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사 귀찮은 그가 호위무사로 전직한 이유. (8)
이곳은 제인의 숙소.
“흐음…….”
나무망치를 두드리던 제인은 마스터 라트리아에게 받은 사당의 도면과 자신이 만든 사당을 번갈아 눈으로 힐끗 흘기고는 이마의 땀을 소매로 훔쳤다.
“역시 똑같이 만드는 건 무리인가…….”
어찌어찌 완성시키기는 했지만, 도면의 모양을 똑같이 재현하지는 못했다. 그것도 그럴 것이, 마스터 라트리아는 그 작은 사당은 그 용병 일족 건물의 축소판이라고 했다. 그래서 제인도 처음 마스터 라트리아에게 사당의 도면을 받았을 때는 상당히 놀랐었다.
“……그래도 뭐, 이정도면 괜찮겠지. 집 모양만 만들면 되니까.”
하지만 제인은 도면과는 다르지만 세련되게 완성시킨 작은 사당을 바라보며 의기양양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 루크의 집에서 몰래 가져온 향로를 놓고 향을 피우기만 하면 끝이다.
‘이, 이렇게 하면 되나……?’
향을 피운 제인은 묵념을 하던 루크의 모습을 떠올리며 천천히 고개를 떨구었다. 그리고 천천히 눈을 감으려던 그 때-
쿵-
“너 뭐하냐?”
“꺄악!”
투명한 유리창에 귀신처럼 머리를 들이민 루크 때문에 그만 졸도할 뻔 했다.
“까, 깜짝 놀랐잖아! 이 니트!!”
제인은 너무 놀란 탓인지 말을 더듬었지만, 온 몸을 써서 사당을 가리는 것을 잊지 않았다.
“들어간다.”
“적어도 문으로 들어와!”
루크는 제인에게 일방적으로 통보하고는 창문을 넘어서 집 안에 들어섰다. 제인은 그 틈을 타서 사당을 검은 천으로 확 덮어버렸다.
“뭐, 뭐하러 온 거야? 여긴 내 집이라구!”
“에이, 왜 그러실까. 누가 들으면 자기는 무단침입한 적 없는 줄 알겠다.”
루크는 당황한 얼굴을 한 제인을 보며 빈정대는가 싶더니, 갑자기 툭 던지듯이 말을 했다.
“너, 향로 가져갔지?
제인은 몸을 흠칫 떨었다.
“봐, 봤어……?”
“그럼. 네가 또 무슨 일을 일으킬지 너무 불안해서 귀찮음을 무릎 쓰고 쫓아왔거든.”
“위험인물 취급하지 말아줄래……?”
억지로 웃고 있는 제인의 입가가 파르르 떨렸다. 하지만 팔짱을 낀 루크는 웃기지도 않는다는 듯이 콧방귀를 뀌었다.
“하! 폭탄마가 그런 소리 해봤자 전혀 설득력 없거든?”
“누, 누가 폭탄마라는 거야!”
얼굴을 붉게 물들인 제인이 소리쳤다.
“그럼 저건 뭐라고 설명할 건데? 완전 위험해 보이는데 그거.”
그러자, 루크는 전혀 개의치 않고 그녀의 등 너머를 가리키며 무심하게 말했다.
“음……?”
루크의 시선을 따라 제인이 고개를 돌렸고,
“자, 잠깐…… 이게 뭐야……?!”
자신이 피운 향의 연기가 검은 천에 막혀 밑으로 빠져나와 집 안에 자욱하게 퍼진 것을 발견한 제인이 비명을 질렀다.
“나와 봐.”
루크는 한숨을 잔뜩 쉬고는 집 안의 창문을 모두 활짝 열고는 당황한 제인의 앞으로 나섰다.
“자, 잠깐만……”
화악-
제인이 말릴 새도 없이 검은 천을 벗겨내자, 갇혀 있던 연기가 한꺼번에 올라왔다. 루크는 콜록콜록 기침을 하면서 팔을 휘둘러 연기를 밖으로 내보냈다.
대충 연기가 걷히자, 제인이 만든 작은 사당과 안에 피워놓은 향이 드러났다.
“이게 뭐냐?”
루크의 시선이 작은 사당으로 향하는 것을 본 제인은 조마조마한 심정으로 루크의 눈치를 살폈다.
“…….”
“하.하.하! 어, 어때~? 내가 특별히 만든 사당이라구!”
싸늘하게 가라앉은 분위기가 몇 분이나 지속되자, 결국 참다못한 제인이 어색하게 웃으며 루크의 어깨를 두드렸다.
“가, 가만히 있자니 잠자리가 사나워서 말이야. 감사하도록 해.”
“아, 그러세요.”
하지만 루크의 반응은 나아질 생각을 하지 않았으니…… 그제 서야 제인은 한숨을 쉬고는 솔직하게 털어놓기 시작했다.
“최대한 비슷하게 만들어보려고 했는데…… 잘 안 되네.”
“쓸 데 없는 짓하기는.”
“……쓸 데 없다니!”
루크가 무심한 얼굴로 말하자, 얼굴을 붉힌 제인이 볼을 긁적였다.
“……향은 왜 피웠는데? 저게 뭔 줄 알고?”
“날 구하려다가 망가졌으니까. 내 나름대로 미안함의 표현이야.”
너한테도, ‘다른 사람들’에게도…… 라고 제인은 덧붙였다.
“그게, 미안해……. 그렇게 소중한 물건인지 몰랐어.”
“쳇, 그 할멈. 멋대로 떠벌린 건가.”
책상 위에 놓인 사당의 도면을 발견한 루크는 마스터 라트리아의 짓임을 직감하고 혀를 찼다.
“행방불명이거든…… 내 부모님도.”
“……?”
“어떤 섬을 조사하기 위해 떠나셨는데 아직까지 소식이 없으셔.”
루크가 팔짱을 낀 채 아무런 말이 없자, 제인은 알고 있다는 듯이 입을 열었다.
“나도 알아. 가능성이 낮다는 것 정도는…… 하지만 포기하고 싶지 않은걸. 그러니까 화를 내도 좋아. 가족을 잃은 슬픔은 나도 뼈저리도록 알고 있어. 그래도 마음이 내키지 않으면 때려도 돼. 사당에 대해서는 무조건 내가 잘못했으니까…….”
“아, 그래?”
제인이 저자세로 나오자 루크는 솔깃한 듯, 눈을 크게 뜨고는-
“그럼 눈 감아.”
얼굴에 음흉한 웃음을 띠었다.
‘지, 진짜로 때릴 건가 보네…….’
루크의 그 음흉한 웃음을 본 제인의 눈가가 파르르 떨렸다.
“뭐해? 눈 감으라니까.”
루크가 재촉하며 손을 들어 올리자, 제인은 식은땀을 흘렸다.
‘……괜히 말했나?’
괜한 소리를 해서 한 대 맞는 것 아닌가 싶어 제인은 무심코 몸을 움츠렸다.
그렇게 천천히 다가온 루크의 손은,
툭-
제인의 머리 위에 안착했다.
“…….”
제인은 살짝 뜬 눈으로 루크를 힐끗 쳐다보았다.
“묵념을 할 때에는 눈을 감고 고개를 숙이는 거다.”
루크는 눈을 감고 묵념을 하고 있었다. 아까의 까칠한 태도는 어디가고, 사뭇 진지한 모습이었다.
“집에 대한 건…… 사과 안 할 거야.”
몇 분간 이어진 묵념이 끝나고, 제인이 입을 열자,
“……그러시든지.”
그렇게 대답하며 방바닥에 양반다리를 하고 있던 루크가 몸을 일으켰다. 한숨을 쉬며 창밖을 쳐다보는 루크는 뭔가 개운해 보이는 얼굴을 하고 있었다.
“……고맙다.”
“의외로 솔직하구나?”
루크가 감사의 말을 하자, 침대에 걸터앉은 제인이 눈을 가늘게 떴다.
“뭐, 별 도움은 안 됐지만.”
“야……”
제인의 속을 박박 긁은 루크는 제인이 만든 사당을 번쩍 들고는 밖으로 가져갔다. 그리고는-
콰직-!
있는 힘껏 바닥에 던져버렸다.
“자, 잠깐!!!”
자신의 작품이 산산조각 나는 광경을 목격한 제인은 기겁을 했다.
“뭐하는 거야?! 내가 얼마나 열심히 만들었는데……!”
제인은 박살나서 흩어진 나무 조각들 앞에 주저앉아 울먹였다.
“이제 필요 없으니까.”
하지만 루크는 그 마음도 모르고 제인 옆에 쭈그려 앉아서 그런 소리를 했다. 물론 제인은 눈물이 맺혀선 루크를 노려보았지만,
“묵념은 실컷 했거든. 이게 있으면 언제까지고 길드에 못 돌아갈 테니.”
“어……?”
루크의 입에서 튀어나온 소리에 마치 망치로 머리를 얻어맞은 것 같은 멍한 얼굴을 했다.
“네 목적은 부모님의 행방을 좇는 건가? 그걸 위해서 돈이 필요한 거고?”
“그렇다고 할 수 있나……? 돈이 필요한 건 조금 다른 이유이긴 하지만……”
제인이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말했지만, 루크는 들은 척도 않고 당부하듯이 일렀다.
“잘 들어. 나는 일 할 생각 같은 거 전혀 없거든? 내가 길드에 돌아가는 건 어디까지나 네 입단 테스트인지 뭔지 때문이라는 것만 알아둬. 할멈한테는 너랑 팀을 짰다고 말해놓을 테니까…… 일은 알아서 혼자 하던지.”
그렇게 말한 루크는 느릿느릿한 팔자걸음으로 어디론가 사라져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