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호국령의 사임
2. 호국령의 사임
신라 36대 혜공왕(765~779) 시절, 김유신(신라 29대 무열왕, 30대 문무왕을 섬기며 반도 통일의 대업을 보좌한 명장이다.)의 혼백이 태종대왕의 능으로 향해, 호국의 임에서 물러난 이야기가 있다.
대력 14년에, 하룻동안 회오리바람이 김유신의 묘에서 휘몰아쳤다. 그 회오리바람 속에 의관을 갖춘 한 명의 장군이 있었고, 그 주위에는 갑주를 두르고 무장을 갖춘 수행원들이 40이나 따르고 있었다. 이윽고 그 일행은 죽현릉(竹峴陵, 태종대왕의 능)에 들어갔다. 그리곤 갑자기 몹시 슬피 울면서 뭔가를 호소하는 듯한 소리가 들렸다.
유신이 하는 말인 듯한 “신은 평생동안 난리를 평정한 공이 있고, 지금 혼백이 되어서도 나라를 지키고 있었습니다. 오랫동안 재액을 물리치고, 환란에서 구하고자 하는 마음을 잠시도 고쳐먹은 적이 없었는데, 경무년(庚戊年)에 신의 자손이 죄도 없이 죽었습니다. 이는 임금도 신하도 제 공적을 생각지 않은 것이니, 신은 멀리 물러나 일을 쉬고자 합니다. 바라건대, 대왕께선 이를 윤허해 주셨으면 합니다.” 하는 말에 왕은 “나와 공이 아국을 지키지 않는다면 민초들은 어찌하리. 공은 돌아가 전처럼 힘써 주오.”라 대답했다. 장군은 세 번 부탁했지만 왕은 세번 다 윤허하지 않았다.
그 뒤에 회오리바람이 돌아가, 유신의 무덤에 들어갔다. 혜공왕은 이 이야기를 듣고는 크게 두려움을 느껴, 바로 김경신(金敬信)을 보내, 유신의 묘에서 잘못을 사죄하였으며, 또한 유신공을 위해 보전(寶田)을 취선사(鷲仙寺)에 내리기로 하였다. (동경잡기(東京雑記) 3권)
이 이야기에서는 영혼에 대해 다음과 같은 믿음이 있었다는 것을 엿볼 수 있다.
(1) 영혼은 생전과 같은 의사를 갖추고 있으며, 또한 생전과 같은 모습으로 나타난다는 것.
김유신은 신라에 큰 공로가 있는 명장이다. 그리하여 사후 혼백이 그 묘에 머물러 호국령이 되었다. 즉 귀신이 되어서도 생전의 의사를 바꾸지 않은 것이다. 태종대왕도 명군이었다. 임금으로서 나라를 생각하지 않는 자는 없겠지만, 태종대왕 또한 “나와 공이 아국을 지키지 않으면 민초들은 어찌하리.”라며 생전의 마음을 바꾸지 않았다. 회오리 속에서 나타난 유신의 모습은 무장으로서 의장을 갖추고 있었고, 조금도 생전의 모습에서 바뀌지 않았다. 이를 볼 때, 죽은 자의 혼령은 생전과 같은 마음을 가지고 생전과 같은 모습으로 존재하리라 믿었을 것이다.
(2) 조상의 영혼이 자손을 보살핀다는 것. 유신과 같이 나라에 충성스런 영혼이라 해도, 자손이 억울히 죽은 걸 보곤 참기 힘들어, 임금이 임금답지 못하면 신하가 신하다울 수 없다 하였다. 당시의 군신관계는 부자관계보다 가까운 사이가 아니라고 인식되었던 것 처럼 보인다.
(3) 혼령에게 사죄하여 그 원한을 위로해 복을 빈다. 혜공왕은 유신의 묘에 사죄를 하였으며 공을 위해 보전을 절에 내려 명복을 빌고 마찬가지로 국운을 지켜주길 빌었는데, 이와 같이 혼령을 상대로 그 원한을 풀고 달래면 화를 거두고 복을 가져오리라 믿었던 부분을 알 수 있다.
(4) 혼백이 머무르는 곳과 그 수명. 태종대왕(654-660)은, 그 치세가 당의 고종(高宗) 현경(顯慶) 5년에 끝났으며, 김유신도 다음 임금 때까지 임관했던 사람이다. 그런데도 이 사건이 일어난 시기는 혜공왕 15년(779), 당의 대종(代宗) 대력(大暦) 14년이니, 태종 이후 7대 120년의 긴 세월이 지났을 무렵이다. 이토록 오랜 시간이 지나도, 그 영혼은 이 땅에 머물러 나라를 수호하고 있다. 대업을 이뤄 훈공을 세운 사람의 혼은 오랫동안 사라지지 않으며, 이 경우에는 나라를 지키고자 하는 생각과 백성을 불쌍히 여기는 마음이 있었기 때문이겠지만, 이 마음이 이어지는 한 유령도 사라지지 않는다고 믿어져 왔던 것이리라. 진지왕의 혼이 2년 뒤에 도화녀의 집에 찾아와 그 소망을 이룬 것 처럼, 혼령은 그 욕망과 마음이 이어지는 한 이 세계에 머무르며, 이 욕망과 마음이 충족되어 하고자 하는 일을 이뤘을 때 소멸되는 것이라 믿어져 왔던 것이리라. 그리고 머무르는 곳은 이 설화에서 보기에, 능묘라 믿었을 것이다.
(5) 혼, 귀는 “마음”이라는 것. 도화녀에게 찾아간 진지왕의 영이든, 호국에 대한 이야기를 나눈 태종대왕과 김유신의 혼이든, 그 모두가 소망을 이루고자 하는 마음의 소산이다. 그 “마음”이 존재하는 한 영혼으로서 존재하고, 그 “마음”으로 여러 현상을 일으키며, 그 “마음”이 사라질 때 혼도 함께 사라지는 거다. 혼, 귀의 본체가 “마음”이기에 평소에는 사람의 눈에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무언가를 해야 할 때는 어떠한 모습을 갖추고 나타날 수 있으며, 그 모습에 따른 행동을 할 수 있다. 예를 들어서 인체의 모습을 할 경우 사람이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할 수 있는 거다. 이와 같이 “마음”이 혼, 귀가 된다 운운하는 관념이 존재하는 이상, 이 “마음”이 있으리라 믿던 만물은 모두 혼이 되고 귀가 되리라 믿었던 것이며, 이윽고 천지자연, 생물과 무생물을 가리지 않고 귀신이 될 수 있는 존재로서 다뤄졌던 것이리라. (덧붙여서 동경잡기는 신라 혁거세 이후의 일들을 실은 자료이며, 쓰여진 년대는 알려지지 않았다. 조선 현종(1660년 무렵)대에 민주면(閔周冕)이 증수하였다.)