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
“늦었잖아.”
처음 들려온 것은 그런 목소리였다.
살짝 화가 난 듯한 목소리. 이제야 왔냐고 닦달하는 듯한 목소리. 하지만 고개를 들어 그녀의 얼굴을 보았을 때, 그녀는 울고 있었다.
마치 오랜 시간을 기다려온 듯 한.
나는 그녀와 헤어진 지 고작 하루밖에 되지 않았지만, 그녀는 긴 시간동안 나를 기다려온 것이다. 나는 아무 말 없이 피식 웃고는 그녀를 끌어안았다.
그녀는, 미츠하는 아무 말 없이 내 행동에 어울려주었다.
아무 말 없이 그렇게 서로의 체온을 느끼며 우리는 울고 있었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하다는 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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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에겐 또 무진장 소리를 들었다.
하지만 내가 어디에 있는지를 알려주자, 정확히는 미츠하가 전화기를 넘겨받자 아빠는 그 이상 아무것도 캐묻지 않았다. 정다운 목소리, 우리 아빠… 이런 사람이었나? 난생 처음 듣는 아빠의 상냥한 목소리에 소름이 돋는 느낌이다.
그렇게 생각하고 있자니, 전화를 끊은 미츠하가 이쪽을 바라보며 피식 웃었다.
“타치바나 아저씨는 여전하시네.”
“…너 우리 아빠랑은 언제부터 그렇게 친해졌어?”
“타키군이 모르는 사이, 네가 친해지지 않으려고 하던 순간.”
그녀는 그렇게 말하고는 혀를 살짝 내밀어 베에 하고 놀리는 모습을 했다.
…나보다 자기가 더 우리 아빠랑 친하다는 걸 어필하고 싶은 건가.
나는 가만히 그녀가 타준 핫초코의 맛을 음미했다. 미츠하의 체온을 느끼며 껴안고 있을 때는 마냥 좋았는데, 모든 게 끝나고 나자 나는 지금이 10월의 도쿄라는 걸 깨달았다.
…춥다.
그러고 보니 아무리 기온이 낮지 않다지만 나 용케도 그 산에서 얼어 죽지 않고 내려왔구나.
이것도 무스비라는 건가.
무심코 그렇게 생각하고 있자니, 눈에 들어오는 것이 있었다.
“미츠하.”
내가 부르자 마침 저녁밥을 차리고 있던 그녀가 응? 하고 고개를 돌린다.
“조금 늙었네.”
순간 뭔가 툭하고 떨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자세히 보니 그녀는 지금 생선의 머리를 손질하고 있는 중이었다.
일식, 고등어구이라도 할 생각인가. 아니, 그보다.
저기, 미츠하씨?
상냥하게 웃는 모습으로 미츠하가 몸을 돌려 이쪽을 바라본다.
손에는 식칼을 들고. 날이 잘 선 식칼의 주변으로 살짝 달라붙어있는 생선의 흔적이 보였다.
…….
진정하자, 이럴 때 어떻게 해야 하더라?
왠지, 어젠가. 아니 그녀의 입장에선 3년 전인가? 이런 비슷한 일이 있었던 것 같은 기분이 드는데. 나는 애써 정신을 타이른 후, 말을 바꿨다.
“미츠하, 머리 다시 길었네?”
“…….”
여전히 화가 풀리지 않은 것인지, 그녀는 잠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러다가 작게 한숨을 내쉬더니,
“타키군에겐 어제 있었던 일일지 몰라도 나한텐 3년 전이었으니까.”
“그렇지.”
물론 지금의 내게 있어도 어렴풋이 어제 본 미츠하의 얼굴이 비쳐 보이는 것만 같았지만.
울고 있던, 단발머리는 조금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지금의 미츠하는 완벽히 내 이상형에 가까웠다.
그러고 보니… 내가 긴 검은 머리를 좋다고 느꼈던 게 언제부터였지?
…어쩐지 기억이 안 난다.
뭔가 중요한 것을 잊고 있는 기분이 들었다.
그런 저런 생각을 하고 있자니 미츠하가 이쪽을 향해 볼을 불리며 살짝 인상을 쓰더니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정말, 내가 얼마나 찾아다녔는지도 모르면서.”
“나도 열심히 찾아다녔거든? 3주간.”
“난 3년간.”
“죄송합니다. 살려주세요.”
그러는 사이 요리가 완성되고 미츠하는 능숙하게 식탁에다가 요리를 차리기 시작했다. 평소 아버지와 먹었던 레토르트나, 간단조리식품들에서 오랜만에 누군가가 차려주는 밥을 먹는 기분이 든다. 거기다가,
“…이 간. 한 달 만이네.”
요츠하가 귀찮다고 전날 ‘내’가 끓였다며 내놓았던 음식들을 먹으며, 나는 미츠하가 만들어준 요리를 이미 먹은 적이 있었다. 전통 일본 요리. 그땐 왠지 식상하단 생각에 있던 식재료를 가지고 이탈리아 요리에 도전했던 적이 있었던 거 같은데.
“맛있어?”
그렇게 묻는 미츠하에게, 나는 그저 웃어만 보이려다가.
“…응. 맛있어!”
순간 얼마 전의 일이 떠올라 일단 칭찬하고 봤다. 물론 내 입맛에는 그렇게 맞는 편은 아닌 식단이었지만, 사실대로 말했다면.
…허나, 미츠하의 표정이 금세 어두워졌다. 어라?
미츠하는 말없이 슬쩍 스푼을 들고 내가 먹던 그릇의 된장국을 한입 떠먹더니.
“…맛있을 리가 없는데, 맛있다고?”
“…….”
설마 떠보려고 일부러 맛없게 만든 거야?
그런 생각이 들어 당황하고 있자니, 인상을 마구 찡그리고 있던 미츠하가 갑자기 풉 하고 웃음을 터트리더니 배를 잡고 웃기 시작했다.
…뭔가 익숙한 패턴에 당한 듯한 그런 기분인데.
그렇게 생각하고 있자니, 웃음을 멈춘 미츠하가 말했다.
“어쩐지 그립네.”
“응.”
“타키군, 나 네가 들어줬으면 하는 이야기가 있어.”
“응.”
나도 너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어.
나는 아마도 널,
“이제 기억 난건데 타키군 내 가슴 주무른 거 한번이 아니지?”
…된장국 마시고 있지 않아서 정말 다행이다.
이런 분위기 아니었으면 아무 생각 없이 된장국 마시고 있다가 뿜을 뻔 했어.
침착하자. 방심하면 안 된다. 나는 속으로 식은땀을 흘리며 최대한 내 동요를 미츠하에게 들키지 않도록 노력했다.
“그, 그런 일 없다니까.”
“요츠하한테 다 들었다고 했잖아? 거기다가 너, 그냥 평범하게 가슴만 주무르고 있던 게…….”
범인을 취조하는 표정으로 거기까지 말하던 미츠하씨는 어째선지 거기서 말을 멈추고는 고개를 푹 숙였다.
…미츠하씨?
아, 이게 만화나 애니메이션에서 보는 귀까지 빨개졌다는 모습인가?
어느새 진정된 나는 그 모습을 가만히 바라보고 있었다. 무언가 만담 콤비처럼 여기선 자연스럽게 바보 같은 소릴 해야 한다는 의무감이 들었지만 진정했다. 여기서 말 한마디 잘못했다간 오늘이 기적적인 상봉일이 아니라 제삿날이 되는 수가 있다.
으으 하고 작게 신음소리를 흘리던 미츠하는 결국 “뭐, 그건 됐고!”하고 식탁을 쾅 치고는,
“그래서 어쩔 거야!?”
“어, 응, 뭐?”
갑작스러운 물음에 나는 당황해 그녀의 질문 의도를 파악하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다.
어쩔 거야라니, 뭘? 뭐를 어째? 아니 그보다 뭐 때문에.
…가슴을 만졌다.
…남자로써의 자존감을 위해 선은 넘진 않았지만, 충분히 쾌감을 느낄만한 짓도 했다.
…….
나는 그대로 식탁에서 일어나 말없이 미츠하의 앞에서 엎드려 머리를 땅에 박았다.
“죄송합니다! 책임은 지겠습니다!”
뒤늦게 얼굴을 들어보니 어쩐지, 의자에 앉은 체 다리를 꼬고 승리했다는 미소를 짓고 있는 미츠하의 얼굴이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