나자 앉아 있던 사람들은 박수를 쳤고 누구는 기립박수를 하기도 했다.

"감사합니다."

소년은 자리에서 일어나 관객에게 인사하듯 정중하게 사람들에게 허리를 숙였다.
사람들은 그제야 자리에서 벗어나 소년에게 다가갔다.

​"​피​아​니​스​트​이​신​가​요​?​ 사인 부탁 드릴게요."
"아니에요. 전 그냥 피아노를 좋아하는 대학생인걸요."

그런 소년의 말에 사람들은 적잖이 당황한 듯했다. 누구는 그가 피아니스트일 것이라 말했지만, 키나 외모로 보아 고등학생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동안이라는 소리 많이 듣습니다. 그럼, 저는 이만 가볼테니 식사를 계속 해주세요."

소년은 멋쩍은 미소를 짓다가 자신의 맞은편에서 자신을 째려보는 호텔 관리자를 보고는 이내 자리를 떴다.
피아노를 연주한 소년이 레스토랑에서 나가자 호텔 관리자가 영업용 미소를 지으며 아직도 모여있는 사람들에게 다가갔다.

"자, 고객님들. 이제 다시 자리에 착석하여 식사를 재개해주십시오."




소년은 호텔에서 나와 길거리에 나있는 가로수를 따라 걸었다.
나름 여자들에게 인기를 끌 것같은 외모의 그가 양복을 입고 길을 걷자 역시나 사람들의 이목이 집중되었다.

"어머, 모델인가봐."
"그러게 비율 봐. 대박-. 키가 작은데 얼굴도 작아."

길에서 소년을 보고 수군거리는 이야기가 그에게도 들렸는지 그의 귀가 살짝 붉어졌다.
그리곤 멋쩍은 미소를 지으며 걸음걸이를 재촉했다. 십분쯤 걸었을까 소년의 양복 바지 주머니에 있던 휴대폰이 울리기 시작했다.
그의 휴대폰에서는 파헬벨의 캐논이 흘러 나왔고 길을 지나던 사람들은 노래소리에 그를 쳐다 보았다.
그러자 소년은 볼을 붉히며 허겁지겁 주머니에서 휴대폰을 꺼냈다.

'어휴, 떨어뜨릴뻔 했네.'

소년은 속으로 안심하며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안녕하세요. 박원도님이 맞추신 알림이 작동되었습니다. '플루톤'에서 '책사 면접'을 보셔야 합니다."
"아-, 엑스인가. 고마워."

원도는 고맙다는 말을 전하고 바로 전화를 끊었다.
그에게 걸려온 전화는 그제 저녁에 그가 설정 해놓은 '전화 알림'이다.
휴대폰의 일정에 기록을 해두면 시각에 맞춰 전화가 걸려온다.
누구에게서 전화가 오냐고? 휴대폰 그 자체가 전화를 걸어준다. 물론 전화비는 사용자가 부담.

"빨리 가야겠네-."

원도는 양복과 구두를 신은 것을 후회하였지만 이내 조깅하듯이 달리기 시작했다.
길거리를 걸어가던 사람들은, '금발의 양복을 입은 잘생긴 남자'가 어두운 밤에 달려가는 모습을 쳐다보았다.
아마 원도를 본 그들의 마음속에는 대부분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을 것이다.

'영화 찍나?'

***


플루톤!
내가 드디어 찾은 완벽한 나의 무대!
다른 게임들에선 할 수 없었던 색다른 플레이를 할 수 있는 공간. 기존에 존재했던 '무식하게 싸우기만 하는'게임에선 진정한 재미를 느낄 수없다.

[이 세상은 힘이 전부가 아니다]

-라는 메세지를 던져주는 가상현실게임은 국내 최초였다. 팀 플레이와 세력간의 대결을 중심으로 만들어진 게임. 즉, 개인이 홀로 왕이 된다는 것은 무리라는 말이다.

'하지만 그 세상에서는 힘이 전부가 아니라면 나는 분명 왕이 될수 있다!'

오늘 저녁에 있을 '책사 면접'은 왕이 되기 위해 세운 나의 첫번째 목표이다. 거대한 길드들이 왕의 자리를 놓고 충돌하는 게임에서 왕이 될수 있느냐 물어보면 자신있게 그렇다고 대답할 수있다. 상당히 재수 없어 보일 수도 있겠건만, 나는 천재니까.

-플루톤에 입장합니다. 부디 헤드셋을 벗지 마십시오.

플루톤은 다른 가상현실게임처럼 캡슐을 이용하여 즐길수 있다.
내장된 헤드셋을 쓰고 캡슐 안으로 들어가 앉으면 준비 완료.
그대로 전원 버튼을 누르면 가상세계에 접속된다.

-'아담'님. 환영합니다. 플루톤에서 즐거운 시간 보내시길 바랍니다.

이내 내 주변이 새하얗게 바뀌었고 나는 '아담'이 되어 한 마을로 소환되었다.
화려하면서도 수수한 듯한 느낌의 조명이 밝게 빛나는 마을이었다.
마을에는 호객 행위를 하는 잡화상인과 뜨거운 화로 앞에서 철과 씨름하는 대장장이도 있었다.
많은 사람들 사이에서는 머리 위에 유저네임이 적힌 이계인들, 즉 플레이어들도 걸어다녔다.
마을 뒷편에는 높아 보이는 산이 솟아 있었고, 마을의 정중앙에는 맑은 시냇물이 흘러다녔다.

"책사가 되러 가볼까?"

나는 책사 면접이 열리는 영주성으로 가기 위해 시냇물을 건너는 다리를 지났다.
시냇물에서는 작은 배가 지나다니면서 잡동사니를 파는 모습도 보였다.
현실과는 다른, 높고 별이 많은 하늘과 폐를 시원하게 해주는 맑은 밤공기가 나를 기분좋게 했다.
어차피 책사에 합격할 자신이 있었지만 왠지 더욱 좋은 예감이 들었다.

그 좋은 예감은 [쾌마]를 만나고 부서졌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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